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장애인 비하를 하지 않은 자, 돌을 던져라 > 대학생 기자단


단 한 번도 장애인 비하를 하지 않은 자, 돌을 던져라

[김형수의 세상보기]

본문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 재빨리 마음을 짓눌러,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단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르게 될 텐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조선 후기 이덕무 수양서 <사소절(士小節)> 중에서 -

 

말은 그것을 표현하는 대상에 대해 일정의 가치와 판단을 담고 있고 그것은 언어생활을 통해 전달되고 알려져서 그 말에 담긴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게 된다. 특히 그 말이 특정 계층이나 일부 집단 전체를 지칭하는  것일 경우 그 낱말은 사회적인 규범과 힘을 갖게 된다.

특히 어떤 단어가 사회적 소수나 약자에게 부려지는 것일수록 그 말이 갖는 의미가 가치는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그 말 자체가 그 사람을 사회적 소수나 약자로 만들어 버리는 힘과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들이 잦아들 여지도 없이 뜨거운 논란을 빚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용어를 쓰든, 현재 ‘장애인’이란 용어가 모두가 인정하는 법적인 용어이지만 ‘장애(障碍)’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가치와 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렇게 ‘장애’라는 용어가 가지는 사회적 의식과 가치 및 규범을 잘 드러내면서 다수의 행동과 문화로 보여진 것이 얼마 전에 SNS와 언론을 한창 뜨겁게 했던 이른바 대학생들의 J.M 미팅 사건이다. 대학생 미팅을 나온 남학생들의 무리가 장애인 교육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장애인’ 버전으로 군대식 자기소개를 하자(사실 남학생들이 상대방에게 제안을 했는지, 본인들이 먼저 하면서 당신들도 한 번 해보라는 것이었는지, 자기들끼리만 그렇게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식으로 행사를 진행하면서 불거진 이번 사건은 그 남학생들의 상식 밖의 저급한 행동이었다는 1차원적인 분석이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계를 보여준다. 그 행위 자체의 대한 해석과 의견들 속에서‘장애’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진실과 본질을 은폐하는 강한 권력 자체가 더 큰 문제이다. 필자는 이 사건에서 그 은폐되어진, 은폐될 수도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 한다.

무엇보다 먼저 이와 같은 행위는 불특정 장애인 다수에 대한 모욕을 가한 범죄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장애인복지법 제8조 2항 (차별금지 등) “누구든지 장애인을 비하, 모욕하거나 장애인을 이용하여 부당한 영리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되며 장애인의 장애를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학생들이 추상적인 인권과 차별을 논하기 전에 그들이 공개된 공공장소에서 사회적 행동을 하면서 행한 그들의 J.M은 괜히 인터넷에 올려서 시끄럽게 되어 버린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 미팅 현장을 목격한 누구나 고발할 수 있고 고발해야 했던 범죄 사실임을 처벌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또렷하게 인지해야 했다. 그들의 철없고 무식한 행동이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그래야만 그들의 행동의 원인과 재발 방지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학생들 측의 주장처럼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고 마녀 사냥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한 죄에 대해서만 비판하려면 이것은 중요하다.

미팅에 나온 남학생들의 행동은 과거 2000년 불결한 성관계, 장애아를 낳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KBS 방송에서 감행한 개그맨 이창명 씨의 발언과 장애인 낙태는 어쩔 수 없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설화와 함께 2000년 초부터 게시판을 달궜던 초등학생들의 '애자’라는 놀림말의 사용, 그리고 장애인들을 아무데서나 공개적으로 목욕시킨 정치인들의 행동과 더불어 매주 장애인은 절대 함께 웃을 수 없는 개그프로그램이 교육시키고 길러낸 사회적 양육의 예견된 결과일 뿐이다.

이번 모 남학생들의 J.M 미팅 사건을 이런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 낸 범죄라고 진단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행위는 근절되거나 예방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린 남학생들을 비난하는 어른들이 과거 장애인비하발언들을 과거 단순한 말실수로 사과만으로 끝내지 않았더라면 그 남학생들의 항변대로 J.M은 그들의 문화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중·고 교육책임자들이 장애인 인권교육을 비디오 한 편 방영해주는 전교생 에티켓 교육정도로 가볍게 생각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심중한 것으로 제대로 교육했다면 작금의 남학생들처럼 가볍게 생각한 ‘장난’이 대중의 공분을 산 범죄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문제제기를 한 여학생들을 오히려 가해자로 모는 몰지각한 행동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미팅한 학생들의 사과나 학생회 차원의 입장 표명으로 마무리할 일은 아니다.

