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활동보조 하루 24시간을 즉각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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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 새벽,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 연립주택에서 김주영 장애해방운동가가 화재로 인한 질식사로 참담하게 숨을 거두었다. 고인은 장애특성상 스틱을 입에 물고 전화기를 터치하여 119에 화재 신고하였으며, 불은 진화됐지만 중증 장애여성으로서 혼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화마와 싸우다 그렇게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화염 속에 새까맣게 타버린 고인의 전동 휠체어는 그녀가 당시 홀로 남겨진 채 얼마나 고통과 공포 속에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을지 짐작케 하며, 할 말을 잃게 한다.
고 김주영 장애해방운동가는 장애인 자립생활과 활동보조 시간 보장 등을 위해 현장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며, 미디어와 지역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활동해 왔다. 고인은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자립생활을 실천 하였으며,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사랑받고 존중 받으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주말에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배웠으며, 장애인 운동과 함께 일상의 삶도 잘 살아내고 싶고, 하고픈 것도 많은 서른 네 살의 젊고 아름다운 장애여성이었다.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거동이 힘든 최중증의 장애를 가진 고인이 생전에 이용한 활동보조 시간은 하루 10여 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이후 닥친 위기상황에 아무런 대책 없이 홀로 무방비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고인은 활동보조 시간을 더 쓸 수 있었지만 본인 부담금 때문에 지원 시간을 더 이상 신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진작에 정부가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 하루 24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장애계의 절실한 요구를 귀담아 들었다면 이토록 억울한 참변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은 40만 가까이 되지만 정부의 장애등급제 제한으로 인해 활동보조를 받고 있는 장애인은 10%도 채 안 된다. 특히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한 최중증 장애인이 지원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복지부 기준 한 달 최대 180시간으로 제한돼 있어 자립생활을 영위하는데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고인처럼 언제든지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정부는 장애계의 요구대로 활동보조 하루 24시간을 즉각 보장하고, 장애 등급제를 폐지하여 이 땅의 장애인들이 생존하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현재 열리고 있는 일련의 국제행사 등에서 번지르한 말로 치장하거나 예산 핑계대지 말고 활동보조 대책 안을 당장 마련하여 발표해야 한다.
아울러 고인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정치인들과 우리사회는 정치적 수사나 일회성 관심환기가 아니라 생전의 고인과 장애계의 절실한 요구를 반영한 실효성 있는 활동보조 제도를 마련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고 김주영 장애해방운동가가 죽음으로서 남긴 의미와 중증장애여성으로서 치열한 삶을 살다간 아름다운 그녀를 기억하면서 고인의 참담한 죽음을 깊이 애도한다. 부디 차별 없는 천상에서 평안하기를!
우리의 요구
- 활동보조 하루 24시간을 즉각 보장하라!
- 장애인등급제 폐지하고, 부양의무제 폐지하라!
- 본인 부담금을 폐지하라!
2012년 10월 29일
인권연대 장애와여성 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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