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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통역은 이렇게!

시청각장애인 기자 이야기

본문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어떤 교육을 받을 때 등 여러 상황에서 ‘통역’을 필요로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통역의 방법은 청각장애인마다 선호하는 유형이 다 다릅니다. 수어통역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문자통역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죠. 아직은 수어로 유연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저는 문자통역을 선호하는데요. 그것도 저는 시각장애도 가지고 있으니까 ‘그냥’ 문자통역이 아니라 ‘큰 글자’ 문자통역을 받고 있습니다. 취재를 가서 인터뷰를 할 때,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등 문자통역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문자통역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분위기, 말투, 상황 전달
문자통역을 잘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타자 실력이 좋다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듣는 그대로 타자로 입력하면 그게 바로 문자로 통역하는 거니까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청각장애인은 문자로 통역되는 화면을 보고, 그 화면에서 전달되는 내용의 ‘문자’에만 의존해서 모든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통역을 받으면서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의 분위기를 함께 통역해 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제가 취재원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데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근로지원인으로부터 문자통역을 받고 있었는데, 취재원이 하는 말이 노트북 화면에 계속 입력되고 있으니까 전 화면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거든요. 취재원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문득 근로지원인이 이렇게 타이핑을 쳤어요.
(울고 계세요.)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다가 그 다섯 글자를 보고 고개를 들었는데, 취재원이 정말 울고 있었어요. 문자통역을 받고 있던 내용의 흐름상으로는 울 정도의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해당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취재원은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게 되었던 겁니다. 이렇게 글자만으로 하는 말을 통역하면 뭔가 딱딱해지는 느낌이 계속되는 것 같아서 저는 분위기와 상황적인 부분의 전달을 꼭 요청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위 근로지원인처럼 전달해줘도 좋고, 아니면 드라마의 대본처럼 (울먹이며), (목소리를 높이며) 등과 같은 수식어를 함께 넣어서 통역이 이루어진다면 너무 좋겠죠.

그렇지만 문자통역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우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문자로 통역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을 테니까요. 말하는 속도가 엄청난 사람의 말을 문자로 통역하는 거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진정 문자통역을 요령 있게 잘하는 사람이라면, 말하는 사람의 말을 백퍼센트 문자로 통역하기보다 조금은 놓치더라도 핵심은 꼭 전달하되, 대화의 분위기나 상황도 함께 전달해 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단순히 타자가 빠른 사람보다 분위기나 상황도 함께 통역해 주는 사람을 더 선호합니다. 
 
사전에 약속 정하기
특정 인물 한 사람을 인터뷰할 때는 그냥 그 사람이 말하는 걸 문자로 통역받으면 되는데, 2인 이상의 사람과 모임이나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는 문자통역을 하기 전에 꼭 약속을 해야 합니다.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이 복수이기 때문에, 통역을 할 때 ‘누가’ 말하는지 표시를 하고 통역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죠. 그런 표시 없이 문자통역을 하면, 내용을 전달받으면서도 지금 누가 발언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워지겠죠?

약속을 정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말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적는 거지만, 실시간으로 빠르게 회의가 진행되다 보면 이름을 일일이 다 적는다는 게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박관찬’이면 ‘박’으로 하거나, 박 씨가 두 명이면 ‘박1’, ‘박2’로 할 수도 있겠죠. 이 경우 박씨 두 명 중 누구를 박1로 하고 누구를 박2로 할지도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참석자들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에는 참석자들을 순서대로 숫자로 지칭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어디서부터 1번으로 정하는지를 꼭 정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두 사람 이상이 동시에 말할 때는 어떻게 통역을 하면 좋을지, 문자통역을 받고 있던 중에 청각장애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는 어떻게 신호를 보내서 대화에 참여할지 등을 문자통역 전에 청각장애인과 통역사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약속을 해 두면 좋은 것 같아요. 통역 중에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가능한 사전에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준비해 둔다면 정말 훌륭한 통역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통역사는 말하면 안 된다?
사실 저는 통역사가 통역을 하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통역과는 무관한 이야기)를 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어요. 나쁘게 말하면 대화나 인터뷰 중에 끼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또 개인적인 욕심일 수도 있지만, 통역 중 통역사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때에는 통역을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혹시라도 중요한 어떤 내용을 통역해야 하는데 놓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제가 문자통역을 받아봤던 속기사 중에서 정말 인상 깊었던 분이 있는데, 그분과 함께 한 시간들은 늘 유쾌하고 즐거웠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인터뷰나 밴드 연습 등에서 통역을 받았는데, 제가 다음 질문을 고민하고 있거나 분위기 흐름상 뭔가 전환이 필요할 때, 속기사가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한 마디씩 해주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지요.