이번 일은 남학생들의 우발적인 행위도 아니고 여학생들의 감정적인 상처나 피해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성폭력이 가해자의 우발적인 실수로 빚어지는 일이 아님을, 성폭력의 폭력성이 피해자가 느끼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님을 익히 깨닫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이러한 성폭력의 사회적 관계를 개인 간의 문제로 오랜 세월 고착시킨 덕분에 지금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경험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 사회 전체가, 교육 책임자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인권 감수성을 키우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더 큰 갈등과 더욱 심각한 지성인들과 엘리트들의 장애인 혐오 범죄에 직면할지 모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각 대학에 장애인학생지원센터가 속속 세워지고 장애인활동보조제도처럼 대학 수업에서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학습도우미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대학에 있는 실무자들은 사회에서는 의무적으로 들어야 되는 장애인 인권교육도 전혀 이수 하지 않고 있으며, 도우미들은 활동보조인 수준의 기본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과거의 사랑의 봉사, 배려의 에너지로만 희생을 요구 받고 있다. 그리고 대학당국은 이에 대한 책임을 장애인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동의 각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미팅 사건에서의 추상적인 장애인 피해자와 가해자가 얼마든지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장애인 당사자와의 갈등으로 터져 나올 수 있음이 충분히 예견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건을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번 행위와 논쟁 과정에서 모욕을 당한 불특정 다수의 장애인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와 대학 총장 수준의 입장 표명이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남학생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장애’나 ‘장애인’이 갖는 부정이나 낙인 효과에는 자유롭지 못한 채 오히려 감정만을 키워 J.M이 장애인에게나 사회적인 소수자 누구에게나 놀림과 차별에 놀라운 효과가 있음을 오히려 증명하고 이를 퍼뜨려서 장애인과의 사적 관계에서는 너무나도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 마치 장애인 이해 교육을 하면 할수록 장애인 당사자들을 더욱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장애인 당사자들을 강제로 배제시키는 지침을 알려주는 꼴이 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사건을 알릴 때에도 그 알림 행위 자체가 장애인 당사자들에 대한 2차 모욕이라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여 SNS가 아닌 보다 정리되고 공적인 매체를 통해 알려줘야 했다.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이나 장애인들을 자신과 동등하게 마찬가지로 존중하고 헤아리는 것에는 무척 부족함이 있다.

이번 사건에서 장애인 당사자로서 가장 슬프고 아픈 것은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장애인 당사자들의 주체성이 훼손되고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장애인 인권에 관련한 학업을 전공하는 여학생들이 이 사건을 개개인의 사과와 합의로 정리하고 사건을 알린 게시물도 내려주었으면 하는 입장들에 대해서 이 필자는 J.M 자체보다 더욱 허탈감을 느낀다. 정작 모욕을 당한 장애인들은 책임 있는 사과를 받지도 못했는데, 그 게시물이 우리 현 사회의 장애인 인식에 대한 현주소라면 절대 삭제해서 안 되는데, 사과하는 그들도, 분노하는 그들도,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이나 입장들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을 접한 선배들과 학교 당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사건은 분명히 책임 있는 대학 총장 수준의 장애인과 장애인 교육 전공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 장애인단체와 언론도 그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장애와 장애인이 만들어 내는 언어와 각종 모욕과 혐오의 행동에 대해 민감해져야 한다.

예를 들면 장애(障碍)라는 말이 독자적으로 지금도 우리 언어생활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기 때문에 장애(障碍)라는 단어 자체가 그 의미가 변화하든지, 장애인이란 단어 자체가 장애(障碍)라는 단어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쓰이지 않는 한,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 효과는 계속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자신의 인격으로만 인정받고 존중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장애(障碍)’만이 부각되고 설명되어지는 용어라면 그 뒤에 어떤 낱말이 붙든 그것은 차별과 소외를 위한 낙인(烙印)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당사자의 의견과 관계없이 함부로 누구를 장애인으로 지칭하거나 규정하는 것은 늘 신중해야 한다.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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