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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의 기억, 그리고 친구

박기자의 함께걸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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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게 ‘학교 폭력(학폭)’이죠. 제가 자주 보는 스포츠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더니, 이젠 연예 쪽은 물론 사회부 뉴스에서도 학폭 관련 기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학폭 피해자들이 당한 피해사실의 폭로 내용들을 접할 때마다, 저도 마음 한 구석이 그리 편하지 않더라고요. 저도 학폭 피해자였던 때가 있으니까요.
 
어렸을 때 시청각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모든 학교를 일반학교에 다녔어요. 그리고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지금처럼 장애인식개선이나 장애이해에 대한 교육이 법으로 의무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특히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가 심각했어요.
 
선생님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장애로 인해 학교생활에서 저에게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그냥 ‘무조건 배려’나 ‘무조건 제외’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나봐요. ‘관찬이는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리니까 무조건 배려해 주고, 단체로 뭘 할 때는 무조건 제외해주면 된다’는 거죠. 선생님들이 이렇게 생각하니 학생들도 저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겠죠.
 
단체로 다 벌을 서는데 저만 제외되거나, 수업시간에 쪽지시험을 칠 때 선생님이 불러주는 문제를 못 듣는다고 저만 시험을 안 치게 하니까 누가 저를 이해하고 좋아해 줄까요. 그냥 제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대우를 받으니까 학생들은 저를 못마땅해하고 시기했어요. 그래서 틈만 나면 저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게 일상이었어요.
 
체육시간에 2인 1조로 배구공 패스 주고받기를 했는데, 저랑 짝이 된 친구는 두 손을 모아서 가볍게 배구공을 위로 쳐서 띄우는 방법으로 제게 패스하지 않고, 야구에서 투수가 포수에게 야구공을 던지듯이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냅다 저에게 배구공을 던졌어요. 힘이 실린 배구공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덕분에 저는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면서도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은 아직까지도 마음 편하게 받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이는 아침 조회시간. 제 자리에 가서 서 있는데, 소위 ‘일진’인 학생이 다른 학생 몇몇을 데리고 저에게 옵니다. 그러고는 다같이 저를 보면서 뭐라고 게속 말하면서 자기들끼리 키득키득거립니다. 제가 못 듣는다는 걸 이용해서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저를 욕하고 떠드는 거죠. 뭐라고 하는지 들을 수가 없으니까 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수학여행을 가서 밤에 잠들었는데 문득 얼굴의 느낌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눈을 떠보니까 누가 제 얼굴 여기저기에 치약을 뿌려 놓았더라고요. 진짜 화가 치밀어 올라서 범인인 녀석에게 따지고 사과하라고 해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으니까 역시 아무것도 못 하는 등 정말 힘들었던 일들을 겪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렇게 늘 혼자였던 저에게도 ‘친구’가 나타났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스쿨버스를 탔는데, 제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뒤로 돌아앉아서 저를 내려다보더니 저에게 마구 손가락질을 하고 큰소리로 욕을 하며 떠들기 시작했어요. 마치 버스에 있는 사람들 다 보라는 듯이 말이죠. 저는 일부러 신경쓰지 않으려고 그냥 무시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럴수록 약이 오르는지 그 녀석은 더 큰 제스처를 취하는 거 있죠. 그때 저도 깜짝 놀란 일이 일어났어요.
 
제 옆에 앉아 있던 같은 반 친구(그 당시엔 그렇게 많이 친하지 않았는데도)가 그 녀석의 손을 잡아서 손가락질을 못 하게 하더니, 조용히 하고 앞으로 돌아서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제스처를 보내는 겁니다. 정말 제 눈이 다 휘둥그래지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어요. 그때부터 그 친구랑 친해진 건 안 봐도 비디오겠죠?
 
그 친구와 저는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 잠시 헤어졌다가, 대학생이 된 뒤 연락이 닿아서 다시 만났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우정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입대한 뒤 제가 편지를 보냈거든요. 친구한테서 온 답장이 진짜 감동적이었어요. 저시력인 제가 조금이라도 읽기 편하라고 편지지에 글자를 아주 크게 적어서 보내준 겁니다. 편지지 한 장에 충분히 적을 수 있는 내용을 무려 다섯 장에 걸쳐서 큼직큼직하게 적은 거죠. 이런 친구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요.
 
저에게 학폭을 한 친구들의 이름은 지금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길게는 20년도 넘게 지났지만 그들로부터 사과도 받지 못했죠. 한명한명 다 찾아내서 벌도 받게 하고 사과도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저도 그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오죽하면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나 영화를 볼 때마다 살인의 방법을 배우려고까지 했을까요.
 
그래도 학폭의 과정을 거치면서 평생 동고동락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된 건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그 친구 덕분에 학폭 피해가 줄어든 건 사실이니까요. 녀석들도 그 친구를 보면서 배우는 게 없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의 폭력뿐만 아니라 ‘폭력’ 자체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인권이 중요시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학폭을 통해 우리들의 인권 의식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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