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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료기관의 격리·강박, 치료인가 학대인가?

정신장애인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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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5. 27 새벽, 경기도 부천시 W진병원에 입원해 있던 박모(33세)씨가 장시간 격리·강박 상태에 있다가 사망했다. 다이어트약 중독 치료를 위해 입원한 지 17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타해 위험을 동반한 중증의 정신질환은 물론 의사결정 능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던 환자에게 일어난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신장애 당사자 단체는 '정신병원개혁연대' 를 구성하고, 정신의료기관에서 행해지는 격리·강박을 금지하고 정신질환자 권익옹호체계를 구축하는 입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당사자 단체가 이렇게 강한 응집력으로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이런 사건이 이례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17시간 묶여 있던 70대가 숨졌고, 2017년에는 35시간 묶여 있던 20대가 사망했으며, 2022년에는 춘천의 한 정신병원에서 전체 입원 시간 289시간 중 251시간을 강박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당사자 단체들은 격리·강박을 치료가 아닌 학대로 정의하면서 격리·강박 없는 정신병원 치료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을 정부와 의료기관에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그들은 이것이 폭력적인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기술이자 치료 과정이라는 말로 이들의 요구를 무시해 왔다. 
 
정신의료기관의 격리·강박이란
보건복지부 '격리 및 강박 지침'에 따르면 격리는 입원 환자치료의 일환으로 환자가 응급상황으로 진행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치료 또는 임상적인 상태의 조절을 위하여 제한된 공간에서 일정시간 동안 행동을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박은 환자의 신체운동을 제한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손목이나 발목을 강박대(끈 또는 가죽 등)로 고정시키거나, 벨트를 사용하거나, 보호복을 착용시키거나, 의자에 고정시키는 방법 등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의 지침에는 물리적 강박만 명시되어 있을 뿐 완력을 사용하여 사람을 누르거나 고통을 가하는 조작적 강박, 사람의 의지에 반하여 투여되는 약물을 통해 이루어지는 화학적 강박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2024년 5월에는 대구 소재 정신병원에서 보호사가 격리된 환자의 목덜미를 잡아 넘어트리고 무릎으로 누르는 가혹행위를 하여 고발되었고, W진병원에서 사망한 박모 씨의 경우에도 강한 진정효과를 가진 고역가 주사제 처방이 물리적 강박과 함께 이루어졌다. 당사자들은 이러한 주사제가 코끼리도 쓰러뜨린다고 하여 ‘코끼리 주사’라고 부른다. 이렇듯 강박은 단지 신체활동의 제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강박과 물리적 강박이 복합적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격리·강박은 왜 계속되는가
격리·강박이 발생하는 데는 서비스 제공자들이 가진 인식, 지식과 기술 그리고 정신의료 정책과 관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첫째, 정신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격리·강박이 치료를 거부하거나 폭력적인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받아들이거나, 이러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 필수적인 치료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과거부터 이런 방법이 문제없이 사용 되어 왔고, 격리·강박 지침만 잘 지킨다면 아무런 불이익을 당할 염려가 없는 상태에서, 소위 문제 있는 환자를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이 방법을 스스로 포기할 이유가 없다.
 
둘째, 격리·강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비강압치료를 우리나라 정신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제대로 배워본 적이 별로 없다. 안전하고 인권 기반의 접근으로 알려진 고조완화기법, 안정화치료 접근 등 의미 있는 교류와 지지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훈련과 폭력적인 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한 대안적인 전략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리적 통제를 통한 문제해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격리·강박이 실행되는 건 정부 지침에서 이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격리·강박 지침'에 담겨 있는 적용 기준과 적용 시의 원칙만 준수하면 격리·강박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며, 설사 사망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아울러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임에도 공적 감시나 지도·감독은 매우 부실한 것도 격리·강박을 용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현행 지침에서 격리·강박은 담당 의사 1인의 지시만 있으면 가능하고, 그 이유를 환자 또는 보호자에게 설명하기만 하면 된다. 격리·강박의 사유와 진행 과정,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진행해야 하는 내부 절차 규정도 없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알리고 감독 관청에 보고해야할 의무도 없는 현행 지침은 격리·강박을 통제하는 지침이 아니라 허용하는 근거로만 작동할 뿐이다.
 
격리·강박, 무엇으로 볼 것인가?
격리·강박을 주제로 다루는 토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목적’이다. 치료진은 치료가 목적이라고 하고, 당사자들은 처벌이 목적이라고 한다. 치료진이 치료를 위해 실시한다고 주장하는 격리·강박을 당사자들은 순응과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처벌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격리·강박에 대한 논의에서 행위의 목적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정신과의사도 처벌을 목적으로 묶는다고 말하지 않으며, 치료진 마음 속의 의도를 파악할 수도 없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격리·강박이라는 행위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지다.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을 정신장애 영역에 적용하기 위해 발표한 퀄리티라이츠(QualityRights) 중 '강압·폭력 및 학대로부터의 자유'에서 WHO는 직접적인 신체적 강박, 기계적 강박 또는 당사자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화학적 강박을 포함한 격리 및 강박을 ‘폭력’이자 ‘학대’로 정의하고 있다. 격리·강박은 치료가 아니라 치료의 실패를 의미한다.
 
WHO뿐만 아니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도 지난 2022년 2차·3차 병합 대한민국 정부심의에서 정신병원 내의 격리·강박 문제에 우려를 표하면서 신체적 억압의 사용을 즉각적으로 중단시킬 것과 진정절차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권고하였다.
 
W진병원 사망 사건 이후에 진행된 당사자 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8월 19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격리·강박은 병식이 없는 환자의 회복을 위한 과정에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치료기술이자 불가피한 치료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WHO가 학대라고 정의한 것을 우리나라 정신의학자들은 여전히 치료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인식의 수준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격리·강박, 어떻게 멈출 것인가
격리·강박이 이루어진다는 치료진의 인식, 지식과 기술, 정신 의료 정책과 관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이를 중단하기 위한 노력도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인식과 기술 측면에서는 격리·강박을 바라보는 치료진의 인식을 개선하고, 안정화 치료를 위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금도 정신의료기관 종사자들은 1년에 4시간 이상 인권교육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이러한 인권교육과 보수교육 등을 통해 격리·강박의 문제점을 알리고 고조완화기법 등의 비강압치료에 대한 지식과 기술 향상을 도와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정신의료계의 주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의료 정책과 관리 측면에서는 국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조처가 시급하다. 격리·강박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격리·강박을 모두 당장 금지하기 어렵다면 환자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격리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더라도 강박은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격리를 위한 안정실의 최저 기준을 설정해서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이 공간에서 쉴 수 있도록 조치하면 굳이 강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행히 지난 8월에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아울러 정신질환자 권익 옹호 체계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관련 입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격리·강박을 포함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학대를 명확히 정의하고, 정신질환자권익옹호기관을 설치하여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치료환경을 인권친화적인 치료환경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그래야 당사자들이 만들자고 주장하는 ‘가고 싶은 병원’이 될 수 있다.
 
입원 경험이 공포와 두려움과 굴욕이라면, 당사자들이 입원을 거부하는 것은 병식이 없는 게 아니라 합리적 선택 아닌가!
 
“사람들이 난폭하게 행동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싶다면, 우리도 그들의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 WHO
작성자글. 박재우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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