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보이는? 아직은 부족한 시민의식
박 기자의 함께걸음-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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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퇴근길, 앞을 보고 걷느라 길의 음푹 파인 곳을 미처 보지 못하고 발못을 삐끗하고 말았습니다. 한번씩 그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날은 진짜 심하게 그래서 주저앉은 채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지요.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오른쪽 발못이 심하게 부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좀 가라앉겠지 생각했는데, 다음날이 되어도 부기가 가라앉지 않는 겁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결국 정형외과에 갔지요. 발목 인대 손상으로 인한 염좌. 2주간 물리치료 받으면서 반깁스 해야 한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그날부터 오른발에 반깁스를 하고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 반깁스가 진짜 멋있었어요. 그냥 반깁스만 한 게 아니라, 반깁스한 발목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반깁스 보호대를 착용했거든요. 이 보호대가 마치 축구할 때 착용하는 무릎 보호대 같은 느낌이라서 멋있게 느껴졌던 거죠.
반깁스를 한 채 걸어다녀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걷는 속도도 느려지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불편해 졌어요.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을 몸소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민의식이요.
제가 길을 걸어가다가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나왔는데, 반깁스를 하지 않았던 평소라면 분명히 그냥 지나쳤을 자동차가 정지하는 거예요. 제가 횡단보도를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 주는 운전자가 너무 고마워서 저도 모르게 그 자동차의 운전석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습니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생각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선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자리를 잡고 서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제 ‘옆’에 나란히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네요? 제가 먼저 와서 자리잡고 서 있으니까 제 ‘뒤’에 줄을 서야지, 왜 제 옆에 서는 걸까요? 심지어 아주머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까 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저보다 먼저 엘리베이터에 냉큼 타버립니다.
또 한 번은 지하철을 서서 타고 가는 중인데, 제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분이 반깁스 한 제 발을 보고는 저를 향해 뭐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웃으면서 청각장애가 있어서 듣지 못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그 순간 그분의 표정이 참 우스웠습니다. 갑자기 저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표정이었거든요. 다리도 다치고 장애도 있다니까 그렇게 바라보신 거겠죠.
그렇게 2주동안 반깁스를 하고 다니면서 기다리고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시민의식도 경험했고, 장애인은 안중에도 없거나 불쌍하게만 보는 시선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시민의식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희망을 가져 보면서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씁쓸함도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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