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성, 여성성이 세상을 바꾸고 구원한다
장애코드로 문화 읽기 / 영화 <위시(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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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위시' 포스터 (출처.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디즈니가 100주년 기념작으로 내놓은 <위시>.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많이 갈린다. 그러나 디즈니가 스스로 디즈니스러움을 깨고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겠다는 슬로건을 구현하려 노력한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중 하나가 매그니코피 왕의 서사를 통해 나르시시스트인 최고 권력자가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면서 권력을 구축하고 타인을 조종하며 착취하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며, 이를 비판적 서사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마법을 통해 모든 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왕 매그니코피가 통치하는 로사스. 이 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정착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왕이 있다는 것. 사람들은 왕에게 맡긴 소원이 언젠가는 이뤄질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왕을 섬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샤의 할아버지는 100세가 되도록 왕으로부터 소원을 이룰 선택을 받지 못했고 아샤의 엄마는 물론, 로사스 사람들 대부분이 오랜 세월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다리고 있지만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소원을 이루어주겠다는 왕의 약속은 사람들의 기대치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껏 아무도 이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말하지 않았다.
주인공 아샤는 왕의 마법 견습생을 뽑는 면접시험에 응시한다. 면접 과정에서 아샤는 왕이 할아버지의 소원은 물론이고 로사스 사람들 대부분의 소원을 이뤄줄 생각이 없음을 알게 된다. 혼란스러운 아샤는 고민 끝에 할아버지께 왕의 비밀스러운 방에 대해 말하며 할아버지의 소원은 들어줄 수 없다고 한 왕의 말을 전한다. 할아버지는 오히려 화를 내며 자신은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며 소원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접은 지 오래됐다. 소원에 관해서는 왕이 판단해 선택하고 결정할 문제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아샤는 이런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로사스에는 통치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왕이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규율이 있다. 왕 외에 어느 누구도 로사스에서는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왕에게 맡긴 소원은 되돌려 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왕에게 소원을 맡기는 순간 그 소원은 각자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이 규율들로 인해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잃어버린 채, 막연히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로 왕을 추앙하게 만들고 그의 결정과 선택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할아버지와 로사스 사람들의 정신과 삶을 지배해 왔던 것이다.
이들도 처음에는 자신들이 맡긴 소원이 무사한지, 자신들의 소원을 왜 직접 볼 수 없는지, 왜 기억할 수 없고 되돌려 받을 수 없는지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과 소원성취라는 거부할 수 없는 정책적 명분으로 그저 따를 수밖에는 없었으며 오랜 세월을 이런 사회 시스템에서 살아오다 보니 익숙해지고 체념과 포기를 반복하며 의문을 품고 표출할 의지마저도 소진시켰을 것이다.
그동안 왕은 정기적으로 소원 성취 식을 열어 왕권을 강화하고 왕궁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소원들만을 선별해 이뤄주면서 이미지 관리를 해왔고, 이런 정치 쇼를 통해 사람들의 눈과 귀, 입을 막고 진실을 가리며 불만을 품을 여지를 봉쇄했다. 결국은 아샤의 할아버지처럼 소원의 모든 권한을 왜 왕이 가지며, 소원을 이룰 대상을 판단하고 선택하며 결정하는 주체가 자신들이 아닌 왕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의욕마저도 잃게 만든 것이다. 왕은 로사스 사람들을 이렇게 조정하며 이들의 권리를 빼앗고 삶을 착취해 온 것이다.
누구나 안전한 나라에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 왕이 이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 방식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사람들은 정책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왕이 내세운 규율들이 소원을 품을 개인의 자유와 욕구, 권리를 얼마나 침해하고 억압하는 것인지에 대해 판단할 겨를 없이 스스로 이루려는 의지와 기회도 잃은 채 살아왔다.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나 자존감은 떨어지고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사고와 삶의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디즈니는 100년 만에 <위시>에서 ‘왕과 왕비는 행복하게 오랫동안 살았답니다.’가 아니라, ‘그들은 행복하게 오랫동안 살았답니다.’로 행복의 주체가 달라진 엔딩 크레딧을 올렸다. 이 결말의 중심에는 왕의 비밀을 폭로하고 그의 독단과 폭정, 횡포에 맞서 저항의 나팔수가 되었던 ‘아샤’라는 흑인 소녀가 있었고, 이에 동조하며 연대를 다짐하는 7인의 친구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앞줄에 서서 시민들 안에 잠자고 있던 정치는, 또 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시민의식을 깨우며 연대를 호소하고 이끌어 낸 ‘달리아’라는 목발을 짚은 소녀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성, 왕비가 있었다.
