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는 날아가고 연기는 피어오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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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였다, 그것도 단 한 마리.
목격한 순간 나는 몇 번이고 눈을 깜박였다. 불과 몇 미터 앞에서 허공을 빙빙 돌다 하강하더니 그 우아한 자태로 날개를 가지런히 접으며 살며시 앉는 것이었다. 푸릇푸릇 제법 모가 자란 논에서. 들판이 초록 일색이니 노랑부리의 백로는 확연했다. 아앗, 나는 낮고 조용하게 신음했다. 기다란 목을 잠깐 앞으로 빼내다 이내 뒤로 당겨 수굿하게 한 채 희디흰 날개를 기품 있게 접는 그 모양새라니! 내게는 숫제 아우라였다.
초여름의 백로 한 마리를 나는 그렇게 만났다. 산세가 수려한 강원도의 어느 마을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푸른 능선이 마을을 감싸는 형세였다. 백로가 서 있는 논 앞으로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분명 농가의 굴뚝이었다. 햇볕이 이울 즈음이기는 했으나 해거름도 아닌데 웬 굴뚝의 연기일까? 게다가 아무리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이 시대에 농가의 굴뚝이라니? 나는 한 마리 백로를 주시하랴, 굴뚝의 연기를 흘깃거리랴,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도무지 이런 놀라운 풍광을 어찌하란 말인지……. 자칫 백로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혹시 저 피어오르던 굴뚝의 연기가 뚝 멈춰버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토록 고고한 정취라니! 무아지경이 따로 없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쿵쾅거리는 거친 호흡이 혹여 밖으로 튀어나온다면 백로가 놀라 달아날까 봐. 띄엄띄엄 납작 엎드린 집들이 윗마을 아랫마을을 구분 짓듯 위치했고 그 사이에 바로 논밭이 들어앉아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니까 백로가 논 가운데 서서 아랫마을 농가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는 구도였다. 웬일인지 타임머신을 타고 천 년을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왜 있잖은가? 거꾸로 시간여행. 뿐인가? 백로와 굴뚝의 연기, 그리고 난생처음 와본 마을의 정경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작심한 것도 아닌데 마치 데자뷔이듯.
마을은 고요했다. 백로는 그저 논 가운데 서 있었고 굴뚝 연기는 실몽실 하늘로 올라갔다. 멀리서 봐도 굴뚝이 흙벽돌로 쌓아진 것만은 틀림없었다. 모나지 않고 둥그스름하게. 아직 저녁밥을 지을 시간도 아닌데 저 농가는 무슨 사연으로 불을 땔까? 혹시 가족 중에 누가 아픈 탓에 초여름인데도 방구들을 데워야 하나? 저 외톨이 백로는 또 어쩐담? 어째서 혼자가 되었을까? 다른 백로들이 찾지도 않는구나! 논 가운데 서 있는 백로가 가여웠고 아랫마을 외딴집의 굴뚝 연기도 애처로웠다. 때마침, 수십 년 전의 물속 같던 기억이 불현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어미한테 데려다 놓아야 사니라, 라고 할머니는 쯧쯧, 혀를 찼다.
온통 악동 짓을 일삼으며 산과 들을 누비던 남동생이 어느 날 왜가리 한 마리를 안고 집으로 왔다. 무슨 영문인지 날개와 다리에 상처가 나서 날지를 못하더라고. 동생은 만병통치약이었던 빨간약으로 상처를 소독하고 손수건을 찢어 싸매었다. 당시 나는 내가 아끼던 자잘한 들꽃문양 면 손수건을 왜가리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었다. 실낱처럼 가늘고 긴 다리에 붉고 선명하게 긁힌 상처 자국은 보기만 해도 안타까웠다. 동생은 논두렁과 개울을 쏘다니며 물고기를 잡아다 왜가리를 먹였다. 뾰족하고 긴 부리에 동생의 손이 찍힐까 걱정했는데 적어도 왜가리는 생명의 은인은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사나흘 헛간에서 왜가리를 살피던 동생은 학교에 갈 때면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리에 끈을 넉넉하게 늘어뜨려 기둥에 묶어두었다. 밤낮으로 정성껏 소독하고 먹이니 한눈에 봐도 차도가 있었다.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제 살 곳으로 가겠다는 사인을 해도 악동은 모르쇠였다. 그야말로 왜가리 새 여울목 넘어다보듯 한다고.
