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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시력 시각장애인의 버스타기

박 기자의 함께걸음-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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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원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약속된 카페에 먼저 가서 기다리던 중,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버스 두 대가 보입니다. 파란색과 초록색 버스가 서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서 두 대의 버스를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버스 옆모습 기준, 두 대의 버스 번호가 디자인되어 있는 위치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앞에 있는 파란색 버스는 604라는 버스 번호가 버스 뒷바퀴 바로 뒤에 있고, 초록색 버스는 3027이라는 버스 번호가 운전석 윗부분에 있습니다. 초록색 버스의 뒷부분은 나무로 가려져 있어 그쪽에는 버스 번호가 있는지 여부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버스 번호의 위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에게는 버스마다 버스 번호의 위치가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이 탑승해야 하는 버스를 구분하는 데에 불편함을 줄 수 있습니다.
 
비시각장애인은 보통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버스 ‘앞’에 있는 버스 번호를 보고 본인이 타야 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의 앞에 있는 번호를 보고 타는 게 자연스러우니까요.
 
반면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시야와 시력에 따라서 볼 수 있는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버스 앞에 있는 버스 번호를 보기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버스가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즉 움직이기 때문에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확신을 갖고 버스 번호를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버스의 번호를 구분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버스 ‘앞’이 아닌 버스 ‘옆’에 있는 번호를 보는 겁니다.
 
버스 옆은 버스 앞보다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기 때문에 버스 번호의 크기가 크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훨씬 편하게 버스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서와 같이 버스 옆에 있는 버스 번호는 버스마다 위치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버스 앞부분은 상대적으로 공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또 버스기사의 시야에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버스 번호의 위치가 비교적 일정합니다.
 
반면 버스 옆에 있는 버스 번호는 버스 운전석 윗부분에 있기도 하고, 버스 뒷바퀴 바로 위에 있기도 하는 등 위치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버스 옆에 있는 번호로 버스 번호를 구분하는 게 편리한 저시력 시각장애인에게는 이렇게 버스 번호의 위치가 다른 점이 불편한 점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을 예로 들면,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타야 하는 버스가 604번입니다. 그래서 버스 뒷바퀴 위에 있는 604라는 번호를 확인한 후 버스를 타면 되겠죠? 그리고 며칠 뒤 그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3027번의 버스를 타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하지만 3027번 버스는 버스 번호가 (사진상으로는 뒷바퀴 위에도 버스 번호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음) 운전석 위에 있기 때문에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미처 버스 번호를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버스에 가까이 가서 버스 옆에 있는 번호를 확인하기까지 버스가 기다려 준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시야와 시력의 정도에 따라서 볼 수 있는 정도가 다 다르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자신이 보려고 하는 부분만 보려고 하는 경향도 있고, 터널시야 등의 경우에는 특정 부분만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앞서 했던 경험으로 버스 뒷바퀴 위에 몇 번의 번호가 있는지만 집중해서 보려고 하는 바람에 정작 번호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겁니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버스 옆에 있는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외에도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여러 대의 버스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경우에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버스에 가까이 가서 일일이 버스 옆에 몇 번의 번호가 있는지 확인해야 되겠죠.
 
또 버스 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버스 번호를 확인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버스가 한 대 왔는데,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버스에 다가가서 버스 옆에 있는 번호를 확인하는데 버스 기사는 열어준 버스 앞문으로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타지 않으니까 버스를 그냥 출발시켜버릴 수도 있겠죠.
 
뿐만 아니라 버스의 옆에는 버스 번호만 있는 게 아니라 광고도 함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광고와 버스 번호를 혼동할 수도 있고, 또 버스마다 색깔이 다른 경우에는 버스 번호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저시력 시각장애인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물론 지역마다, 버스 노선마다 버스의 색깔이 다르고 버스 번호의 위치를 다르게 하여 특색을 살려준다거나 하는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이 예쁘게 보이고 광고를 하기 위해서 버스가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으로서 버스가 존재하는 것인 만큼,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요즘 사회적으로 장애인 이동권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장애인이 지하철 한번 타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을 한번 이용하기 위해 겪는 어려움들을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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