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 역할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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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제도에서 장애인활동지원제도로 바뀐 후 활동보조인에게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바우처를 시간으로 주다가 돈으로 주니까 이용자들이 더 일을 많이 시키려고 한다”가 처음 들은 답이었습니다. 활동보조인의 노동조건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지침에 따라 흔들리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체감온도는 훨씬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시장으로 밀어 넣는 정부의 인식과 이를 기반으로 설계되는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활동보조서비스를 쟁취하기 위해 매우 어려운 투쟁을 벌여온 활동가들과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활동보조인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활동보조인연대(이하 활보연대)가 지금까지 버텨온 데는 장애인운동을 하는 동지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처음 활동보조인권리찾기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시작할 때, 협의회 소속 IL 센터들의 지원으로 활동보조인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활동보조인 소식지는 성북센터의 재정지원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우리가 기자회견을 하거나 행사를 할 때는 장애인들이 항상 함께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활동보조인이 모이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들도 많습니다. 가장 흔히 듣는 얘기는 활동보조인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게 되면 이용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활동보조인을 통해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거나, 이 탓에 제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되는 게 부담스러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활동보조인들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갈등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각자의 입장이 있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 길을 모색해 가야 하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저는 이 해답이 활동보조서비스의 목적과 취지를 되돌아보고 그 정신을 살리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활동보조인의 마음을 움직인 “장애인의 자립생활”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중·고령의 여성들이 교육을 받으면서 “여러분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라는 말에 감동합니다. 2011년 공공노조 대경지부와 2012년 활보연대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활동보조인의 직무 몰입도가 다른 직업군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 그리고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이 아니라 장애인과의 지속적인 관계 형성으로 말미암은 감정노동 특유의 정서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자립생활을 지원한다는 보람과 긍지가 현실에서는 활동보조인을 좌절시키는 기재가 되기도 합니다.
예1) A씨·20대 남성활보, 자립생활 패러다임에 매력을 느껴 활동보조인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 첫 직장에서 제공기관이 활동보조인의 역할에 관해 관심과 고민이 없는 것을 보며 회의를 느끼던 중, 활동보조인들의 모임이 나름대로 활발히 움직이는 곳을 발견하고 제공기관을 옮김.
- A씨가 여기서 만난 이용자는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장애인이었음. A씨의 역할은 수퍼마켓에 오는 손님들에게 물건을 파는 점원의 역할이었음. A씨는 자신이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과는 무관한 시급 높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느낌. 결국, A씨는 자신이 생각했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활동보조서비스라는 직업은 꿈에 불과하다고 느끼고 활동보조를 그만둠.
예2) B씨·60대 초반 여성활보
- “예전에 시각장애인을 활보할 때는 사회활동 지원을 많이 해서 자립생활을 지원한다는 느낌이 컸는데, 지금은 가사지원만 하다 보다 이게 자립생활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 중·고령 여성들은 특히 가사지원에 대한 요구가 많은 편이며, 가족의 일까지 떠맡는 경우가 많음. 가사지원만 집중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활동보조에 대한 회의감이나 역할에 대한 박탈감이 큰 편임.
활동보조를 오래 한 사람들을 만나서 불만을 들어보면, 교육의 문제를 많이 꼽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교육이 정작 현장에서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다고 말합니다.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교육을 강화하고 싶어 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그만큼 활동보조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고민을 정부도 제공기관도 해결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마치 종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육체적인 어려움보다 더 힘든 인격적 모욕
“가사활동보조는 한 달이 다 되어 가네요. 근데 가사활동보조가 말이 활동보조이지 완전 파출부의 노동수준이네요. 기본적으로 방이랑 거실이랑 먼지 털고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하고 월화수목금 돌아가면서 본 청소하고 월요일엔 화장실 청소, 화요일엔 싱크대 청소, 수요일엔 냉장고 청소, 목요일엔 거실장 청소, 금요일엔 베란다 청소…이렇게 시키네요. 가사활동보조가 아니라 이건 파출부라는 생각만 들고…. 정말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 자질구레한 것들도 다 시키고, 노예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활동보조인들이 갈등하는 부분 중에, 어디까지가 활동보조의 영역인가 하는 얘기는 많이 들었을 겁니다. 활동보조서비스의 영역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해 지침이 있기는 하나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습니다. 또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마치 종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2010년 활동보조인권리찾기모임이 복지부에 요구안을 전달하기로 하고, 내용을 정리할 때, 많은 분이 이용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침이 있다고 해도 이용인이 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시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정부시에서 2011년 활동보조서비스 모니터링을 하는 과정에서, 모니터링 요원이 활동보조인이 보는 앞에서 이용인에게 “맘에 안 들면 바꾸세요”라고 해서 활동보조인들이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에게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있다면 활동보조인에게는 노동자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는 활동보조인이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방어조차 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라면 누구도 함부로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활동보조인은 이용인이 그만두라고 하면 바로 해고가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혹은 부당한 이유라고 해도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습니다. 월급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들쭉날쭉한 임금을 해결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일하면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최소한이라도 확보해 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침대로’는 정부와 제공기관이 서로 공을 떠넘기는 방패막이?
복지부의 지침대로라면 수급자가 급여제공계약에서 벗어난 급여를 요청하거나 갈등이 발생할 때 활동지원기관과 상의 후 결정하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문제가 생기면 제공기관이 해결사가 될 때는 거의 없습니다.
