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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뉴욕스타일

[신순규의 뉴욕스타일]

본문

한국에 사시는 저의 어머니께서 언젠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뉴욕시에서는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길거리에서 사람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는 말씀이셨지요. 그렇습니다. 이 잠자지 않는 도시, 세계 금융시장의 수도인 뉴욕시로 전 세계에서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매년 찾아옵니다.

바로 이 뉴욕시로, 눈이 보이지 않는 제가 매일 출근을 하고, 뉴욕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의 하루 생활을 촬영하고 싶다는 분들도 가끔 있었고요.

작년 8월, 제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함께걸음’이라는 잡지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호에 저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나왔고, 또 올해부터는 정규 칼럼을 쓸 수 있게 되었고요. 인터뷰(2012년11월호)에 응하고, 칼럼쓰기에 동의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함께걸음’이라는 이 잡지 제목이 저의 마음에 따뜻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명문대학을 다녔고, 경쟁이 아주 심하다는 월가(wall street)에서 18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인지, 저에게 어떤 비결이 있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학교나 직장이나 특혜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분들은 제가 천재이거나 항상 모든 것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거나, 아님 둘 다라서 이런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단편적인 설명보다는 저의 삶 자체가 처음부터 이제까지 ‘함께걸음’이었기에 지금의 제가 가능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만15살 때까지 한국에서 살았는데요, 어렸을 때는 어머니와 ‘함께걸음’을 했고요, 또 눈이 좀 보이는 학교 친구들과도 같이 걸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필라델피아에 있는 오버브룩 맹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보행 훈련을 받았던 덕분에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혼자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들이 가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통근기차로 뉴저지에서 뉴욕시로 출퇴근을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항상 떠나고 도착하는 자리가 같아서, 시각장애인들이 타고 다니기 쉬운 뉴욕 지하철과는 달리, 기차는 도착지의 위치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뉴욕 펜스테이션(Penn station)에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얘기해주지 않으면 얼마나 역 안쪽으로 들어와서 기차가 섰는지, 또 12개 중 어느 철도 선로로 도착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가 제가 가고 싶은 층으로 가는 것인지, 아닌지도 누가 얘기해주지 않으면 엉뚱한 층으로 가게 됩니다.

저의 경우, 거의 10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출퇴근을 해서 그런지, 항상 꼭 필요할 때 저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길을 잃거나 많이 헤맨 기억이 없을 정도로, 저의 출퇴근은 순조롭습니다. 또 오랫동안 같은 기차를 타고 출근을 하다보니까, 저의 필요를 알고 아주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분들도 많이 있고요. 저는 이 분들의 이름만 알뿐, 차라도 한 번 같이 마신 적이 없지만, 종종 저와 함께 걸어주시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런데 가끔 필요가 없을 때도 도와주겠다고 고집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그런 분들의 도움을 거절했었는데요, 언젠가 ‘도움을 받는 것도 사람의 필요지만,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도 사람의 필요다’라는 명언을 읽게 됐고, 그 후부터는 꼭 제가 필요하지 않아도 따스하게 저에게 다가와서 돕겠다고 하시는 분들과는 어느 정도 같이 걷곤 합니다.

장애인은 항상 도움을 받고 비장애인은 항상 도움을 주는 것보다는, 이렇게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진정한 ‘함께걸음’이 아닐까요? 

 

작성자신순규 (뉴욕 월가 애널리스트)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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