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 되고 있는 장애등급 탈락 공포 > 대학생 기자단


현실화 되고 있는 장애등급 탈락 공포

[편집장 칼럼]

본문

인상 깊은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하나는 멀리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먼저 7월 초 간질장애를 가지고 있는 박진영 씨가 장애 의무 재판정으로 등급 외 판정을 받게 되자, 그동안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서 겨우 살았는데 잘못된 판정으로 장애등급이 무급으로 처리되면서 수급자에서 탈락하게 됐다. ‘억울해서 못 살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주민센터에 가서 칼로 자해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외신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지중싱(冀中星) 씨가 한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사제 폭발물을 터뜨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공권력에 의해 장애인이 됐고, 8년 동안 억울함을 호소해 왔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자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폭발물을 터뜨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고 한다.

두 사건의 배경은 단순하다. 우리나라나 중국 모두 정부에서 장애인들의 기본 생계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이 억울함과 조여 오는 생계난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했다고 볼 수 있다.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침해당하자 한 명은 자살로, 한 명은 폭발물을 터뜨리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한 것이다.

결국 장애에 더해진 가난이 문제다. 생계수단이 없고 돈이 없으면 단 한순간도 살아남을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의 위협에 처한 장애인들은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선택밖에 달리 선택 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 정글사회에 경고를 던진 것이다.  특히 장애 의무 재판정으로 등급 외 판정을 받게 되자 자살한 박진영 씨 사례는 충격에 더해 엄습해 오는 공포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전제로 조만간 장애재판정 절차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경증과 중증으로 나누든지, 아니면 장애등급제 자체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장애인을 상대로 한 장애 재판정 절차이다. 그러면 불을 보듯 뻔히 알 수 있는 게, 장애재판정 과정에서 장애등급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이 속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중 상당수의 장애인들이 박진영 씨 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박진영 씨 자살 사건을 절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많은 장애인들에게 장애등급은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이 있어야 그나마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고, 그래야지 최소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

다른 생존 수단이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겨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장애등급 탈락 또는 하락은 죽으라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무시무시한 공포다. 그런데 그 공포감이 박진영 씨 사례에서 도출되면서 추상적이고 막연한 공포감이 아니라 현실에서 구체화 된 공포감으로 장애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흔히 사람은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이나 재산이 없을 때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더욱이 장애인이 작은 생계비를 지원 받아 겨우 살고 있는데, 장애등급 탈락으로 그 생계비마저 지원 받지 못하게 된다면 이성적인 판단을 할 리 만무하다. 장애인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이나 재산이 없게 될 때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가 다가오는 공포감의 실체다.

조만간 실시될, 모든 장애인들에게 예정된 장애재판정 과정에서 장애등급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누구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이 문제지 틀림없이 박진영 씨 같은 억울한 죽음을 또 다시 목격하게 될 것이다.  

박진영 씨 죽음을 보면서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정글 사회에서 장애인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장애를 가져서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장애를 인정해 줘서 지하철을 무료로 타게 해주고 한 두 끼 밥이라도 먹고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생존의 위협을 가하는 짓거리를 당장 멈춰야 할 것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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