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의 인권에 기여한 중요 미국 판례 두 가지 > 현재 칼럼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기여한 중요 미국 판례 두 가지

법으로 만나는 세상

본문

 
들어가며
2015년 미국의 시드 월린스키(Sid Wolinsky) 변호사와 존 워다치(John Wodatch) 변호사를 뵌 적이 있습니다. 두 원로 변호사들은 미국의 장애인 인권을 이끌어 온 인권 변호사입니다. (함께걸음 2015. 6. 25. “한국 장애계,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의 삶 알려야”)
 
이들에게 한국의 강제입원과 장기입원, 강제치료 등 정신장애인들의 인권문제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자 두 분은, 한국의 현재 상황이 미국의 3, 40년 전 상황과 같다면서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국은 많은 부분이 개선되어 지금은 이전과 같은 상황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은 공익소송이 발전해 있는 나라입니다. 특히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법을 통해, 소송을 통해 개선해 왔습니다. 미국 사회가 시도해 온 법을 통한 평등의 실현, 소송을 통한 법적 권리의 확보는 우리에게도 도전의식을 심어 줍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도 그렇습니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탈원화 정책을 펼쳤고,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를 확대하기 시작해서 병상수와 입원 기간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탈원화가 가능하게 된 데도 공익소송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정신장애인의 탈원화 및 인권증진에 기여한 미국의 판례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정신장애인의 처우권과 정신병원 최소기준을 수립한, Wyatt v. Stickney 사건(와이어트 소송)
 
배경
1970년 10월 23일, 와이어트(Wyatt)를 포함해 미국 앨라배마주 브라이스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환자들이 앨라배마 정신건강국 및 그 국장 스티크니(Stickney)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브라이스 정신병원에는 무려 5,200명의 환자가 치료라는 명목으로 강제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소송이 제기된 배경에는 병원으로 투입되는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원인이 있었습니다. 당시 앨라배마주의 담뱃세가 인하되면서 정신건강국의 세수가 감소하였고, 이에 브라이스 병원에 투입되는 주 예산 역시 삭감되어 병원 직원 중 99명이 해고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병원 직원의 해고에 따라 환자들을 적절히 치료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병원 내 환자의 처우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소송의 내용
와이어트 소송의 담당 판사인 존슨(Frank M. Johnson) 판사는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의 처우에 관한 최소기준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이는 정신병원 입원환자의 처우권을 인정한 최초의 판례가 되었습니다. 존슨 판사는 "앨라배마주가 수천 명의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정당화가 될 수 없고,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은 개별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병원이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준수하지 못했으므로 적법 절차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앨라배마주와 브라이스 정신병원에 입원환자를 위한 최소한의 의료 및 헌법 표준을 마련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존슨 판사는 1972년 정신질환자와 발달장애인에 대한 최소한의 헌법적 치료 기준을 담은 역사적인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추후 와이어트 기준(Wyatt Standards)이라고 불리는 이 기준은 (1)개별화된 치료 계획 (2)치료 관리자격을 갖춘 충분한 인력 (3)인도적인 심리적, 물리적 환경 (4)환자의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이라는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1970년에 제기된 이 소송은 무려 33년이 흐른 2003년에 최종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소송의 결론은 브라이스 병원이 위 와이어트 기준을 준수하였다는 것이었지만 이 소송은 정신병원 입원환자의 처우에 관한 최소기준을 수립한 역사적인 소송이 되었습니다.
 
치료감호처분이 내려진 정신질환자의 치료권과 관련된 기준을 수립한 Charles C. Rouse v. Dale C. Cameron 사건(로우즈 소송)
 
배경
1962년 새벽 1시 45분경 당시 18세였던 Charles C. Rouse(로우즈)는 캐리어에 총과 수백개의 탄약을 넣어 이동하다가 경찰에게 발각되었습니다. 로우즈는 무면허 총기 소지를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심신미약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았고, 정신병원인 Saint Elizabeths 병원에 강제 수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무면허 총기 소지죄의 최고형은 징역 1년인데 반해, 소송을 제기할 당시 그가 병원에 수용된 기간은 4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징역형보다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967. 4. 12. 로우즈는 본인이 수용되어 있던 병원의 병원장인 Dale C. Cameron을 상대로 하여 인신보호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소송의 내용
로우즈는 인신보호청구 과정에서 본인의 어머니와 변호사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심신미약 항변을 하여 강제수용 결정이 내려진 것에 대해 항의하였고,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방법원은 로우즈의 심신미약상태가 치료되었는지에 관해서만 판단을 했고, 결국 치료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인신보호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소송은 항소법원으로 회부되었으며 항소법원은 지방법원의 판단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방법원의 결정을 지지하였고, 로우즈의 수용 종료를 명하지 않았습니다. 로우즈가 심신미약 항변을 하지 않고 형법상의 책임능력을 인정하였다면 최대 징역 1년에 그쳤을 사건임에도 변호사와 보호자에 의해 심신미약 항변을 하게 되면서 사실상 무기한의 강제수용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항소법원의 판결은 치료감호된 정신질환자의 치료권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기준을 수립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 사건 이후 정신병원 내 입원환자들의 치료환경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항소법원에서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적절한 치료와 관리란 심리상담사와의 단순 면담 정도로는 부족하고, 개인의 질병과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개별적인 활동과 치료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항소법원은 로우즈에게 적절한 치료가 제공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추가적인 청문회(hearing)를 개최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로우즈가 치료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이 엇갈렸지만, 항소법원은 아직 수용을 완전히 종료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인신보호 신청을 갱신할 기회를 부여하면서 추후 그의 수용을 조건부 종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가며
오늘 소개한 두 소송은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송인 것 같습니다. 와이어트 소송의 경우 정신의료기관의 처우권과 최소기준을 수립한 판례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에서 정신의료기관의 시설 및 장비 기준을 두고 있고,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만든 정신병원 인증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리운영상의 기준이지 입원환자에 대한 처우권이라거나 당사자의 권리에 기반한 최소기준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지난해 2월 국회 인재근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정신의료기관에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의 최저기준을 마련하도록 했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서는 의료기관 중 정신의료기관만 서비스 최저기준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담겼고 결국 법 개정에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정신 및 행동장애 환자의 평균 입원기간은 186.6일,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환자의 평균 입원 기간은 194.7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정신의료기관이 단순히 다른 의료기관처럼 치료적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장기간 생활하는 장기수용기능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처우권 확립과 서비스 최저기준의 수립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우즈 소송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제기된 바 있는 치료감호 제도에 관한 것입니다. 심신미약을 고려하여 범죄로 인한 형사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해 준다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긴 기간 동안 장기 수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는 치료감호 제도는 치료감호소 내의 치료환경과 처우, 그리고 치료감호 종료심사의 기준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와이어트 소송과 로우즈 소송과 같이 우리나라도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개선하고 탈원화를 앞당기기 위한 공익소송 운동의 활발한 전개를 제안하면서 글을 맺을까 합니다.
작성자글. 김강원 법무법인 디엘지 공익인권센터 부센터장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