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장애, 우리가 멈춰야 하는 이유
전쟁 속 장애
본문
△ 라파 (사진출처. Ibraheem Abu Mustafa_Reuters)
“호죽기가 이제 비행기 이름이여... 전투기. 호죽기가 막 부산서 와... 쫙 날아오더니... 탕!하고 막 쏟아 놓는거야... 폭탄인지 뭔지도 모르지 뭘 쏟아놓는지. 금방 쏟아놓으니께 난리가 나잖아. 금방 불이 막 펑펑펑 나고 사람들이 모두 내빼고... 퍼부니까 뭐 막 불바다가 된기여.... 우리 엄마도 인제 그래도 머슴아들이야 살려야 한다고 머슴아들은 뱃속에 넣고 엎드리고 나는 어머니 뒤에 삼베치마 그걸로 놓고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었어. 우리 엄마가 귀 막고 눈 막아라.... 그래가지고 있었는데, 막 퉁닥퉁닥 소리고 뭐고, 우리 어머니 맞았어, 아파서 죽는다고 막, 아이고 큰일났네 큰일났네 이래... 옆에서 우리 고무부가... 고래같이 고함을 질러... 그래서 내가 눈을, 치마를 휙 걷어 부치고 이렇게 고개를 들고 쳐다 보니께 고모부가 희떡 까졌는데, 창자가 이만치 올라와. 배에서... 그러는 (사이에) 머리에 나는 맞았어.. 파편,.. 그래가지고, 이래 눈이 빠졌네. 아이고 엄마 나 눈 빠졌는데 이렇게 이러니까 그냥 가만히 엎드리고 있으라니께 왜 질랄하고 일어났어 이랴. 그래 엄마 난 눈이 덜렁덜렁해.. 나 이것 좀 띠줘 엄마 이거..(어머니는 여덟 군데 총을 맞으심) 이 망할 년아 나도 죽겄다. 니게 떼내던지 어찌던지 이리 하랴고 그랴. 그래서 내가 떼 내려고하나 차마 못 떼내서 막 울면서 그 옆에 집에를 쫓아 가더라내. 거기 가서.. 나 좀 눈 좀 떼달라고 하더래. 그래 내가 눈을 어떻게 떼냐. 이러면서.. 네 엄마한테 쎄게 가라고 막 야단을 쳤드랴. 아카시나무 밑에서 사람소리 나고 이렇게 인기척이 나면 또 자꾸 총을 쏘니까. 그래가지고 그 길로 와서.. 내가 탁 잡아뗐어. 막, 내가 내 손으로 내 눈을 잡아뗐어."1)
1950년 7월의 마지막 주, 어느 뜨거운 여름날 머리 위에서 굉음과 함께 폭탄인지 뭔지도 모를 것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엄마는 아들을 품고 엎드렸고 열한 살이었던 딸은 엄마 치맛자락을 머리에 덮어쓰고 엄마 발치에 숨었다. 뜨거운 비처럼 포탄이 쏟아지고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 그 상황이 궁금했던 아이는 치마를 들추고 주변을 보다 머리에 포탄의 파편을 맞았다. 충격으로 아이의 눈이 튀어나왔다.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 속에 아이는 스스로 그 눈알을 잡아뗐다. 소현숙의 <신체에 각인된 전쟁>에서 발췌한 노근리 사건의 생존자 1939년생 양진희 씨의 구술이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 사이, 미군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민간인들 사이에 북한군이 잠입했다는 이유로 이뤄진 학살이었다. 생존자 대다수는 제대로 된 치료 없이 어려운 상황에서 상처를 회복해야 했다. 양진희 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었기에 아버지가 직접 만든 약재로 치료를 했지만, 그 과정은 극심한 고통과 어려움을 수반했다. 몇 달씩 상처 부위가 아물지 않았고, 상처 부위에 구더기가 들끓기도 했다. 전쟁 후 그는 사회의 시선과 차별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했고, 집안에만 있는 그를 가엾게 여긴 아버지의 노력으로 17세에 마침내 플라스틱 의안을 착용하게 되었다. 제한적이나마 바깥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눈깔 땡보'라고 불렀다.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눈을 내리깔고 걷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결혼 후에도 양진희 씨의 삶은 가정 폭력과 학대 속에서 힘들게 이어졌다. 남편의 폭력과 시어머니의 학대, 그리고 사회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장애인으로서의 어려움 때문에 이를 견뎌내며 네 명의 아이를 키웠다. 그녀의 삶은 전쟁의 후유증과 가정 내 폭력으로 고통받는 시간들이었으며, 노근리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장애는 차별적 시선으로 가득 찬 사회 안에서 결코 이해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1950년의 한국전쟁이 열한 살 소녀 진희의 몸에 쏟아져 내린 것처럼, 현재진행형의 전쟁 속에 수많은 아이들의 몸에도 전쟁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1월 8일 발간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새로운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1월부터 2024년 4월까지 6개월간 가장 어린 사망자는 생후 1일 된 아기였으며 가장 고령의 사망자는 97세의 여성이었다.2) 가자지구의 유니세프 통신원이었던 테스 잉그램(Tess Ingram)은 폭격으로 인해 열린 상처를 봉합하지 못한 채 걷고 있는 아홉 살의 소녀와 마취 없이 팔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던 열세 살의 소년을 만났으며, 허브를 사러 갔다가 머리에 총격을 입은 열 살 소년이 결국 다음날 숨지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3)
