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대학생,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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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동아리들의 한계와 자기 만족적이고 보수적인 장애인관련 동아리들의 모순점을 비판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우들이 모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 건설과 더 이상의 장애인들의 ‘장애’가 차별과 억압의 이유가 없음을 명백히 하는 장애운동을 실천하고자 한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학내의 장애 학생들을 위한 교육환경 개선과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학생들의 자치 조직이다」
- 1996년 연세대 장애인인권운동 동아리 게르니카 창단 선언문 중에서 -
대학의 장애인 대학생 ‘자치’조직이 사라지고 있다
작년 말 연세대 동아리 연합회 투표에서 한 중앙동아리의 동아리방 퇴출이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었다.
바로 1995년 12월 18일에 출범하고 1996년 9월에 연세대학교 61번째 중앙동아리로 의결되어 자치 공간을 배정받았던 장애인권운동 동아리 ‘게르니카’가 17년을 끝으로 공식적으로는 대학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장애인에 대한 대학의 높은 진입 장벽 속에서 88서울장애인올림픽 개최 운동과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등의 운동으로 장애인대학생 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전국지체장애인대학생연합회와 같은 1세대 장애인 대학생 조직이 2000년대 초에 사라진 이후, 1995년 장애인특별전형 또는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이란 이름으로 대입 문턱이 낮아져 각 대학별로 대거 유입된 장애인들의 각각의 자치운동, 교육권 운동으로 촉발된 제2세대 장애인대학생의 활동 역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에 결성된 장애인 대학생 관련 자치조직 중에 캠퍼스별로 오늘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우석대 장애학생복지연합회와 대구대 Let’s, 서강대 장애인 학생회 정도이다. 2000년도 후반에 와서는 한국농아인대학생연합회나 한국시각장애인대학생연합 등과 같이 장애 유형별로 대학 연합으로 모여 활동을 벌이는 제3세대 자치 활동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장애인 대학생들이 대학과 학생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때
이러한 변화는 자원봉사나 수화동아리와 같은 장애인 관련 동아리의 부침(浮沈)과 시대에 따른 대학 전체의 변화와 함께 각 대학별로 장애인학생지원센터가 법적으로 설치되어 ‘제도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연세대 게르니카의 경우에서도 휴게실 수준에 머물러 있던 장애인학생지원센터가 계약직으로라도 장애인 당사자를 실무자로 고용하고 체계를 갖추면서부터 장애인학생들이 동아리방에 모이지 않고 센터의 서비스 대상자로 모이기 시작했으며, 장애인학생지원센터가 명실상부하게 학생처 직속 기관으로 학생처를 옮긴 그 해, 게르니카는 학생 사회에서 투표에 의하여 그 역할을 상실했다.
교육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가 제도화됨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장애인학생들이 운동성을 상실하는 이른바 시스템과 법 체제에 장애인대학생이 포섭되었다는 사회학적 분석도 의미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더 이상 학생사회에서 장애인 문제가 당연히 생각하고 배려해야 할 당위적이며 도덕우위에 있는 문제가 아닌 학생들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한 문제가 되었으며, 장애인 학생들이 이제 그나마 평등하게 학생사회에서 나름의 역할과 의무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장애인 학생들도 중앙동아리로서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면 언제든 퇴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학생들을 더 이상 힘든 존재니까 배려해주고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번 게르니카가 중앙동아리 지위를 상실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장애인학생들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게르니카를 결성할 당시에는 동아리 연합회 회의 장소에 중증 장애인학생들이 아예 접근할 수 없었고 변변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장애인 학생들의 불참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제 각 건물에 웬만하면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고 활동보조인 및 학습도우미가 장애인 곁에 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장애인 학생들의 활동여건이 상당부분 나아졌음에도 자치활동이 부실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장애인 대학생들은 다른 장애인들과 비장애인의 문제에 얼마나 민감한가