그러니까 통역을 해야 한다는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통역하는 사람도 대화의 한 구성원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그 속기사 덕분에, 저도 문자통역을 받으면서 통역을 하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통역을 하는 사람이 통역을 하되, 잠시 쉬어가야 할 타이밍이라는 판단이 들면 살짝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분위기를 맞춰주는 건 정말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와는 다르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통역 중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 되고, 백퍼센트 통역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죠.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통역을 하는 사람도 함께 대화의 구성원으로 생각하면서 인터뷰든 뭐든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통역, 항상 하는 고민 
문자로 통역을 받는 건 대학에 입학한 뒤부터니까 10년도 훨씬 지났네요. 그동안 정말 다양한 스타일(?)로 통역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아무리 타이핑이 빠른 사람이나 꼼꼼한 사람이라고 해도 저와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도 나름대로 경험을 하고 노하우가 생기면서 통역을 어떻게 받는 게 요령 있는 건지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통역을 생각하면 늘 한 가지 드는 고민이 있어요.
서로 같은 생각을 하면 너무나 좋겠지만, 서로 하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통역을 할 때, 통역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특정 부분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통역할 수 있는데, 제 입장에서는 그 특정 부분이 중요한 내용일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그 부분은 특히 집중해서 통역을 해 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아쉬움이 드는 것 같아요. 이미 통역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집중해서 통역해달라’고 하기도 뭣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통역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그 통역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화도 나눠 보는 ‘준비성’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됩니다. 취재 같은 경우에는 제가 사전에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는 물론 미리 작성한 질문지도 통역해 주실 분에게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자리라고 해도, 통역해 주는 사람은 저와 똑같이 그 사람을 잘 아는 게 아니니까 그만큼 통역하기 전에 정보 공유가 중요한 거죠. 그러한 정보가 있다면 통역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꾸준한 호흡이 맞춰졌으면
그동안 통역을 받아오면서 제가 가장 희망하는 점이 뭐냐면,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통역을 받기보다 가능하면 한 사람으로부터 꾸준히 통역을 받고 싶은 거예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통역을 받으면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새로운 스타일(?)도 접할 수 있어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뚜렷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제가 시각장애도 가지고 있으니까 보통 속기사들이 청각장애인 대상으로 하는 문자통역과는 조금 다르거든요. 글자도 크게 해야 되고, 비대면 수업인 경우에는 컴퓨터 화면에서 마우스 커서가 잘 보이지 않으니까 지원이 필요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사전에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합니다.

반면 한번 호흡을 맞춰본 사람과 계속 함께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이미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으니까 통역해 주는 사람은 제가 어떤 내용의 통역을 원하는지 잘 알 테니까요. 그래서 지금 근로지원인이 문자통역을 정말 잘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통역해야 하는 사람이 다수인 경우에는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지칭할지, 자리에 앉을 때는 어디에 앉아야 될지, 통역하기 전에 어떤 내용의 통역인지 등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하거든요. 한번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세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가 그 인터뷰에 대해서 미처 전달하지도 않았는데 근로지원인 스스로 검색도 해보고 준비를 해왔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죠.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말투도 정말 생생하게 통역해 주는데, 덕분에 제가 2년 가까이 함께 일해 오면서도 몰랐던 우리 소장님의 ‘말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하하. 예전에 일했던 근로지원인 선생님들도 가능한 생생하게 통역을 해주셨지만, 지금 근로지원인은 정말 소장님의 발음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것 같아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근로지원인 선생님들은 꼭 이야기했는데, 소장님이 말씀하시는 걸 문자로 통역하기가 딱 좋다고 합니다. 그만큼 말씀을 천천히 하시고 통역하는 사람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눈으로 종종 확인도 하신다고 하시거든요. 너무 감사하죠.

솔직히 고백하면 수업이나 인터뷰, 회의 등에서 문자로 통역받는 것은 저에게 꼭 필요한 지원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고된 노동이기도 해요. 문자로 통역되는 노트북 화면을 장시간 집중해서 본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특히 수업 내용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 위해, 인터뷰는 답변을 들으면서 다음 질문을 준비하기 위해 화면을 집중해서 봐야 하거든요. 그런데 노트북 화면에 입력되는 글자가 워낙 크니까 글자들이 금방 위로 올라가서 사라져요. 그래서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면 엄청 집중력 있게 노트북 화면을 노려봐야 합니다. 그래서 귀가하면 늘 눈이 피곤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참 감사합니다. 제가 공부할 수 있도록 수업 내용을 통역해 주는 속기사가 있고, 제가 기자로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눈과 귀가 되어 통역해 주는 근로지원인이 있으니까요. 근로지원인이 ‘그냥’ 말하는 있는 그대로에 집중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있는 분위기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잘 전달해 주는 걸 느낄 때마다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함께 하니까 저도 덩달아 더 열심히 일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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