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돌봄을 위한 기술에도 '돌봄'이 필요하다
4차산업혁명과 장애
본문
4차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기술들이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장애 돌봄의 부담을 경감시킬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다. 그간 뇌 임플란트나 웨어러블 로봇 등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들이 주목을 받아 왔지만, 정신질환이나 발달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개입하고 일상을 보조하는 기술들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빅데이터 기술과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장애를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는 도구, 각종 장애의 관리와 치료를 위해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디지털 치료기기, 사용자의 신체적, 정신적 상황에 꼭 맞는 상호작용을 통해 치료를 제공하고 정서를 안정시킨다는 돌봄 로봇들, 원격 진단과 처방을 가능하게 하는 AI 의사 등, 기술이 한창 개발되는 분야에서 내놓는 청사진에서 새롭게 등장할 비인간 기계들은 그 자체로 해결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애 돌봄을 위해 개발되는 기술들에도 다시 ‘돌봄’이 필요하다. 각종 작업이 자동화된 기계들은 장애를 돌보는 복잡다단한 일상의 실천들을 사람 대신 맡아줄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계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몸과 마음, 일상의 관계들에 대해 돌아보고 조정하는 일들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정신장애인을 보조하고 훈련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비인간 기계들이 등장하는 시대에,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좋은 해결책이 되기 위해 짚어봐야 할 점들을 살펴보자.
첫째, 기술이 각종 지식과 관념, 규범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점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잊기 쉬운 사실이기도 하다. 일례로, 인공지능 기반의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분야에서는 안구 운동과 상체 자세, 행동 양상 등을 분석하여 자폐성 장애를 지닐 위험을 계산해내는 알고리즘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도구는 자폐성 장애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에 대한 심리학 및 인접 분야의 지식과 다양한 기법들이 구체화 된 산물로, 특히 컴퓨터 비전 중심으로 진단 도구를 구성하려는 기획은 이들이 타인과 적절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예시로 각종 ‘소셜로봇’을 들 수 있는데, 발달장애나 인지장애를 지닌 사람들과 언어적, 비언어적 상호작용을 반복적으로 하도록 설계된 휴머노이드 로봇들에는 해당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과학적, 대중적 이해가 담겨 있다. 예컨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로봇 연구센터가 개발한 ‘카로(CARO)’는 행동치료의 이론에 바탕하여 눈맞춤, 얼굴 표정 인식 등을 훈련하는 치료 프로토콜이 적용되어 있으며, 자폐성 장애를 지닌 사람은 ‘복잡한’ 사람보다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기계와의 상호작용을 선호할 것이라는 관념 또한 전제되어 있다.1)
문제는 이러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활용되는 가운데 종종 특정한 몸과 마음이 특권화된다는 것이다. 각종 질환이나 장애를 조기에 진단하는 기술은 그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갖는 특성을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러한 특성이 가능한 한 빨리 포착되고 의료적으로 치료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다양한 소셜 로봇은 눈을 맞추거나 표정을 읽는 것, 상대와 언어를 통해 소통하는 것 등을 반복적으로 연습시키는데, 이러한 훈련은 평균적인 몸과 마음을 지닌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양상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한 훈련의 과정에서 활용되는 각종 데이터 기술과 머신 러닝 기법은 장애를 지닌 사람의 시선이나 몸짓 등을 계속해서 수집하고 축적하는데, 이는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갖는 특성을 분석할 수 있는 차이이자 관리해야 하는 문제로 만들어 낸다.
이러한 기술들이 별다른 숙고 없이 활용된다면 우리 사회의 에이블리즘(ableism)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비장애중심주의, 장애차별주의, 능력주의 등으로 번역되는 에이블리즘은 통계적 평균에 가까운 신체적, 정신적 상태를 정상이라고 두고 여기서 벗어난 몸을 불완전하고 교정되어야 할 것으로 바라보는 차별적 관점을 의미한다. 에이블리즘이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장애는 마땅히 치료되어야 할 문제로 치부되고, 다양한 진단 기술과 치료 기법들은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로 강요된다. 각종 질환이나 장애에 대한 관념이 인공지능 개발의 관행에 적용될 때 장애인의 장애는 차이가 아닌 결함으로 재차 확인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해 상호 간의 적응이 추구되기보다는 장애인의 행동을 고치는 정상화 방식이 정당화된다. 이것이 각종 진단과 치료의 기술들이 어떤 몸과 마음을 기준으로 삼는지, 어떤 몸과 마음을 문제로 만드는지 면밀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 자폐성 장애를 지닌 아동의 학업과 사회성을 돕는 인공지능 로봇 '키위(Kiwi)'(사진출처.National Science Foundation News)
둘째, 기술의 기능과 효과는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장애가 있는 몸과 마음에 개입하는 새로운 기술과 치료법이 쏟아져 나오는 곳에서 기술에 대한 환호는 끊이지 않는다. 4차산업혁명 담론에서는 더더욱 그러한데, 머신러닝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은 기계의 각종 기능이 자동화되어 기계 스스로 모든 것을 실현하는 듯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기술들이 각종 질병이나 장애, 또는 노화로 인해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인력과 자원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다양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증상의 관리를 넘어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역할까지 담당할 것으로 간주 되며 ‘소셜로봇’, ‘돌봄로봇’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지난 연재에서 과학기술학자 강미량이 잘 보여주었듯이, 기술은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으며 언제나 크고 작은 조정과 수선을 필요로 한다.2) 그런 의미에서 기술의 기능과 효과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며, 따라서 기술을 기술로 만드는 일상적인 실천들 또한 부각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소셜로봇의 ‘사회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보자. 자폐성 장애를 지닌 아동의 행동치료를 위해 개발된 ‘카로’는 6~7세 아동의 키와 비슷한 110cm로 설계되었고 파란색 모자를 쓴 어린아이를 닮은 휴머노이드로 구현되었다. 이 로봇에는 카메라와 마이크, 센서가 탑재되어 상대 아동과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행동치료의 목표와 기법에 기초해 눈을 맞추거나 표정을 인식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다. 