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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장애 증명하기

[신순규의 뉴욕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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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호 칼럼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에는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장애인증명카드’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정당한 조절을 결정하는 기관-예를 들어 녹음교과서를 제작하는 단체가 정해놓은 절차를 밟아야만 장애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고 이에 따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만 있습니다. 복지카드가 어디서나 통하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지요. 이번 칼럼에서는 저의 경험 중 아주 유난했던 사건 하나를 나누면서, 지난번에 언급했던 협상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까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증권분석입니다. 주식이나 채권 등의 본 가치를 조사, 분석, 계산 등을 통해 찾아내고, 이렇게 얻은 가치를 토대로 증권을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일을 합니다. 많은 분야가 그렇듯이, 증권분석분야가 인정해주는 배경이나 자격 및 학위가 여럿 있는데요, 이 중에는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말로는 ‘국제재무분석가’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사실 자격이나 학위라기보다는 3차의 CFA시험에 합격한, CFA협회가 정해놓은 전문적 윤리 가치를 존중하면서 증권분석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칭호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굳이 비슷한 것을 찾자면, 한국에서 품질 좋은 상품에 붙는 KS마크와 흡사한 것 같네요.

CFA는 제가 1994년부터 종사해온 분야에서 알아주는 세 글자라서, 저도 늘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이것을 미루었었지요. 대표적인 이유 두 가지는 첫째, 시각장애인이 CFA시험에 응시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공평하게 시험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에 대해 CFA협회가 쉽지 않을 거란 주장을 했었습니다. 게다가 CFA시험은 빈틈없는 절차를 통해 누구도 컨닝을 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시험을 점자나 녹음 또는 컴퓨터로 보게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시험 준비에 필요한 자료 역시 제가 읽을 수 있는 형식으로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을 듯했고, 이 때문에 미루고 또 미루게 된 것이지요.

2001년 초, 저는 드디어 CFA시험에 응시하기로 결심하고, 위에 말씀드린 두 가지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CFA협회가 요구하는 대로 저의 주치의는 협회의 양식에 제가 불빛도 보지 못하는 시력이 아주 없는 사람, 영어로는 ‘NLP(no light perception)’이라고 적은 뒤, 이를 증명한다고 서약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진단에 따라 양식에 분명히 적었음에도, CFA협회는 추가정보를 요구해왔습니다. 시력이 얼마나 나오는 지를 재서 서류로 보내라고 했고, 시력을 잃었을 당시의 진단서와 치료 기록도 제출하라는 것이었지요.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닌데, NLP라는 진단을 보고도 시력을 재라는 것도 우스웠지만, 30여 년 전에 한국에서 치료를 받은 저에게 이런 서류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설령 서류를 통해 정확하게 무슨 병으로 실명했는지를 증명한다고 해도, CFA시험 칠 경우 제가 필요한 정당한 조절을 제공하는 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정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짐작하건데, 절차를 쓸 때 없이 어렵게 만들어서 저로 하여금 CFA를 포기하게 하려는 협회 사람들의 작전이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저의 회사 동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CFA협회 이사를 잘 아는 우리 회사의 주주 한 분을 소개해주었고, 이 분은 저를 위해서 협회 이사에게 잘 얘기해주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좀 압력을 넣어주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저는 이를 사양했습니다. 목적은 CFA를 취득하는 것이었고, 쓸 때 없이 실무자들을 곤란하게 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위협보다는 유머를 쓰기로 했고,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는 상식적인 제안을 앞세워 일을 추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시력을 재라는 말은, 사망증명서를 받아보고 혈압을 재라는 말과 같다고 했습니다. 또 제가 어떻게 실명했는지에 대해서는 사고로 그렇게 됐든, 누구에게 맞아서 그랬든, 아니면 병 때문이었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웃으면서 설명했지요. 그리고 시험을 보는 데에 제가 필요한 것은, 시험 문제를 읽어주고 답을 써줄 사람을 고용하는 것과 눈으로 문제를 읽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듣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시험시간을 1.5배로 늘려주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CFA협회가 정해놓은 금융계산기는 말하는 버전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계산기를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여러 번의 전화통화를 통해 협회 사람들은 제가 요구하는 것에 거의 다 동의했지만, 다만 계산기는 꼭 자기들이 정해놓은 것을 써야한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것을 수락했지요. 스크린이 보이지는 않지만, 동료들의 도움으로 이 계산기를 쓰는 방법을 배워서 연습하기로 했고, 시험을 읽어줄 사람이 스크린도 읽어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3차의 CFA시험을 치룰 수 있게 되었지요.

쉽지 않았던 CFA협회와의 협상과는 달리, 시험준비 교과서를 만들어 판매하는 Schweser사와의 대화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같은 가격으로 책 파일들을 저에게 팔겠다고 동의했습니다. 컴퓨터로 볼 수 있게 말이지요. 다만, 저의 장애를 의사의 서류상 증명으로 요구했고, 절대 제가 이 파일들을 프린트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했지요. 그런데 우스운 것은, 이 분들이 3년간 저에게 컴퓨터 파일들을 팔았는데요, 매년 저에게 장애증명을 요구했습니다. 아마도 기적을 믿는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시력을 회복하지는 않았나 싶었겠죠.

저는 이런 협상을 통해 제가 필요한 것을 자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식초보다는 꿀로 더 많은 파리를 잡을 수 있다는 미국 속담처럼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상대방도 정당하다고, 공평하다고, 혹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끔 설득하는 것이야말로, 법을 내세우거나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방법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일을 추진하는 것에는 그 어떤 법이나 규정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는 듯합니다.

작성자신순규 뉴욕 월가 애널리스트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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