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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는 괴로워

박 기자의 함께걸음-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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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설거지를 해본 게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정말 오래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인생 첫 번째 설거지’는 제게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지요.
 
중학교 1학년 때 1학년 전체가 2박 3일로 캠프를 갔었거든요. 당시 우리 또래들에게는 집이 아닌 곳에서 2박이나 한다는 게 뭔가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특히 제대로 보고 듣지 못하는 저에게는 어떤 편의제공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무슨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동행한다는 게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캠프에 가서 1학년 단체로 훈련을 받는데 선생님의 구령이나 지시하는 사항을 제가 못 들으니까 계속 한 박자 늦는 겁니다. 저는 또래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저시력으로 잘 안 보이니까 무슨 동작인지 모르겠으면 대충 어설프게 엉거주춤 따라하는 게 전부였어요.
 
그런 건 그래도 그냥 따라하면 넘어간다고 할 수 있지만, 캠프 기간 중 저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준 시간은 식사시간이었어요. 캠프니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시간으로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 식사시간일 텐데, 행복하게 생각해야 하는 시간에 왜 스트레스를 받았을까요?
 
식사를 끝낸 학생들은 자신이 사용한 식판을 ‘직접’ 설거지해야 했어요. 수세미에 퐁퐁을 적당히 뿌린 뒤, 식판을 깨끗하게 씻으면 되는 일이니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죠?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그때까지 설거지를 직접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날 처음 해봤거든요. 처음에는 또래들이 하는 걸 보고 그냥 따라하면 되니까 설거지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제 좌우에 있는 또래들이 설거지를 마치고 선생님께 검사를 받으러 갈 때, 저도 얼른 정리하고 따라가서 줄을 섰어요.
 
설거지를 마친 식판과 수저 등을 선생님이 검사를 하시는데, 제 차례가 되니까 선생님이 식판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면서 다시 해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까 식판에 퐁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다시 설거지하는 곳으로 가서 그 부분을 열심히 행궈서 씼었어요. 깨끗하게 된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뒤,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이번에도 통과를 못했어요. 이번에는 선생님이 다른 곳을 가리켰는데 거기에도 퐁퐁이 묻어 있었던 겁니다. 어깨에 힘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인생 첫 번째 설거지는 다섯 번도 더 넘게 반복한 끝에 겨우 통과할 수 있었어요. 그 첫 번째 설거지의 기억이 너무 크게 와닿았던 덕분인지, 캠프 기간 내내 식사시간이 두려웠어요. 설거지를 하고 검사를 받을 때 통과하지 못해서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겠죠? 또래들은 한두번에 다 통과하는데, 유독 설거지 할 때마다 다섯 번은 기분으로 했던 것 같아요. 한번에 통과한 적도 없었고요.
 
저시력이라서 설거지를 할 때 식판의 전체를 확실하게 다 보지 못해서 그런 일이 생겼던 것 같아요. 스스로는 꼼꼼하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설거지를 마무리하면서 수세미를 제자리에 두다가 퐁퐁이 식판에 튕겼을 수도 있고, 검사 과정에서 선생님이 알려주신 퐁퐁이 묻은 곳을 집중적으로 씻다가 다른 부분에 퐁퐁을 묻혔는데 그걸 미처 못 봤을 수도 있고요.
 
그렇게 인생 첫 번째 설거지에 대한 호된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그 덕분에 자립한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설거지를 꼼꼼하게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잔존시력으로 유심하게 보면서 할 수 있으면 너무 좋지만, 꼭 다 보지 못하더라도 설거지를 하는 손의 촉감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도 있게 된 것 같아요.
 
오히려 이젠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은 뒤, 그걸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난 뒤의 성취감을 느끼며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설거지도 우리 삶의 너무나 소소한 일상인 것 같습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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