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인가, 로션인가 > 대학생 기자단


샴푸인가, 로션인가

본문

지난달 12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날 저녁에 뉴욕에서 약 4,0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한 자매님이 제가 출장을 간다는 말을 듣고,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답니다. 혼자 어떻게 가느냐고. 제가 혼자 출장 다니는 것을 대단치 않게 생각했던 아내는 그냥 혼자 잘 다닌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자매님은 놀란 말투로 저에게 참 대단하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하셨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시력이 전혀 없는 제가 어떻게 먼 곳으로 출장을 가곤 하는지를 나눌까 합니다. 제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항공사와 호텔 직원들의 친절과 시각장애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 등이 저를 얼마나 많이 돕는 지를 나누고 싶은 것이지요.

계획대로 12일 오후 4시쯤에 아내는 저를 공항에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오른손으로는 지팡이를 잡고, 왼손으로는 가방을 끌면서 저는 공항 안으로 들어섰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항공사 직원에게 제가 타고 갈 비행편을 알려주고, 게이트까지 안내해 줄 것을 요청했지요. 직원은 즉시 저를 안내해 줄 동료를 불러주었고, 그 직원은 휠체어를 끌고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의자에 앉으라고 하는 직
원에게, 저는 웃으면서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휠체어를 밀기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가방만 휠체어에 올려놓고, 저와 직원은 승객과 짐을 검사하는 보안검색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12년 전에 있었던 911테러 사건 후부터는 검색 절차가 많이 복잡해졌지요. 입고 있던 자켓과 신발을 벗고, 벨트도 풀고, 주머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통에 넣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가는 컴퓨터를 가방에서 빼서 검색대 직원에게 보여주어야 하는데요, 저는 점자 컴퓨터와 일반 랩탑 컴퓨터를 갖고 다니기 때문에 이것이 더 복잡했습니다. 이런 절차를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직원이 도와주고, 비행기를 탈 게이트 앞까지 안내해 주었습니다. 여행을 자주 하기 때문에 제트웨이를 걸어서 비행기 안까지는 혼자 갈 수 있었고, 6시간쯤 걸리는 비행시간 동안에는 다른 사람의 특별한 도움 없이 견딜 수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저는 역시 항공사 직원의 도움으로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고, 제가 4일 동안 묵을 호텔로 향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자 벨맨이 저의 가방을 받아주었고, 프론트로 안내해주었습니다.특별한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프론트 직원은 저를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운 방을 주었고, 벨맨이 저를 방까지 안내해주었습니다.

이때가 참 중요합니다. 호텔 안에서 제가 혼자 다닐 수 있도록 뭐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부탁했고, 벨맨은 친절하게 저를 안내하면서, 여러 군데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배운 것이 있었는데요,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스마트 엘리베이터를 작동하는지 였습니다. 스마트 엘리베이터 안에는 번호 버튼이 없습니다. 몇 층에 갈 것을밖에서 전화 키패드 같은 것에 입력하면, 다섯 개 엘리베이터 중 어느 것이 올 지가 스크린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키패드 밑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여자 목소리로 필요한 정보를 말해 줍니다. 입력한 층이 몇 층이고, 티패드 왼쪽이나 오른쪽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올 거라는 말을 해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 어느 쪽에있는 몇 번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말을 세 번이나 되풀이합니다. 시각장애인이 탄다는 것을 알고 오랜 시간을 주는 것 같았는데요, 제가 탄 후, 문을 닫는 버튼을 안에서 누르면, 이 말을 되풀이하지 않고, 즉시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떠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다른 사람 도움 없이 4일 동안 여러 층을 혼자 다니면서 컨퍼런스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풀지 못한 호텔 생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화장실에 제공되는 세 가지 병에 각각 무엇이 들어있는 지를 모른다는 것이지요. 샴푸, 린스, 그리고 로션이 든 병이 똑같아서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샴푸와 린스는 둘 다 머리 감을 때 쓰는 것이니까 잘못 알아도 문제가 없지만, 머리에 로션을 쓸까 염려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체크인 후에 방까지 안내해주는 벨맨에게 물어봐서 병들을 구분해서 놓는데요,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매일 매이드 서비스가 물건을 새로 제공하면서 다시 병 세 개를 나란히 놓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작성자신순규 뉴욕 월가 애널리스트  dung727@naver.com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