치료실에서 이 로봇은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시시각각 표정을 변화시켜 기쁨이나 슬픔을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로봇은 아이가 시선을 맞추는지, 감정을 알아챌 수 있는지 평가하며, 상대 아이로부터 올바른 눈 맞춤이나 대답이 나오면 동요나 춤으로 보상한다. 물론 이러한 로봇이 아동의 사회성을 훈련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며, 실제로 로봇이 몇 가지 훈련에 있어서 치료사와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기도 했다.3) 그러나 이러한 로봇의 기능이 구현되기까지 로봇의 활용 범위에맞는 연령과 지능, 능력을 지닌 아동이 선정되고 치료실의 환경이 꾸려져야 하는 등 세부적으로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있으며, 이는 로봇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결국 로봇과 인간의 상호작용은 완벽한 프로그램이 내장된 로봇의 성취라기보다는, 그것의 적절한 작동이라는 사건을 만들어 가는 인간과 기계의 협력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의 노동이 인간의 노동보다 훨씬 더 부각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평가절하 되어왔음을 비판한 바 있다. 과학기술학자 하대청(2019)4)은 이러한 젠더화된 노동인식이 인간의 능숙한 돌봄노동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면서 오히려 기계에 의한 돌봄노동이 적극적으로 가시화된다고 지적한다. 기계의 자율성이라는 허구에서 벗어나 기술과 인간이 실제로 맺고 있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직시할 수 있을 때 기술을 매개로 한 돌봄이 보다 적절히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술이 우리의 능력과 관계 맺음의 양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장애를 지닌 사람을 보조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 적용될 때 당연히 장애인 당사자의 능력은 변화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의사나 치료사, 당사자의 가족이나 주변 지인의 능력 또한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한다. 일각에서 개발되고 있는 ‘감정 센서’를 예시로 살펴보자. 말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정신장애인의 감정 상태를 판단하고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들의 심장 박동을 측정하여 감정을 인식하는 기술이 보편화되었다고 치자. 이러한 센서와 사물인터넷이 가득한 사회에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표정이나 몸짓 등을 살피면서 이들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려는 주변 사람들의 시도가 크게 줄어들 것이며, 결국 장애인 당사자와 주변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훈련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
△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개발한 감정 표현 로봇 'CARO'. 시계방향으로 기쁨,화남,놀람,슬픔(사진출처.분당서울대병원)
치료에서 로봇이 활용되는 경우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치료라고 하면 치료 대상자의 능력이 변화하는 과정에만 주목하기 쉽지만, 치료의 과정에서 보호자와 치료사 또한 변화한다. 행동치료의 주요 기법 중 촉구(prompt)를 사용하는 과정을 예시로 살펴보자. 촉구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지시에 반응하여 올바른 행동을 할 가능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특정한 언어나 신체접촉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치료사나 보호자는 장애인 당사자를 적절히 유인하거나 물러나게 하는 방식을 새로 배우게 된다.
적절한 촉구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은 상대방이 보이는 단서에 반응하고 상대방의 경험에 대한 관점을 획득하게 도와줌으로써 장애인 당사자와 주변인이 함께 세상에서 길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겪게 해주는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이러한 치료의 과정이 완전히 로봇으로 대체된다면, 치료 대상자의 기능은 단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겠지만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이 상대에 반응할 수 있는 자세와 능력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듦으로써 결국 장애인이 관계 맺을 수 있는 사회의 폭 또한 줄어들 것이다. 다양한 치료 로봇과 기법을 매개로 특정한 기술적,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질 때, 기존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 관계를 이루는 인간과 비인간의 능력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몇 달 전 장애인복지관에 방문하여 디지털 치료의 현장을 잠깐 본 적이 있다. 치료실에는 각기 다른 장애를 지닌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인지 기능 향상을 목적으로 개발된 컴퓨터 게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 명의 치료사가 이들 모두가 각자의 컴퓨터로도 동일한 게임을 수행하며 경쟁할 수 있도록, 게임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진행 속도를 조정하고 있었다. 여기에 활용된 디지털 치료는 화려한 인공지능 기술도 아니었고 각 개인에게 딱 맞는 맞춤형 기술도 아니었다. 이런 게임을 몇 차례 반복한다고 해서 인지 기능이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금 새로운 기술을 매개로, 그곳의 사람들은 서로의 반응을 살피고 속도를 맞추며 새로운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완벽한 기술은 아니지만 열려 있는 기술, 서툰 작동 모습과 그것을 보완하는 인간의 노동을 숨기지 않는 기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상대에게 반응하려는 자세와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남겨 두는 기술. 4차산업혁명의 담론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현장의 실마리를 눈여겨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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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oon, H. (2024). “Warm Robots” for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The Thermodynamics of Human Sociality and the Technology of Inclusion in South Korea. Catalyst: Feminism, Theory, Technoscience, 10(1), 1-24.
2) 강미량: 4차 산업혁명에는 '장판'이 필요하다 https://www.cowalknews.co.kr/bbs/board.php?bo_table=HB03&wr_id=10224
3) Yun, S. S., Choi, J., Park, S. K., Bong, G. Y., & Yoo, H. (2017). Social skills training for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using a robotic behavioral intervention system. Autism Research, 10(7), 1306-1323.
4) 하대청. (2019). 휠체어 탄 인공지능: 자율적 기술에서 상호의존과 돌봄의 기술로. 과학기술학연구, 19(2), 169-206.
작성자글과 사진. 장하원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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