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도에 버려진 지적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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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평화로웠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가야 닿을 수 있는 신의도 섬, 선착장에 내리니 천사의 섬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반기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사방에서 따스한 해풍이 불어왔다. 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후의 나른한 분위기가 감싸고 있는 평화로운 섬, 발을 딛는 순간 일단 그 어디에서도 노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선착장을 벗어나 섬 전체에 널려 있는 염전 중 한 곳으로 다가선 순간 환상은 금방 깨졌다. 멀리 가지도 않았는데 코앞에서 바로 염전에서 사실상 노예로 일하고 있는 한 지적장애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염전주인의 노예인지, 아니면 가족의 노예인지 불분명했지만 붙잡고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튼 그의 신분은 노예가 분명했다.
그의 사연은 이랬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그는 3년 전에 어느 역 근처를 헤매다가 악덕 직업소개소 업자에게 걸려 110만원에 팔려서 염전으로 들어왔다. 그를 사들인 염전 주인이 조회해 보니 그는 실종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곧바로 서천에 사는 부모와 누나 등 가족이 그를 만나러 목포로 왔다. 그런데 결론은 가족들은 그를 서천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그를 염전에 남겨두고 대신 그가 받는 임금을 송금받기로 염전주인과 구두계약을 하고 가족들은 목포를 떠났다.
그는 염전에 있는 3년 동안 단 한 번도 집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급여로 수 십 만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돈을 구경해본 적이 없다. 임금이 바로 그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가족에게 송금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게 물어보니 그는 이번 염전 노예사건 단속에서 어쨌든 임금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분류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번 염전 노예 사건을 단속하고 있는 경찰과 장애인 인권센터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의도에서 일반적인 상식을 깨고, 가족이 있는 지적장애인 염부가 여러 명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같이 가족들이 노예로 일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데려가기를 거부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경찰의 단속 과정에서 어떤 염전주인들은 장애인 가족들이 써줬다는 ‘임금을 주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제발 데리고만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내용의 각서를 내밀며 “가족들이 버린 장애인을 내가 거둬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뭐가 문제냐”며 당당함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신의도 노예 지적장애인 가족들 전부가 장애인을 모른 체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걔 중에는 장애인을 데리고 가겠다는 가족도 일부 있다고 한다.
단 그런 경우는 피해 장애인을 10년 넘게 임금도 주지 않고 혹사한 혐의로 염전 주인이 구속 될 지경에 이르자, 서둘러 염전 주인이 수 천 만원을 장애인 통장으로 입금했는데, 그 돈을 확인한 가족이 돈을 노리고 장애인을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염전 노예 사건이 단순 노예 사건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감춰진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지적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들에 의해 버려진 상태에서 염전에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에 이번 사건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부모나 가족들을 탓할 수 없는 게, 사정을 추적해 보면, 나와 있는 답인데, 지적장애인들이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사회 안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지적장애인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버거워하면서 힘겨워 하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 있다.
부모들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가족들은 지적장애인들이 염전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혹사당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장애인들을 염전에 사실상 유기하는 비극적인 일이 지금 신의도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갈 곳 없는 지적장애인들의 현실을 개선하지 않는 한 염전 노예 사건은 계속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겠다.
천사들의 섬이라는 신의도는 원래 매년 3월 말부터 소금 생산하는 일을 시작하는데,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일을 시작하는 시기를 4월 중순으로 미룬 상태이다. 섬 주민들은 이번 노예 사건이 잠잠해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섬 주민들 바람대로 시간이 흐르면 염전 노예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식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아무도 관심이 없을 때 또 얼마만큼의 지적장애인들이 이 섬에 유기 될 것인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는 데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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