“하도 답답한 마음에 넋두리라도 해봅니다. 저는 지금 4년째 아동 이동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큰 사고가 4~5번 있었어요. 아이 자체가 힘 조절 능력, 언어와 행동에 제약이 있고 눈도 잘 안 보이는 상태였어요. 우연히 문을 탕하고 열었는데 옆에 차에 문을 열면서 찍힌 거예요. 그래서 제 사비로 돈을 물어 준 것이 4번 정도 되는 것 같고요, 두어 번은 그냥 모른 척하고 온 것 같아요. 올해 초 두 번의 손 골절 사고가 있었어요. 올해는 큰 맘 먹고 대상자 부모에게 말했지만, 그냥 웃음으로 넘기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더군요. 그런 것을 보고 막상 사무실에도 이야기했지만, 대상자가 직접 다치지 않은 이상 배상처리(즉 보험처리) 안 된다 말하고 얼버무리더라고요. 대상자 차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제 차로 이동하면서 제 돈으로 사고처리 해야 하고, 병원에 가야 하고, 차 망가지면 수리해야 하고…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골에서는 활동보조인의 차량을 이용해 활보를 할 때가 많습니다. 제공기관에서 대놓고 차 있는 사람을 모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고스란히 활동보조인의 책임입니다. 심하게는 기름값을 시간으로 계산해서 받았다고 부정수급으로 자격박탈을 당한 예도 있습니다. 이용인으로부터 부정수급을 제안받고 이를 거부했을 때 잘리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장애아동의 부모가 활동보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장애아동을 돌보던 많은 활동보조인이 일자리를 잃거나 시간이 줄었습니다. 부모나 제공기관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경기도 모 지역에서는 성폭력을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제공기관이 한 일은 활동보조인을 교체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사람이 왜 활보를 교체하게 됐는지에 대한 사전 정보도 주지 않았고, 동성 활보를 파견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세 사람이 연속해서 성폭력을 당한 후에야 기관에서는 이 이용자를 다른 기관으로 보냈습니다.
특히 활동보조인의 근골격계 질환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활보연대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년간 신체의 한 부분 이상 치료가 필요한 근골격계 질환이 있었다고 응답한 비율이 68.4%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산재보험을 신청하려고 하면 제공기관이 먼저 막아섭니다. 어차피 해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근골격계 질환이 산재승인 어렵다는 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안 되니까 사보험이나 자비로 해결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활동보조인과 제공기관이 함께 손잡고 복지부에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대책을 세우라고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포괄임금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바우처 방식으로는 노동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건도 만족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장차 활동보조인이 자기 권리를 주장해서 기관이 곤란해질까 봐 서둘러 포괄임금제를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복지부의 입지를 강화시킬 뿐입니다.
활동보조인들이 제도개선을 요구하면, 복지부는 이 제도는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활동보조인의 노동조건이 나아지고 안심하고 일할 수 있어야 서비스의 질이 좋아진다는 것은 모두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노동조건의 개선이 단순히 시급을 올리거나 수당을 몇 % 더 주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 여러분이 이용자와 그 가족의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함께 주장할 수는 없나요?
활동보조인은 노동자의 권리 존중받아야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를 거부하고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쟁취했습니다.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은 장애인에게만 있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인정받아야 할 사회적 권리입니다. 활동보조인이 노동자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것도 똑같은 사회적 권리입니다.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갈등의 원인이 모두 이용자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갈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갈등은 사람 사는 곳이라면 당연히 있는 일입니다. 아무리 죽이 잘 맞는 친구도 사소한 일로 다툴 수 있고, 아무리 우애가 좋은 형제라도 백날을 하루같이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두려워하고 덮으려고 할 게 아니라 드러내어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푸는 열쇠가 사회적 권리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활동보조서비스제도가 사회적 권리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듯이, 서비스 현장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 풀 것이 아니라,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모두에게 사회적 권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교육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취약한 정부에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버스를 타는 마음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할 때는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유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활보서비스 초기에는 공적전달체계가 요구의 상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요구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복지부가 다른 건 몰라도 직접고용이나 공적전달체계는 절대 받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제공기관 뒤에 숨어서,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갈등을 조장하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포기하고 있어야 하나요? 활보서비스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때, 가능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투쟁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작년 희망버스의 물결이 일던 시기에 한진중공업으로 김진숙 동지를 만나러 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장애인들이 거기에 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당하게 구조조정 당하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와 연대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동지들은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투쟁에 오랫동안 연대해 오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서 장애인 동지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먼 곳을 향해서도 연대를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달려가는 사람들이 바로 장애인 동지들입니다.
활동보조인들이 자신의 권리만을 찾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함께 사회적 권리를 쟁취하자는 것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빈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활동보조인에게는 노동권을 쟁취하는 지름길이며, 장애인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자립생활의 핵심을 저는 ‘장애인이 지역주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지역주민으로 살기 위해,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지역주민인 활동보조인을 가교로 생각한다면 활동보조인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활동보조인권리찾기모임을 처음 만들 때 모였던 사람들은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이 연대한다면, 활동보조인이 장애인운동의 가장 가까운 지원세력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 활동보조인에게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인운동을 하는 동지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를 이해하고 연대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도의 문제가 드러날수록 그 연대의 고리도 약해져 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활동보조서비스의 목적이 장애인의 자립생활의 한 부분인, 지역주민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라면, 활동보조인의 역할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활동보조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사는 인근에서 일합니다. 즉 지역주민이라는 것입니다. 또 활동보조인의 대부분이 40~60대의 여성들입니다. 여성의 사회적 특성이 남성보다 정서적 지지나 지원에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단순히 돈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치부함으로써 제도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고리 하나를 끊어내는 것은 아닐까요?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연대해 함께 사회적 권리를 쟁취하는 꿈, 저 혼자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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