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엇이, 남았습니까? > 대학생 기자단


누가, 무엇이, 남았습니까?

[이서진의 살며 생각하며]

본문

해마다 송년사와 신년사를 쓰는 연말연시가 되면 아연하고 만다. 수년째 계속해온 지인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터라서 뜨뜻미지근한 대답을 하고 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기업이나 큰 규모의 기관이 아니고서는 홍보실을 따로 둘 수 없기에 벌어지는 폐단이다. 하릴없이 책상머리에 죽치고 앉아 있으니 사회·경제활동으로 매사 바쁘고 귀하신(?) 그분들을 대신해 쓸 수밖에. 뭐 특별하게 언급할 내용이 있는가, 사내 정황은 어떤가, 일반적이고 의례적이면 되는가, 더하여 훈화와 감사의 가중치적 호불호를 간단하게 묻고 흰 바탕의 한글화면을 열면 내 머릿속마저 백지장처럼 하얘진다. 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해가 가고 또 해가 오는데….

백구과극白駒過隙과 환골탈퇴換骨脫退를 주워섬긴들 쾌활한 젊은이들이 그 청신한 젊음을 자신의 일터에 쏟아 붓지도 않을뿐더러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세말이나 벽두부터 자칫 일 중독을 조장해서 건강한 가정과 건전한 사회기반을 망가뜨릴 사원들을 양산할 수는 없다. 그러니, 송년사 첫머리에 저 아득한 장자의 「지북유편」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를 인용해 한 사람이 한 생을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 사이로 지나는 시간과 같다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랴. 세월의 빠름과 인생의 덧없음을 실감하는 백구과극 속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내일의 환골탈퇴를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 숙명인 것을.

과연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나 또한 창틈으로 겨울 산을 내다본다. 흰 바탕의 한글화면에서 커서는 쉼 없이 깜박인다. 재촉의 신호도 무시한 채 나는 한동안 멍하니 밖을 내다볼 뿐이다. 아무리 봐도 흰 망아지는 보이지 않고 연일 이어진 한파 때문에 엊그제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못한 채 겨울 산허리에 허옇게 쌓여 있다. 히말라야 만년설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펼쳐지는 설원은 아닐지라도 나는 그저 눈 덮인 앞산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갈맷빛을 벗어난 잿빛 숲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즈넉하다. 달리는 망아지는 거기, 겨울 산에 있을 리 만무다. 천하를 평정하고도 남을 고요만이 쌓인 눈 위에서 보는 이를 위무하고 있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도망가는 망아지를 봐야만 하는 우리네 불행한 사람이나 수고로운 인생을 겨울 산은 단지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듯했다. 달리는 망아지는 어쩌면 앞만 보고 쉬지 않고 질주한 우리네와 다를 바 없다. 헉헉,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 속에는 눈물과 회한이며 아픔과 상처들이 곰삭지 못하고 아우성을 쳐댄다. 그 처절한 아우성을 애써 듣지 못한 것처럼 귀를 막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나날들은 망아지의 시간에 불과했을까?

찰나의 시간… 그 기막힌 인생의 허망과 속절없는 세월을 절망하지 않고 살아낼 초인이 있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그를 만나러 가리라. 아마도 초인은 히말라야 어느 설산에서 묵묵하게 태양을 기다리고 서 있을까? 자그마한 창문 틈으로도 눈 덮인 겨울 산은 세인世人을 위로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설산의 눈꽃세상은 찰나의 시간조차 범접지 못할 만큼 신성하리라. 거기, 설산에, 어느 한순간 태양이 지나갈 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것은 내 유치한 한계를 드러내는 수치일망정 나는 행복한 것이다. 앞산에 흰 망아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비록, 지금 당장 히말라야 설산을 넘고 또 넘어 묵묵하게 서 있는 초인을 만나지 않더라도.

‘염치불구 신년사도.’

어이없는 문자를 노려보다가 시선은 다시 창밖을 향한다. 가는 세월을 어쩌지 못해 설산에 초인까지 등장시키며 앞산을 위안 삼고 있는 판국에 미리부터 새해를 맞으라니? 양심에 터럭이 돋았을 거라고, 상종 못 할 인사라고, 부아를 참다가 나는 슬며시 웃고 만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데 새해라고 다를 것인가? 그저 영원의 한순간을 맞는 것이리라. 밤을 지나 새벽을 맞듯 그리 순순하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리라.

어제의 연장선에서 오늘은 왔고 날 저물면 또다시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 새삼스럽게 환골탈퇴를 외치거나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침 튀기며 주장하다가 급기야 만복의 주인공까지 희구하는 내용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리 의례적인 치렛거리라 하더라도 과연 새해 첫날에 읊어댈 신년사는 그 길고 짧음의 분량을 떠나서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덕담은 빌어주는 그 주체가 후덕하여 존재의 본연과 삶의 조화를 아름답게 이루어낸 현인의 몫일 테니 나처럼 품격도 갖추지 못한 우인에게는 가당찮다. 과연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진중하게 비는 축원과 어중치기 글쟁이가 애면글면 복 주십사, 설레발치는 것은 하늘과 땅처럼 틈이 클 것이다. 이럴 때면 스스로 한심해지는 것이다. 어디 가서 팔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하는 게 백번 낫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오르면 나는 부르르, 진저리를 치고 만다. 그러니까 묵은해를 다 보내기도 전에, 새해가 오기도 전에, 한바탕 결전을 치르는 셈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자신과의 불화.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나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겨울바람은 얼마나 센가? 여태껏 사나운 바람에 저 하늘 어딘가로 날아가지 않은 게 요행일밖에.

‘선생님 항상 마음에 남습니다.’

도착한 문자가 어른거린다. 송년사와 신년사를 무슨 재주로 동시에 쓸 수 있다는 말인가, 고심할 때 날아든 메시지는 가슴을 싸하게 만든다. 사제의 애틋함도 아닐 텐데 여간 푸근하고 진솔하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닌 다음에야 가는 해에 손을 흔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오는 해를 덜컥 붙잡을 수는 없을 터이다. 나는 우선 한글화면에 송년사, 라고 입력한다. 그런 다음 마음에 남습니다, 라고 곱씹어 발음해 본다. 매일이다시피 들어오는 이즈음의 어느 메시지보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오히려 내가 연장자인 발신인에게 한 해 동안의 감사를 담아 보내야 할 메시지이다. 언제나 제 마음속에 계십니다, 라고.

‘지난해 우리 마음속에는 누가, 무엇이, 남았습니까?’

한 문장을 쓰고 습관이듯 앞산을 내다본다. 혹시, 날이 저물어 가니 저 숲에 흰 망아지가 달려갈까? 웬 망아지 타령인가, 누가 묻는다면 한 사람의 생이 그렇듯 망아지가 달려가는 걸 보는 찰나랍니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리라.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있고, 그 누군가 또한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면 날과 달과 해가 가는 그토록 사무치는 세월 앞에 우리는 초인처럼 설 수 있기에…. 흰 눈 쌓인 겨울 산허리가 애련하다. 해가 가고 또 다른 해가 오는데 내 마음속에는 누가, 무엇이, 남았을까?

 

작성자소설가 이서진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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