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SPECIAL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본문
#언론
곧 있을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정치권이 뜨겁습니다. 짤막한 임기지만 누군가에겐 새로운 정치 이력이, 누군가에겐 더 큰 본류로의 합류를,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당내 확고한 입지를 다져주는 중요한 무대가 되기에 자신만의 색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여야의 주요 후보로 거론되는 두 사람이 예능프로에 출연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어 대중의 호감을 사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습니다. 정치도 결국엔 민심을 사야 하는 부분이라 잘 짜인 전략과 전술 못지않게 때에 따라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뜻하지 않은 운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출연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진 않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앞서 지난 5일 나 전 의원은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해 남편 김재호 판사, 장애를 앓는 딸 유나 씨와의 일상을 공개했다. 오는 12일에는 같은 방송에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출연할 예정이다.
나경원 전 의원이 다운증후군 딸과 함께 출연해 정치인이 아닌, 딸을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습니다. 늘 비춰지던 냉철한 정치인의 그것이 아닌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에 저 역시도 마음이 따뜻해졌는데요. 문제는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나경원 전 의원의 딸을 장애를 ‘앓는’ 혹은 ‘앓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수십 년 인식개선 운동을 해왔으나, 결국 언론의 저 한 줄짜리 무성의한 단어에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허무하기까지 합니다. 바라기는 (바람으로 끝나겠지만) 장애를 바라보는 저 같은 시선이 부디 특정 언론의 비전문성에서 비롯된 것이길,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의 시선이 아니길 바랍니다.
Not SPECIAL. 장애인은 특별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상
며칠 전 장애인활동지원 기관에서 신규직원 채용이 있어 면접관으로 참관하였습니다. 장애인의 인권에 관심있는 사회복지사들과 유관업무 종사자들이 다수 지원하여 심사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면접을 떠나 그 과정에서 드러난 지원자들의 장애인에 대한 의식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만큼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의식수준이 예전보다 높아졌다는 방증(傍證)이 아닐까 생각하니 장애인복지 현장에서의 삶에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어렵게 한 명을 채용하게 되었지만, 지원한 모두가 정말 훌륭한 분들인 것만은 틀림없었습니다.
아!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면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긴장하기도 했을 테고, 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 분야에 지원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강박관념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모든 지원자들이 적절하게 잘 답변하였습니다만, 한 가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단어가 굉장히 크게 들리더군요. 궁금하시죠? 궁금하면~~~ 500원! 철지난 개그였습니다. 하하. 모든 지원자들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은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분들에게…….”
장애인분, 장애인분, 장애인분, 장애인분.
이야~ 이거는 꼭 짚어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격한 사람은 해당업무를 위해, 불합격된 사람은 다른 곳에서의 면접을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선생님, 선생님은 ‘비장애인분’이란 단어를 사용하시나요?”
“예? 아, 아니요….”
“그죠? 그러면 굳이 ‘장애인분’이라 하지 않아도 돼요.”
Not SPECIAL. 장애우, 장애인분, 특별하게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2021. 1. 10.(일)
새해 벽두부터 언짢은 일이 있었습니다. 궁금하시죠? 궁금하… 아, 아닙니다. 위에서 써 먹었네요. 하하하. 코로나로 주말 내내 집에만 있다 마침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 필요한 학용품들이 있어 근처 매장에 갔었습니다. 물론 마스크에 방역 철저히 하고요. 엘리베이터가 있는 4층 건물 전체가 한 매장이니 꽤 규모가 있지요. 열심히 바구니에 학용품을 주워 담다 소변이 급해 후딱 가서 처리하고 나오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려 있는 문을 살짝 들여다 본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대형매장이니 장애인(다목적) 화장실은 있어야겠고, 어찌어찌 구색은 맞춰 놓긴 했는데.우와~ 이건 뭐. 와~ 올해는 이런 모습 안 봤으면 했는데 벽두부터 보고 말았네요.
제발 쫌.
Not SPECIAL. 이런 특별대우 안 해 주셔도 되요. 그냥 남들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나 자신
작년 연말에 사업장을 이전하였습니다. 커피 로스팅을 하다 보니 특성상 연기가 많이 발생해 반드시 연통을 설치해야 하는데, 하필 이전한 곳이 6층 건물의 1층이었습니다. 게다가 건물을 얼마나 잘 지었는지 천고가 일반 사업장 보다 훨씬 높습니다. 우와~ 밖에서 6층을 올려다보는데 목이 꺾일 지경이었습니다. 대충 머리를 굴려 공사견적을 뽑아 보는데 앞이 캄캄합니다. 연통재료비에 인건비, 대형 스카이까지. 짬밥으로 대충 견적 뽑아 별 기대 없이 몇 군데 업체로부터 비교견적을 받았습니다.
오~~ 그 중 한 업체의 견적이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예상보다 훨씬 저렴한 게 살짝 의심이 되기도 했지만, 자금에 맞추다 보니 상세내역을 보니 상당히 일리가 있어 뒤도 안 돌아보고 계약했습니다. 계약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인부 2명이 열심히 자재를 옮깁니다. 일요일이라 늦잠 자는 동네 사람들을 배려해 큰 소음 있는 작업은 뒤로 미루는 세심함까지. 이 정도면 굳이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없겠다 싶어 맡겨두고 다시 컴백 홈. 점심까지 먹고 느긋하게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사이 대형 스카이가 도착해 외벽에 연통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저 높이에 대형 연통을 설치하는 게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닌지라 몇몇 사람들이 대형 스카이 주변에 무리지어 있었습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이었습니다. 20년 가까이를 장애인들과 함께해 온 짬밥(?)이 있어 좋은 구경하러 오셨나 싶어 (정답게) 다가가 몇 마디 나눕니다. 점심은 드셨냐? 댁은 어디냐? 콜택시 타고 오셨냐? 등등 웃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나: (볼거리를 제공해 뿌듯하듯) 근데 어찌 오셨는교? 이리 높은데 연통다는 거 첨 보지예? 나도 여태껏 커피 볶으면서 이리 높게 연통 올린 건 첨입니다. 신기하지예?
그: 은지예(아니요), 내가 이 업체 사장아입니까(사장입니다). 이보다 높은데도 달아 봤으예.
나: 헐~ 사, 사장님요? 옴마야, 이거 실례했습니다. 저는 동네사람인 줄 알았으예. 잘 부탁하입시더.
그: 걱정마이소. 이 바닥에서 짬밥이 얼만데예. 빤듯하이 세우고 갈테니 드가소.
우와~ 완전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20년간 장애인들과 함께했다면서 저 분이 업체 대표일 것이란 생각은 왜 못했을까요? 장애 정도가 심하면 건설현장에서 일할 수 없을 것이란 선입견을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가 가지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 진짜 쪽팔리고 넘사시럽고 면목이 없어 진지하게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론 웬만한 공사는 모두 이 분께 몰아드립니다. 견적 잘 뽑아 줘, A/S 확실해, 공사 깔끔해.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으니까요. ^^
Not SPECIAL. 특별히 불가능한 것도 없어요.
2021년을 시작하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당장 제 자신부터 돌아보았습니다. 언론이나 사회구성원들,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부분에 있어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오랫동안 장애인복지 현장에 있었다고 자부했던 제 자신에게도 고착된 선입견이 자연스레 형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에혀~ 충분히 반성하고 세심히 돌아보아 당장 저부터 좀 더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
작성자글. 제지훈/사회복지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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