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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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행되고 있는 활동보조 지원 제도에서 감춰져 있는 진실 하나는 부정수급 문제이다. 적지 않은 수의 장애인들이 실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배정된 서비스 시간 일부를 돈으로 환산해서 활동보조인과 나눠 갖는 부정수급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문제는 이런 범죄 행위와 다를 바 없는 부정수급은 보건복지부도 알고 있고, 장애인 단체들도 내막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장애인에게 돌멩이를 던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부정수급 행위를 저지르는 장애인들 대다수가 한계 상황에 내몰린 빈곤 장애인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빈곤 실태에 대한 수 년 전 자료가 여기 있다.
2008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소득은 182만 원으로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 337만 원의 54%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 장애인의 최저생계비 이하 절대 빈곤율은 28.1%로 비장애인 7.3%의 약 4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즉 전체 장애인의 28.1%가 생계를 꾸리기조차 힘겨운 처지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등록 장애인의 절반 가까운 숫자가 초등학교 졸업 정도의 저학력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를 더하고, 장애인 중에서도 중증장애인의 절대빈곤율이 35.90%라는 통계를 더하고, 또 2008년 이후 벌어진 양극화 심화와 일자리 부족 현상을 더하면, 지금 중증장애인들이 얼마나 심각한 빈곤 환경에 놓여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장애인 빈곤 현실에 대한 하나의 예를 들면, 혼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증장애인의 경우 월 생계비로 많아야 45만 원, 장애연금으로 15만 원, 합쳐서 60만 원을 지원받고 있다. 이 돈으로 임대료를 내고, 전기세 등 공과금을 내고, 통신비 등을 내고 나면 필연적으로 식비가 부족하다. 그래서 장애인이 밥을 굶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무료급식소를 기웃거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애써 눈을 감고 있지만 이게 적지 않은 수의 빈곤 장애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빈곤 장애인들이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않고, 배정된 시간 일부를 돈으로 환산해서 나눠 갖고, 그 돈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는 걸 사실상의 범죄행위이긴 하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장애계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은 단연 김주영 씨 사망사건이다. 그이가 야간에 홀로 집에 있다가 불이 나 사망한 사건이 벌어지자, 사망 원인이 활동보조 서비스 시간 부족이라며 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시간 지원을 지금보다 대폭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런데 장애계 일부에서는 장애인 빈곤과 연관 지어서 김주영 씨 사망 사건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있었다. 김주영 씨가 배정 받은 활동보조 서비스 시간 360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8천원 단가에 360시간을 곱하면 288만원이라는 돈이 계산된다. 다른 시각은, 이 돈을 김주영 씨에게 직접 지급했으면, 김주영 씨가 활동보조 서비스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그래서 어쩌면 야간에 활동보조인을 고용해서 화재로 숨지는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지 않았을까, 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장애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는 장애인 복지 정책에서 개인별 총액 예산제도를 도입해서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제도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개인이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파악한 다음, 서비스에 드는 비용을 총액 예산으로 환산해서 장애인 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제도다.
장애인 복지서비스에서 자기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시행되는 이 제도는 장애인이 그 총액 예산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대해, 가령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하든 말든 누구도 일절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런 총액예산 제도를 도입해서 시행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같이 장애인 소득보장 정책이 지지부진함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차선책으로 안 될 건 또 뭔가, 라는 지적을 제기할 수 있다.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 지원서비스만 있으면 지역에서 자립생활이 가능할까? 그건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 소득보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누구든 장애인 문제를 냉정하게 살펴보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문제의 시작과 끝은 빈곤문제 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장애인이 처해 있는 절대 빈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활동보조 서비스 시간을 늘리는 등의 그 어떤 대책도 의미가 없다고 지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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