제 놈 좋아해도 그렇지 언감생심 하늘 짐승을 집안에 잡아두다니! 어른들께 지청구를 듣고서야 왜가리를 안고 대문을 나섰다. 끝내 왜가리를 키우고자 욕심냈던 악동의 야심 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온갖 정성을 들인 악동의 절절한 심사를 그 누가 공감했으랴. 동생은 왜가리와 이별한 후 한동안 가족들과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왜가리의 소재파악을 위해 들판을 홀로 헤매는 눈치였다. 나로서는 풀죽은 악동이 안쓰럽기도, 한편 왜가리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해서, 손수건을 제공한 빌미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어미 찾아갔니? 돌아온 답변은 원망이 켜켜이 서려 있어서 손수건은 차치하고 죄책감이 엄습했다. 나도 몰라. 쫓아낼 땐 언제고? 저 바우배기에서 데려온 건데 그 많던 왜가리가 바위에 한 마리도 없어. 걔 데리고 아주 떠난 거야.
악동은 눈물까지 그렁그렁했다. 말마따나 마을 앞 들판 가운데 꽤 큰 바위는 철새들의 서식지였다. 그 검은 바위 위에는 청둥오리와 두루미, 왜가리 떼들이 철을 바꿔가며 모여들었다. 들판 주위를 완만하게 두른 산과 논이며 저수지를 두루 왕래하면서 먹이를 찾고 기숙하기에 맞춤한 장소였던가 보다. 그런데 아주 ‘떠났다’는 악동의 낙담 어린 단정이 웬일인지 슬펐다. 사람이든, 한낱 축생이든, 이별은 슬픔을 전제하려니……. 내 희미한 기억으로 그때 얼마간 악동은 매우 센티멘털했다. 아마, 왜가리와의 이별이 때 이른 사춘기를 불러왔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뒤란 장독대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감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 사금파리로 뭘 그리고 쓰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나는 악동을 위로했다. 내년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때 꽃무늬 헝겊을 날개에 맨 왜가리를 찾으면 돼.
“또 혼을 뺐구먼.”
종아리 위로 바지를 말아 올린 남편이 서 있었다. 나는 순간 쉿, 소리를 냈다. 그리고 눈짓 턱짓으로 논 가운데 백로를 가리켰다.
“쟤가 아까부터 혼자 저러고 있어. 먹을 걸 찾나?”
들릴 듯 말듯 그에게 궁금증을 풀어놨다.
“음, 글쎄? 쟤도 왕따 당했군!”
백로를 주시하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크게 내는 통에 백로가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떠났잖아?”
수십 년 전 악동의 왜가리와 내 앞의 백로를 구분하지 못한 채 악동이 무고한 나를 쌀쌀맞게 대했듯 나 또한 허물없는 그를 핀잔했다.
“떠나는 걸 누가 막아? 때 되면 날아가는 거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고.”
“그래, 때 되면…….”
비록, 백로를 쫓아버리기는 했으나 그의 말은 옳았다. 역시나 사람이고 축생이고 때가 되면 가는 거니까. 그 옛날 악동의 왜가리는 아주 가버렸을까?
기실, 그는 나를 마을 들 가운데 내려주고 하천에서 동리 사람들이 다슬기 잡는 걸 구경하고 온 터였다. 가끔 주말이면 알려지지 않은 촌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그의 여가 방식이 내게 백로를 만나는 횡재를 누리게 해준 셈이었다.
“배고프다, 막국수 먹을까?”
배는 고프지 않았으나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되면 우린 누가 먼저든 떠날 테니까. 그러니까 막국수든 잔치국수든 함께 해야 할 일이다. 남은 자에게는 추억만큼 맛깔스러운 게 없을 테니까. 자동차를 돌려나오는데 농가의 굴뚝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백로는 흔적조차 없었다. 백로가 날아간 허공을 응시하는데 저 아랫마을 굴뚝에서 연기가 안개처럼 풀어졌다. 백로가 떠난 자리에 희뿌옇게 떠다니는 연기. 다행이었다. 정겹고 그윽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저 굴뚝 연기 좀 봐. 한 천 년 돌아온 것 같지 않아?”
“아아, 아득하네!”
배고프다던 그가 돌연 브레이크를 밟더니 시동조차 꺼버리고 가슴에 팔을 두른 채 연기 나는 굴뚝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옛날에 상처 입은 왜가리가 있었어. 그 왜가리가 나이를 먹어 방금 날아가 버린 백로가 되었을까?’ 나는 차마 묻지 않았다. 그 역시 굴뚝의 연기를 보며 아름다운 어느 한때를 떠올리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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