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빈곤 앞에서 부끄러운 나의 모습 > 대학생 기자단


도시 빈곤 앞에서 부끄러운 나의 모습

[김민혁의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본문

손을 한번 휘 젓자 까맣게 연기처럼 올라오는 것은 파리떼였다. 세계 3대 빈민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필리핀의 바세코(Baseco) 슬럼에 방송촬영을 위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바다 인접한 지역을 쓰레기로 매립한 곳에 판잣집을 지어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마닐라 도시 빈민지역이다. 10분만 차로 이동하면 관광지로 유명한 길거리들이 있고 유명한 상점들도 보인다. 하지만 이 슬럼 지역에 들어서자마자 극명하게 다른 빈민촌의 모습이 보이고 코를 찌를 듯한 악취와 지뢰처럼 널려있는 사람과 동물의 오물들이 이곳의 상황을 누군가의 설명을 듣지 않고도 알게 해준다. 사람들은 아무런 의식 없이 온갖 쓰레기를 마을 바로 옆 바닷가에 던져버린다. 아이들은 화장실이 없어서 그런지 바다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밀고 대변을 본다. 사람이 이곳에 매일매일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곳에서 만난 제프리라는 아이는 물위에 둥둥 떠 있는 쓰레기 더미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비가 조금 많이 오기라도 하면 집은 금세 길거리 더러운 물과 빗물로 인해서 잠긴다고 한다. 집으로 연결된 길도 쓰레기로 만들어진 땅이라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밑이 울렁울렁 거린다. 제프리의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여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제프리는 까뭇한 오물 속에 버려진 쓰레기 속에서 플라스틱 병들을 주워 집안의 생계를 돕는다. 그렇게 해봐야 하루에 1달러벌이밖에 안 된다.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기에 학교에는 가본 적도 없다.

이곳은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가 만연해서 그런지 미로처럼 좁은 골목들을 지나다니며 보니 아이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오물 옆에 앉아 놀며 더러운 손 그대로 음식을 받아먹거나 불긋한 생채기를 긁어댄다. 대부분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고 앉은자리에서 바로 자연스레 볼일을 본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설사가 잦고 복통으로 고생한다고 한다. 얼굴과 팔뚝에는 피부병으로 보이는 증상들이 분명하게 보이고 그러한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들고 온 비상약이라도, 병에든 생수라도, 주머니에 든 막대사탕이라도 모두 다 꺼내서 주고 싶은 마음이 다시 올라온다.

   
 

오후 촬영을 마치고 바세코를 빠져나와 마닐라 시내의 호텔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나는 한 무리의 거리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마치 북한의 꽃제비들처럼 어른 없는 아이들 7명 정도가 편의점 앞에서 장난치며 놀다가 내가 그 앞을 지나가자 몰려들었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1달러를 외치며 몰려드니 나의 시선과 주의가 분산되었다. 그 틈을 노리고 나의 주머니로 작은 손 하나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낌새를 알아채고 그 손목을 잡아챘다.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와 괘씸함으로 인해서 부여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호흡이 가빨라졌다. 동행했던 직원이 아니었다면 손목이라도 부러뜨릴 기세였다.

그 상황을 서둘러 빠져나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니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불쌍하게 바라보며 뭐든 할 것처럼 하던 내 마음이 분노로 바뀌어 거리의 아이들을 미워하는 모습은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다. 분명 비슷한 어려움과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일 텐데 똑같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내 것을 앗아가려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생각과 마음이 미움으로 바뀌었다는 것 때문에 참으로 가슴 아팠다.

   
 

이번 출장에서 도시 빈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전된 도시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부족한 일자리와 사회적 기반, 복지 서비스의 부재 탓에 가난한 가정은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고 사회적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런 모습은 비단 필리핀만이 아닌 선진국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더욱이 도시 빈곤은 아직 뚜렷한 대책도 확실한 해결 방안도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단지 돕고자하는 마음만 앞서서 실행하는 여러 가지 섣부른 도시지역 구제 사업들이 상황을 개선시키지는 못하고 악화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무거워진 마음을 갖고 귀국하는 길에 공항에서도 수화물 관리 직원으로부터 사기를 당할 뻔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한테 공연스레 현금을 빼앗길 뻔했다. 어찌되었건 사람 사는 곳에는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이 공존하기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나는 착한 사람인지 한 번 더 돌아봐야겠다.

작성자김민혁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국제개발팀 대리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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