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위한 쉬운 언어 도입의 해외 사례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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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들어가며
2022년 12월, 서울행정법원은 국내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쉬운 언어’로 작성된 판결문을 제공했다. 청각장애인인 원고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의 채용에서 불합격 한 것에 대해 장애차별을 주장했고 청구 자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알기 쉬운 용어로 판결문을 써 달라’고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 져 재판부는 판결의 주요 내용을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을 포함하여 쉬운 언어로 요약한 요약본을 판결문에 포함하여 제공했다.
‘쉬운 언어’는 글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하고 필요하지만, 주로 정신적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9조(접근성)와 제21조(의사 및 표현의 자유와 정보접근권)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달장애인지원법 제10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여야 한다.” 라고 규정하여 법적 근거는 마련되어 있으나 여전히 이행 상황은 미비하며, 권리로서 보장되기 보다는 선언적 규정으로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2. 쉬운 언어란?
2014년부터 독일 힐데스하임 대학교의 쉬운 언어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독일의 언어학자 크리스티안 마스 (Christiane Maaß)는 다양한 저서 및 쉬운 언어 연구 센터 웹사이트를 통해 “쉬운 언어(Easy Language)”와 유사 개념인“평이한 언어(Plain Language)”를 정의하고 관련 사업을 활성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쉬운 언어는 자연어 중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된 언어로, 그림이나 도형으로 이해를 돕거나 활자 크기, 디자인 등 제반 사항들을 고려하여 작성되며, 인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되었으나 최근에는 치매 유형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실어증, 난청, 또는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기능적으로 문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로 그 대상이 확대되었으며, 이와 같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장벽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평이한 언어는 특정 분야의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적인 문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문 컨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전문용어 사용을 지양하고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3. 쉬운 언어의 국제적 사용 현황
2010년 입법된 미국의 Plain Writing Act 및 이와 관련한 연방 평이한 언어 가이드라인 배포를 비롯하여 국제 평이한 언어 협회 (Plain Language Association International, 또는 PLAIN)의 활동 등 평이한 언어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사업은 국제적으로 비교적 활발한 편이나, 쉬운 언어 사용을 제고하는 사업은 평이한 언어 사용에 비해 아직 전반적으로 미비하다. 쉬운 언어 사용 활성화를 제도적, 또는 법적으로 지원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다음과 같다.
(1) 독일
독일은 크리스티안 마스와 쉬운 언어 연구센터의 활발한 활동과 더불어 법적으로도 쉬운 언어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쉬운 언어 사용은 독일의 장애인 기회 균등에 관한 법률 (Behindertengleichstellungsgesetz)에 규정되어 있으며, 원칙적으로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여야 하나, 이로 충분치 않은 경우 쉬운 언어를 사용하여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평이한 언어보다는 쉬운 언어 사용이 더 선호되는 편이다. 특히, 공공 기관에서는 인하우스 편집자를 별도로 두고 번역물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 대중이 접할 수 있는 매체와 관련해서는 소규모 프리랜서 번역 대행사를 중심으로 쉬운 언어로 번역하는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또한, 번역 서비스에 대한 품질 표준을 운영하며 전문 번역가들의 품질 관리 및 검수 절차를 거쳐 쉬운 언어로 된 텍스트를 평가하고 검토하기도 한다.
(2) 영국
영국의 인권단체인 체인지피플(Change People)은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로, 특히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향상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체인지피플은 발달장애인이 양질의 삶을 영위하고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주역이 되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신념에 기반을 두고 위원회와 자원봉사자들의 대다수를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들로 구성하고 있다. 체인지피플은 쉬운 읽기 포트폴리오 발간을 통해 쉬운 읽기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쉬운 단어와 단순한 문장구조를 사용하는 것과 더불어 그림과 도형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제고하고자 한다. 특히, 그림을 삽입할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였는지, 그림의 텍스트 내 배치가 적절하고 그림의 품질이 좋으며 흑백으로 인쇄하였을 때도 그림을 구분하기 쉬운지, 텍스트 크기와 글꼴, 여백 등이 적절한지, 종이의 질이 좋고 눈부심과 반사를 최소화하는지, 해당 문헌이 발달장애인의 검토를 받은 적이 있는지 등을 평가하는 체크리스트를 제공하여 쉬운 언어 사용을 도모하고 있다.
(3) 캐나다
캐나다의 접근성법(Accessible Canada Act) 및 접근성 규정(Accessible Canada Regulations)은 장애인의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이해를 돕기 위해 문서를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로 작성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쉽고 명확한 언어 사용과 더불어 그림, 도형 및 시각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캐나다 쉬운 언어 사용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대법원의 서면 판결에 대하여 캐나다 대법원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독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작성된 짧은 요약본을 제공한다는 점인데, 사진을 제공하고 보다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나 사진이 판결을 설명하고 있지 않고 단순하게 관련된 사진이 삽입되었을 뿐이며 쉬운 언어보다는 평이한 언어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4. 나가며
정신적 장애인을 위한 쉬운 언어의 활용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도 활성화된 단계는 아니지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수어나 점자, 음성인식이 가능한 대체텍스트의 제공과 마찬가지로 장애로 인하여 글을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쉬운 언어의 제공을 권리로서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재해나 재난, 감염병 확산 등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과 직결된 정보나 공공기관의 통지서나 판결문 등 권리와 의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 복지정보나 생활정보 등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과 자립생활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정보들은 반드시 장애인의 동등한 접근이 보장돼야 한다.
우리나라도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발달장애인지원법 등 쉬운 언어 제공을 위한 기본적인 근거 법률은 마련되어 있으나 하위법령 등 세부적인 규정과 구체적인 실천, 특히 정부 차원의 이행계획이 부족하다. 향후 쉬운언어의 도입 범위와 연차별 이행계획을 포함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고 주요한 공공정보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쉬운 언어의 작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작성자글. 강래이 법무법인 디라이트 미국 변호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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