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부동 오순절 평화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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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평화의 마을 사건은 2011년 여름부터 시작됩니다. 도가니 이후 시설에서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과 인권 감수성을 갖게 된 직원 몇 명은 법인 측에 이러한 문제의 구조적 해결을 위한 건의를 합니다. 법인을 부산 천주교구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상식적인 선에서 가해자들의 징계와 대책 마련 등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요.
하지만 상황은 달랐습니다. “뭐가 문제냐. 시끄럽게 하지 마라. 사람들 데리고 있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라는 말과 반응을 보이며 오히려 건의했던 직원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대했습니다.
그 직원들은 법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시설이 소재한 여주군과 부산시, 해운대구청 등 관할 감독기관인 지자체에 진정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한 채 3명의 직원이 해고되었습니다. 때마침 여주군의 공중보건의가 목격한 인권침해 사실이 있어 그는 나름대로 소장에게 보고하고, 또 소장은 복지부에 보고했습니다.
그렇게 이 사실은 밑에서 위까지 모두가 아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거주인들의 가족들도 상황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와 경찰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상황이 어디까지 갔는지, 어떤 진척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 지난 3월 12일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오순절평화의마을' 사태해결 촉구 기자회견 |
사건 진행 3개월, 무엇이 변했나
일단 여주군은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태도입니다. 횡령 등에 대해서만 경찰수사를 의뢰했는데, 인권침해 부분까지 수사를 확대했습니다. 잘 됐다고요? 아닙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경찰은 형법에 근거한 처벌을 중심으로 ‘수사’를 합니다. 진단서나 피해 사실, 가해 사실에 대한 정확한 물증과 2인 이상의 증인 등이 나오지 않으면 정황과 당사자 진술이 받아들여지지 않지요. 그래서 기대를 하기 어렵습니다. 담당 형사가 다른 일은 전혀 보지 않고 이 일에만 매진하고 있음에도, 지난해 11월 수사에 착수해 대질심문까지 벌이면서 속도를 내고 있지만, 3월 말 현재 결론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요? 인권위는 여주군의 부시장도 만났고 경찰도 만나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말만 전달했다고 합니다. 수사 중이니 인권위가 개입하기 어려운 거지요. 게다가 인권위 또한 물증에 집착(?)하며 난감함을 표하더군요. 이미 드러난 인권침해, 방임, 학대 사례가 50여 건에 이르는데 말입니다.
복지부는 무엇을 했을까요? 이상하게도 아동과 성인이 함께 있는 시설인데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말의 일입니다. 서둘러 조사팀을 꾸려 현장조사를 나가 직원, 거주인 1:1 면접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가 지난 2월 말 나왔습니다. 조사결과는 행정당국인 여주군에 보고하고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물론 경찰에도 보내 협조했고요.
‘오순절 평화의 마을-여주시설’ 현장조사서란 이름의 4장짜리 서류에는 “상담을 통해 신고받은 내용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지만, 명확한 증거 및 증인 확보에 한계가 있어 학대 사례에 포함시키기는 어렵지만 지속적인 모니터와 조치가 필요함”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학대상황이 ‘인정’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습니다. 다만 여주군이 할 수 있는 1차 행정명령인 ‘인권상황 개선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부산시는 이러한 내용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책위는 법인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등한시 여기는 태도를 보고 ‘해결의지 없음’으로 이해하고 민주적인 인사로 ‘이사진 전면교체’를 주장하며 지난 3월 12일 부산시청 앞에서 사태해결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담당 공무원들을 면담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부산시도 ‘해결의지 없음’이었습니다. 여주군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었습니다. 법인 문제가 아니라 시설장의 문제라며 정확한 수사 결과를 보겠다고요.
도대체 문제의 해결은 누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 걸까요?
일상의 평화가 가장 인권적인 것
시설에는 일상적인 폭력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설 같은 폐쇄적인 곳에서 무언의 압력과 통제, 욕설, 체벌이 난무한다는 것이 가장 큰 폭력이란 점을 우린 명심해야 합니다. 위계로 말미암은 권력관계가 명확한 상황 속에서 늘 감시와 통제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거주인들에게 그 분위기는 ‘할 수 없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그것은 바로일상의 무력감이고 삶의 존재 이유,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상실한 가장 근본적인 인권 침해이기 때문입니다.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피해자, 가해자의 단순구도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그리고 법적 책임과 의무가 있는 지방정부의 몫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억압과 통제의 문화는 시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줄 뿐이며 자기선택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은 인간다운 존엄함과 품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폭력 혹은 범죄행위일 뿐입니다.
따라서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부산시와 해운대구청은 사회복지사업법과 장애인복지법에 명시된 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회복지법인 ‘오순절 평화의 마을’ 이사진들은 거주인의 인권을 쉽게 침해하는 낡고 위험한 ‘안전, 보호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자유’와 ‘선택’이란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법인과 부산시, 여주군이 남 탓으로 문제를 돌리고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 거주인들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아니 오히려 더 험악해지고 냉소적이 된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의 눈치만 보는 천덕꾸러기가 돼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초점 없는 눈빛을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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