오늘날의 대학은 ‘역경의 시대’에 처해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이 시대변화에 따른 요구에 적응하여 그 외형적 크기와 규모만 키웠을 뿐 자신의 본질과 혹은 전통적 유형의 동일성을 지속하지 못한 것에 있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의 대학의 위기를 가리켜 ‘정체성의 위기’ 심지어 ‘정당성의 위기’라고까지 말한다. 이는 곧 대학이 수행해야 할 과제 혹은 목적과 대학 그 자체의 기본적인 준거의 틀에 심각한 갈등과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이에 사회적으로는 학벌주의, 학력주의를 타파하고 탈대학 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때 지성의 상아탑이자 구국의 대오라 불리던 그곳이 스펙을 쌓기 위한 사교육의 진지가 되어 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곳의 진입 장벽을 낮추어 달라고 요구하는 딜레마를 가지는 것이 바로 우리 장애인들이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곧 대학의 위기와 역경은 곧 장애인 대학생들의 위기이자 역경이다. 중증장애인들의 교육차별을 완화하고자 시작한 대학의 장애인 특별 전형 시행들은 어느새 경증 장애인들이 대학을 쉽게 가는 방법으로 악용되어 일반 학교 학급에서는 비장애인학생들이 뒷소리를 하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하고 쉬쉬하며 진행하는 것이 되어 버렸고, 평소에는 장애인 등록도 하지 않고 있다가 모의고사를 치르고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자 부랴부랴 장애인 등록을 하고 장애인 특별전형을 준비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지곤 한다. 장애인이란 존재가치가 차별에 대응하여 권리 개념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란 존재가치가 비장애인들과의 공정한 경쟁도 방해하며 이익을 편취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대학 사회 내에서는 알게 모르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 간의 긴장과 갈등이 심화되고 장애인 대학생들은 이를 건강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이란 이름으로 각종 기자재와 장학금을 받고 있는 장애인 대학생들이 정작 비장애인들의 등록금 투쟁에 무관심 할 때 ‘장애’는 권리가 아니라 부당한 이익이 되고 있다. 이런 필자의 글에 많은 장애인 학생들이 여전히 본인들이 힘들다며 비판하겠지만, 나는 점점 장애인 학생들에 비해 비장애인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교육권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Liberty From authority!! Liberty From Myself!!
억압하는 사회로부터의 자유, 갇혀진 나로부터의 자유
우리나라의 5.18 광주와 같이 스페인 내전에서 많은 민중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묘사한 피카소의 ‘게르니카’.
한국의 장애인 민중들도 길거리에서, 시설에서, 심지어 부모에 의해, 또는 사회에 의해 학살당하고 있는 현실을 장애인 대학생들이 외면하지 말자며 따라 지었던 동아리 이름이었다, 장애인의 삶이 단지 사랑과 헌신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평등한 권리와 참여를 통해 구현되기를 열망했던 우리의 이상이기도 했다, 가장 계급적이고 가장 진보적이어야 할 사람들은 그 당시 가장 참혹한 차별을 겪고 있는 장애인이었건만, 참 이상하게도 이런 장애인들마저도 대학이라는 간판을 가지기만 하면 대학을 가지 못한 다른 장애인들과 같은 장애인으로 묶어지기를 부담스러워 했다. 아니, 같은 장애인이라고 생각하기를 꺼렸었다. 그래서 게르니카 발기 취지문에 위와 같은 선언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보면 학교를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의외로 쉬운 일이었다. 정작 지금도 어렵디어려운 것은 나와 우리들 자신 장애인 당사자들의 갇혀진 자신의 장애를 감추고자 했던, 부끄러워했던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90년대 초 그렇게 많던 대학의 수화 동아리가 모두 사라졌어도 수화운동의 생명력은 소멸되지 않고 2010년대에 들어 수화를 쓰는 장애인 당사자들 농아인 대학생들에 의해 ‘수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볼 때 장애인 문제에 있어 다시금 주체와 정체성을 고민하게 한다. 그러한 그들이 후배들을 위해 책자를 만들어 직접 배포하고 활동하고 열악한 농아인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스스로 장애인 대학생의 위기를 극복해 가고 있음은 주목해야 할 일이다. 물론 농아인 대학생 그들도 수어가 제2국어로 법제화되는 그날 새로운 도전과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르니카 창립을 함께 했던 장애인 대학생 중에 한명이었으며, 대학생 새내기 때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 씨의 분신 사건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대학이란 간판을 빌미로 다른 장애인의 삶은 외면하고 싶었던 장애인이었고, 게르니카 동아리 문을 닫는 그날이 장애인 교육권이 완성되는 것이기에 동아리가 사라지는 것이 활동의 목표라고 호언장담 했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장애인대학생들이 다른 장애인들의 삶을 외면해도 좋을 만치 무엇이 나아졌는지 후배들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 자문해보는 2013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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