지난 10월 13일 발표된 팔레스타인 정보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장애 인구는 68,300명이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의 등록된 장애 사례는 1만 건 늘어났고, 약 2만 2천 명 이상이 앞으로 재활서비스를 통해 회복해야 할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료시설에 대한 폭격으로 인해 재활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거점들이 사라졌으며 의족을 포함한 보조기구들도 동이 났고, 재활훈련을 담당할 수 있는 물리치료 전문가 39명이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다. 제때 치료 받지 못하고 영구적인 장애를 얻게 될 사람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장애를 얻게 되는 사례들도 많지만, 전쟁은 장애유형에 관계없이 모든 장애인들에게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한다. 특히 거동이 불편해 이동에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의 경우에는 타인의 지원 없이 피난이 어려운 상황이며, 포격이 쏟아지는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지적장애나 자폐가 있는 아동들의 실종사례는 수없이 많이 보고되었다.4)
△ 노근리 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사진출처. 노근리 사건 홈페이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뉴스는 전쟁의 소식으로 가득하다. 간밤에 우크라이나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본토 공격 허가를 얻고 애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을 러시아 브랸스크로 발사했고, 러시아는 핵 교리를 개정하여 핵사용의 문턱을 낮췄다. 독일은 인공지능 드론 4천 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영국과 프랑스 역시 미국에 이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가할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한반도의 남과 북 역시 이 전쟁의 광풍 속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한 편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사망하고 부상을 입는 동안, 다른 한 편의 사람들은 그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를 팔아 무지막지한 수익을 벌어들인다. 전쟁으로 사망하고 부상 입는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라면,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특정 소수이다.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는 최소한의 윤리도, 인간성에 대한 고민과 망설임도 없이 권력을 가진 소수만 전쟁으로 돈 버는 세상을 만들어 왔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담긴 한 생존자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 그녀는 포격으로 피 흘리던 돌고래도 불쌍하고,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친구들, 동료들도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불쌍함’은 내가 다른 존재보다 더 나은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전쟁의 참혹함 속에 살아갔던, 살아가고 있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모든 존재들에 대한 깊은 애통함이다.
전쟁이란 오빠를 품고 엎드린 엄마 발치에 엎드렸던 열한 살 소녀가 자기 손으로 튀어나온 제 눈알을 떼어내야 하는 참혹함이고, 열세 살 소년이 마취 없이 팔을 잘라내야 하는 아득한 고통인데, 그 참혹함과 고통이 이 전쟁을 멈추지 못한다면 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마음,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 온몸이 저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 참혹함 앞에 멈추어 애통해할 줄 아는 그 마음들에 기대는 것 말고 전쟁을 멈출 수 있는 무엇이 또 있겠는가. 몸에 각인된 전쟁은 그들의 것만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촘촘하게 연결된 이 세계에서 그 전쟁은 외면하고 싶어도 모든 ‘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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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근리국제평화재단, 노근리사건 생존피해자와 유족들의 구술기록(2), 86~88쪽. 소현숙. (2021). 신체에 각인된 전쟁의 상처와 치유: 한국전쟁기 노근리 피해자 구술에서 나타난 장애와 젠더. 동방학지,(197), 199-224.에서 재인용.
2) Six-month update report on the human rights situation in Gaza: 1 November 2023 to 30 April 2024 - OHCHR. (https://www.un.org/unispal/document/update-report-08nov24/)
3) Children disproportionately wearing the scars of the war in Gaza. https://www.unicef.org/press-releases/children-disproportionately-wearing-scars-war-gaza-geneva-palais-briefing-note
4) 68,000 Disabled in Gaza: What is life like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during war? (https://english.palinfo.com/reports/2024/10/13/326934/)
작성자글과 사진.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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