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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차 한 잔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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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 한 잔의 여유’에 글을 쓰기는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함께걸음> 기자가 된 뒤 칼럼 연재를 중단했으니까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솔직히 기자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한번씩 칼럼 연재할 때가 그리웠어요. 사실 있는 그대로를 전달해야하는 기사와 달리, 칼럼은 주관적인 생각도 담을 수 있고 글 속에 소소함이 묻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2021년부터 <함께걸음>이 격월로 발간하게 되면서 다시 칼럼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함께걸음>을 통해 늘 접하는 장애계의 소식에만 치우치지 않고, 독자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기자로서의 인간적이고 소소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지면에 기록해두려고 합니다.
 
처음 신고해본 119
2020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아래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냈죠.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는 정말 걱정이 되더라고요. 저는 매일 복잡한 서울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것도 있지만, 직업이 기자다 보니 취재를 위해 외근을 해야하는 상황도 생기지 않을 수가 없죠. 그래서 마스크도 단단히 하고 손도 꼼꼼하게 소독하며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일했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길게 잡혔던 추석 연휴를 푹 쉬고 월요일에 출근했는데, 그날따라 하루종일 몸이 무거운 겁니다. 팔과 다리에 나사가 풀린 것처럼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너덜너덜한 느낌이고, 근무시간에 서너번 설사를 하느라 화장실도 들락날락 오갔지요. 하루종일 몸이 시원찮고 식욕도 없어서 그날 퇴근 후 저녁도 거른 채 샤워 후 바로 잠들었습니다. 그렇게 잠들었다가 눈을 뜬 게 밤 11시. 몸이 아픈 건 그대로였고, 머리에 손을 얹어보니 평소보다 뜨거운 게 느껴졌어요. 열이 나는 겁니다.
정보접근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기자가 직업인 제가 고백하기에는 정말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무려 10월인 그때까지도 저는 코로나19에 걸리면 어떤 증상(물론 무증상도 있지만)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어요. 뉴스나 라디오에서 전해주는 코로나19 증상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접하며 ‘이런 증상이 있으면 코로나19를 의심해야 하구나’라고 이해하는 것과 다르게 저는 듣지 못하니까 잘 몰랐던 거죠. 또 TV를 통한 뉴스에서 수어통역을 해주거나 자막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저시력인 저에게는 제대로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어요. 자막을 천천히 읽어야 하고 수어통역을 천천히 봐야 되는데, 뉴스는 그런 걸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또 평소 운동을 하고 건강하게 생활한다고 자부해 왔기에 방역수칙만 잘 지키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코로나19가 어떤 증상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처음으로 스마트폰에 ‘코로나19 증상’을 검색해 보았어요. 아뿔싸!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열, 설사, 근육통. 당시 제게 있던 증상과 딱 똑같이 나오는 겁니다.증상이 나타나는 ‘순서’는 검색 결과와 제 몸에서 나타난 게 조금 다르긴 했지만, 정말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나 코로나19에 감염된 걸까. 나 어떡하지? 집(고향)에 연락해야하나? 누구한테 연락하지? 119에 신고해야하나…’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없게 이어집니다. 선별진료소나 보건소에라도 가봐야 하는데 밤 11시가 넘은 상황이고, 무엇보다도 우리 동네에 선별진료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집에 연락한다고 해도 지금은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고민만 하다가 밤 12시가 넘어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저의 증상이 코로나19인지 아닌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출근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이 상태로 출근했다가 코로나19 확진이면 회사 건물 전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고민 끝에 친구에게 연락해 봤는데, 마침 그 친구도 아직 자고 있지 않아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친구가 우리집으로 119 신고를 해주었던 거죠. 그냥 신고만 한 게 아니라 구급대원들에게 제가 가진 시청각장애와 그로 인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하는지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119에 신고를 해서 밤늦은 시간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물론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구급차가 우리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마 건물 이웃들이 다 일어나서 무슨 일인가 봤을 것 같아요. 사이렌 소리가 나니까. 너무 죄송하고 민망했어요.