거울 앞에 서서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를 외쳐대던 왕비가 아니라, 아샤와 달리아의 편에서 그 뜻에 지지하고 동조하며, 백성들과 연대해 잘못된 방향으로 폭주하는 왕에 맞서 저항하는 선봉에 섰다. 디즈니로써는 혁명이다. <위시>에서 성취한 것들 중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것이 바로 이 여성들이다. 이들을 통해 소수자성과 여성성의 승리를 경험하게 하며, 정의가 승리한다는 서사를 판타지에서 현실로 이주시킨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이 작품에 대한 세간의 평가들에서 좋은 편에 서게 된다.
그런데 <위시>의 서사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식이 보였고 관련 정책과 제도, 시스템의 일방적이고 시혜적이며 보호 중심의 기조와도 겹쳐 보였다. 특히 왕의 정책적 방향과 독단적 통치로 인해 변화되는 아샤 할아버지와 로사스 사람들의 사고와 삶의 태도, 처하게 된 현실에서는 우리나라 거주시설 중심 정책의 이면들이 떠올랐고, 탈시설 정책이나 중증장애인 권리중심공공일자리정책, 돌봄 지원정책, 그리고 지원 주택과 활동지원 정책 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자립과 노동,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권리 등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존폐 위기에 처해 있는 요즘의 현실과도 겹쳐졌다.
무엇보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빼앗아버리고, 일방적으로 지원을 바꾸거나 없애고 줄이는 것이 일상이며 이 모든 절차에서 장애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시되는 무례한 행정이 당연시된다. 이 모든 정책과 행정에는 우리나라의 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즉 시혜와 동정, 보호 중심의(개인, 개별성, 당사자성이 무시되기 쉽고 편한, 일괄과 분리, 배제의 잘못된 기조가 전제된) 기조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위시>에서 매그니코피 왕의 정책적 기조에서, 또 백성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태도에도, 배신감으로 폭주하는 내면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음이 보였다.
그러나 소원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선언한 ‘아샤’와 ‘달리아’, 이들과 연대하는 6인의 친구들과 왕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있었듯, 지금 목청을 높여 장애차별의 현실을 알리며 거리에서, 광장에서 또 지하철에서 투쟁하는 장애여성운동가들이 있다. 그리고 이 투쟁에 지지를 표하는 시민들, 함께 곁을 지키는 시민사회단체도 겹쳐졌다. 현실에서 이들이 가진 소수자성, 여성성이 승리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위시>는 왕의 시대가 저문 후 로사스의 변화를 스케치한다. 왕비가 여왕이 되고 아샤가 보좌관이 된 로사스는 이들이 가진 여성성과 소수자성으로 변화를 불러온다. 아샤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져 다음 세대에게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기쁨과 희망을 전수하는 세상이 되었고 하늘을 나는 게 소원인 사람은 여왕이 직접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과 이어줘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며,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게 사는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발렌티노(양)의 소원이 존중받고 지지받는 사회, 이룰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고, 방법들을 함께 고민하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세상에는 여왕이 가진 여성성의 정치력과 아샤와 달리아가 가진 소수자성의 마법이 있다.
이 장면 장면들을 통해 디즈니가 다수의 행복과 편의를 지향하는 정치, 남성성이 지배하는 정치의 비판적 견해와 종식의 당위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들의 투쟁은 승리할 것이며 이 승리가 가져올 세상에도 분명 여왕이 가진 여성성의 정치력과 아샤와 달리아가 가진 소수자성의 마법이 있을 것이다. 소수자성, 여성성은 세상을 구원할 키워드이며,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키워드이므로.
작성자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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