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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현실, 무엇이 먼저인가

조원희의법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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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를 하면서, 그리고 공익에 관심을 두고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법적 해결을 고민하면서 든 의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법과 현실 중에 무엇이 우선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도 같습니다. 법이 현실을 선도하는 기능을 하는 것은 분명한데, 너무 앞서 가게 되면 현실과 괴리가 생겨 오히려 탈법을 조장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법이 현재의 문제만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되기까지 당하게 될 고통은 무시하게 됩니다. 결국, 너무 앞서 가서도, 너무 뒤쳐져서도 안 되고, 법은 현실에 반 보 앞서 가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었습니다.

시행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개정 입양특례법(2012년 8월 시행)의 재개정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입양아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입양절차를 엄격하게 개정하였습니다. 입양하려면 일정한 서류를 갖추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제11조 제1항), 필요한 서류에는 양자가 될 아동의 출생신고서, 양자가 될 자격(특히, 부모 또는 후견인이 입양에 동의하여 보장시설 또는 입양기관에 보호 의뢰한 사람이라는 자격)이나 양친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는 서류, 입양동의 서류 등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특히 친생부모의 출생신고서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현재 국내 입양의 90% 이상은 미혼모의 아이입니다. 그런데 입양을 위해서는 출생신고서가 필요하고 출생신고를 하려면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를 자녀로 올리고 출생신고를 해야 합니다. 아이를 출산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미혼모로서는 출생신고를 꺼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입양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음성적으로 아이를 입양시키거나 불법적으로 아이를 유기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공동체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버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아이들은 시설로 옮겨지더라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여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베이비 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급격하게 늘어 걱정이 태산이라고 합니다. 입양의 요건이 너무 엄격하여 입양도 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고, 어디선가는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도 합니다.

최근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다시 발의되었습니다. 적어도 청소년 미혼모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출생신고를 갈음할 수 있도록 하고 입양 숙려기간의 예외를 두며 장애아동은 국내입양과 국외입양을 동시에 추진하여 장애아동이 유기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내용입니다. 개정 입양특례법의 공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개정 입양특례법이 간과한 현실을 보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장애아동에 대한 입양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엄격한 절차를 거치고 국내입양을 우선해야 한다는 제한은 장애아동을 더 방치하게 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입양특례법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현장에 눈 뜨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고통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현장에서의 더욱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하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작성자조원희 법무법인 태평양 공익활동위원회 장애인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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