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 그리고 알바니아의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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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니아 전경 ⓒ김민혁 |
2013년 첫 주, 12시간 비행으로 알바니아에 도착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움직이던 시대를 지나 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이제는 가난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동유럽 나라들 중의 하나가 알바니아다. 이들은 겉모습으로 보기에는 피부도 하얗고 멋진 자연경관을 갖고 있어서 풍족하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부분의 가정이 산에서 구해온 나무로 난방을 할 정도로 가난하다. 이번 알바니아 방문은 이러한 알바니아인들의 어려운 삶을 카메라에 담아 세상에 알려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나는 알바니아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쉬퍼팀의 가족과 5일 동안 함께 지내며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클로디는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자루를 엎어 그 안에 든 캔과 플라스틱 병을 쏟아 붇는다. 클로디는 가난한 집, 다섯 아이의 아빠 쉬퍼팀의 셋째 아들이다. 첫째와 둘째 누나를 제외하면 집안의 맏아들인 셈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캔과 페트병을 모아서 파는 일을 쉬퍼팀은 벌써 6년째 하는 중이다. 클로디는 6살 때부터 아버지를 쫓아 거리에 있는 쓰레기통과 도로 옆 숲속으로 사람들이 던져버린 캔과 페트병을 찾아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국적으로 잘생긴 외모라서 얼굴만 보면 부잣집 외동아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주일에 많이 벌어야 일만 오천 원 정도밖에 벌지 못하는 아주 궁핍한 가족의 아이다.
▲ 클로디 ⓒ김민혁 |
쉬퍼팀은 주워온 여러 가지 고철과 자전거를 개조해서 만든 수레를 주운 캔과 페트병을 나르는데 사용했다. 체인이 엉성해서 자주 빠지고, 오래된 바퀴는 자주 펑크가 난다. 브레이크도 없어서 내리막길에서는 어린 클로디가 타기에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낡은 자전거 수레를 아버지와 나란히 끌고 가는 낯설지 않은 모습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나와 나의 아버지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 당시 꽃가게를 하던 아버지와 10살 무렵의 클로디 비슷한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람 키만 한 꽃나무 화분을 리어카에 옮겨 싣고 아빠와 함께 배달을 가곤 했다. 달리는 자동차들 옆으로 조심스럽게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리어카를 끌며 밀며 아빠와 함께 배달 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의 내 마음과 생각들을 떠올리면 지금 눈앞에 있는 클로디의 마음과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가난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하는 그 행복했던 시간. 힘없이 연약했던 어린 나이지만, 아버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던 그 소망들은 분명 내가 어려웠던 시절 갖고 있던 것들과 똑같을 것이다.
▲ 재활용품을 수거 중인 쉬퍼팀과 클로디 ⓒ김민혁 |
어린 클로디에게 꿈을 물었다. “경찰이 되어서 나쁜 사람을 잡을 거예요.” 클로디는 총 쏘는 시늉을 하면서 밝고 경쾌하게 대답했다. 나는 클로디에게 “그런데 나중에 커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니?”라고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클로디는 곰곰이 생각한 뒤 “음... 집 짓는 곳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할 것 같아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가난, 그것은 어린 아이의 꿈까지 갉아먹는다. 분명 그것은 쉬퍼팀이 내일 당장 먹을 음식을 걱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어린 클로디의 꿈까지도 빼앗아 가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뒤를 따르며, 나는 가슴 한구석이 아파서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매일 이 짓을 해도 벌어먹고 살기 참 빌어먹게 힘들구나.”
▲ 쉬퍼팀 가족 ⓒ김민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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