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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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경기도 평택의 한 미신고 시설의 인권침해 사례가 접수되었고, 선배 활동가들이 현장에 출동하여 시설 폐쇄와 분리조치, 시설장에 대한 고발조치가 이뤄졌었다. 한 방송사의 제보로 시작된 이 사건은, 방송 제작진이 지적장애인을 가장하여 시설에 입소, 일주일이 넘도록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생생한 인권 침해 현장을 촬영하여 보도된 바 있다.
취재 결과 확인된 인권침해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지적장애인 또는 정신장애인으로 구성된 30여 명의 장애인을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수용소와 같은 시설에 철조망으로 감금하였고, 내부 위생 상태나 생활여건은 참담했다. 제공하는 식사는 양도, 질도, 위생상태도 짐승의 먹이보다 절대 낫지 않았는데, 그마저 더 먹으려고 하면 폭언, 욕설이 날아왔다. 자신을 목사라고 속인 이 시설장은 어떤 신비한 능력으로 자신이 정신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그가 제공한 치료행위는 성경을 필사하게 하는 것과 정체 모를 약을 자가 제조하여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그 외에도 변 처리가 안 되는 장애인을 독방에 가두어 오물 속에서 생활하게 하는가 하면 어머니를 자식과 분리 감금했고, 두 모자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몰래 만났는데, 그마저도 들키면 욕설과 “그러다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라는 협박까지 했다.
실제 잠입취재에 따라 확보된 사실관계에 따라 인권센터는 시설장을 감금, 학대, 장차법위반, 횡령 등의 죄목으로 고발했는데, 최근 8월 말, 검찰로부터 ‘혐의없음’이라는 기가 막힌 처분 통지서가 날아왔다.
이러한 기막힌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한 것이 아니고, 피해자와 상관이 없는 제3자가 ‘고발’을 한 것인데다가, 피해 장애인들은 피해 사실에 대한 인지능력이나 진술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경찰의 형식적인 수사에 제대로 피해 사실을 진술하지 못했고, 피해자의 가족들 역시 피해자들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지가 미약했거나 번거로운 일에 연루되기를 꺼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인권센터는 즉시 성명을 발표했고, 법률위원단 변호사를 동원하여 즉각 항고에 나섰다. 그리고 법률위원단으로 위촉된 한 인권변호사는 성명서를 보고 먼저 연락을 걸어와, 이와 같은 사건에 항고하여 승소한 경우가 있다면서 도움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이번 사건의 항고에 동참하셨다.
원주 사랑의집 사건 피해자 장례식 및 추모집회
9월 23일부터 25일까지는 원주 사랑의 집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장례식이 이루어졌다. 가해자인 장씨는 자신을 목사라고 속여 장애인을 모집해 친자로 등록하였으나 제대로 돌보거나 치료해 주지 않아 두 명이나 사망에 이르도록 했다. 그러고도 병원의 의료과오를 주장하며 돈을 요구하다가, 소송에서도 패소했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장례를 거부하며 각각 10년,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병원의 냉동고에 내버려 둔 자다. 고인 중 한 분은 겨우 친모를 찾아 이번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으나, 나머지 한 분은 가족을 찾을 길이 없어 아직도 병원의 냉동고에 있다.
영정을 모시고, 밤새 장례식장에 있다가 화장하는 장면까지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필자는 착잡하고 복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찌 보면 우연한 기회에 장애인 단체에 입사하였고,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다가 보니, 이렇게 참담한 장애우들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고 자본주의가 하나의 신앙과 같이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서, 무엇을 쫓으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지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평택 사건도, 원주 사건도 누구 하나, 가족들마저도 도와주고 지켜줄 수 없었던 많은 장애인의 가슴 아픈 현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사건이었고, 아직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무겁다.
사랑의 집 사건의 가해자는 ‘목’숨바처 ‘사’랑한다는 자칭 목사였음에도 피해자의 가족들은 기독교도로서 목사님에게 장례예배를 맡겼다. 목사님의 발인예배 말씀을 마음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고인은 비록 세상에 태어나 남달리 어렵고 험난한 삶을 살았지만, 어찌 보면 고인은 무의미하게 세상을 떠난 것 같지만, 고인은 세상에 너무나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숙제를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평생 마음에 두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싸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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