 
생애 가장 길었던 밤
우리집에 온 구급대원 두 분은 온 몸을 무장(?)하고 있었어요. 마치 북극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나오는 배우처럼, 두 눈만 보이게 한 채 온 몸을 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철저히 감싸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구급차 내부도 방역을 위해 디자인되어 있었어요.
저는 ‘손바닥필담(상대방이 하고싶은 말을 제 손바닥에 글로 적는 방법)’으로 의사소통하는 게 가장 편한데, 구급대원들은 장갑을 끼고 있고 제가 아직 확진 여부가 판명되지 않은 상태라 신체적 접촉을 통해 의사소통하기가 조심스러웠어요. 그래서 스마트폰에 있는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사용하여 대화를 나눴습니다. 기계이니만큼 구급대원들의 말을 100%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집에서 나와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구급대원들과의 대화에서는 큰 도움을 주었어요.
도착한 병원에서의 하룻밤은,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긴 밤으로 기억됩니다. 1인 격리실에서 정말 많은 검사를 받았어요. 코로나19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받는 다양한 검사들 자체가 힘든 건 아니지만, 검사 하나를 받고 다음 검사를 받기까지의 ‘중간 대기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어요. 시간이 새벽인 것도 있지만 확진자와 저처럼 감염 의심이 있는 사람들의 수에 비해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제가 검사받을 차례가 되어 제가 격리된 병실로 올 때마다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은 항상 최선을 다해 검사해 주셨어요. 두 눈만 보인 채 온 몸을 다 감싸고 격리실에 들어왔다가 격리실을 나갈 때마다 입었던 옷이나 마스크 등을 교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코로나19가 우리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으며 우리를 번거롭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이 격리실을 한번 들어왔다가 나갈 때마다 바꿔입는 옷과 마스크들처럼 불필요한 쓰레기가 많이 늘어날 것 같고, 병실이 부족하면 더 중증인 환자들의 생명에 위험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제가 코로나19에 감염될지도 모르는 긴박하고 두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제 걱정이나 해야하는 상황이었음에도, 그 길고 길었던 밤의 시간이 너무나 무료해선지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아요.
모든 검사는 새벽 6시가 넘어서야 끝났고, ‘당연히’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출근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거죠. 아무튼 병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장애인콜택시를 불렀는데, 바로 배차가 되었거든요. 근데 제가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가 없다고 장애인콜택시 측에서 배차를 취소시켰어요. 틀린 말이 아니기에 저도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일반 택시를 타고 왔어요.
집에 와서는 먼저 회사에 알렸어요. 제가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전날 저랑 같이 밥 먹었던 간사님들도, 회사에서 제 자리랑 가까운 분들도 다 출근을 못 하고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지요. 또 제 회사가 위치해 있는 건물의 3층은 그날 전체 소독을 한다고 하고요.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게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건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
다행히 저는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와서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만 먹고 다시 건강을 되찾았어요. 나중에 코로나19 검사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엄마가 그러시네요. 추석 연휴 때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라고요. 이젠 웃으면서 그때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의 상황을 신속하게 이해하고 무사히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119에 신고해준 친구, 역시 제가 가진 장애와 그로 인한 의사소통 방법을 잘 이해해준 구급대원들과 의료진 덕분에 지금도 <함께걸음> 기자로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역시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는 말처럼, 경험해보고 아파본 사람이 건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겠죠. 길고 길었던 그날 밤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는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쓰려고 합니다. 취재를 가건, 기사를 쓰건, 인터뷰를 위해 누구를 만나건 그 어떤 활동도 제가 아프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2021년에도 <함께걸음> 박관찬 기자로 열심히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칼럼 ‘차 한 잔의 여유’는 박관찬 기자가 <함께걸음> 2018년 3월호부터 1년 동안 기고한 코너입니다. 눈과 귀에 동시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박관찬 기자가 시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습니다. 지하철을 타는 일, 미용실에 가는 일, 축구를 하는 일, 첼로를 연주하는 일 등 어느 누구에게는 아주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일 수 있지만 보고 듣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시청각장애인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시청각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이고 조금 다른 점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박관찬 기자의 솔직하고 생생한 글을 통해 다시 공감해 보세요. 차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작성자박관찬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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