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미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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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순화를 역행한다고 누군가에게 타박을 들어도 할 수 없으리라. 찜통·가마솥·초무더위·살인적 폭염…. 여느 해의 삼복염천이라면 고개를 수굿하고 그러려니, 도량을 내어 견딜 텐데. 여름 내내 더위는 지칠 줄 모르는 위력을 과시했다. 마치 작정하고 철저하게 복수하듯. ‘니들도 어디 당해봐라! 내 영역을 마구잡이로 파괴한 파렴치한 행위를!’이라고 뽀드득, 지구가 연실 어금니를 갈아대는 것 같다.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태양은 연일 이글거렸다. 폭염경보·폭염주의보라고 앞다투어 내보내는 방송사들의 멘트를 예사롭게 들을 수만은 없다. 자연이 인간을 향하여 재앙을 선포하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들린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예외 없이 지구를 괴롭힌 공범자다.
구멍이 뚫린 오존층은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그 지구가 품고 있는 생명은 사위어간다.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환경문제는 이제는 차라리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 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북극의 영구동토에는 많은 양의 탄소가 쌓여 있고 극지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얼어붙어 있던 유기물이 녹아 분해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와 이보다 더 강력한 메탄 기체 발생 증가가 이미 관찰된다고. 또한 열대 지방에서도 우려할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열대 지방의 광범위한 습지에서 탄소들이 썩지 않고 쌓여 있고, 기후변화로 가뭄이 빈번해지며 인간이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빼면서 건조해진 습지에 산불이 나거나 미생물들의 분해속도가 빨라져서 다량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빠져나오는 실정이란다.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은 온실가스 배출이며 온실가스로 지구 온도가 상승함으로써 세계 각지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나없이 알고 있잖은가? 그런데도 여전히 자동차는 쉴 새 없이 질주하고 또 여전히 냉방기는 돌아간다. 어디 자동차와 에어컨뿐이랴? 공장, 발전소, 갖가지 오염물질이며 심지어 산성비까지 기후변화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고 하니 그 심각한 정도야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과거 100년간 지구 온도는 0.74도 올랐으며 만일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한다면 사람은 물론이고 동식물도 정상적인 환경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찜통더위 속에서 충분히 실감하고도 남았을 터다. 따라서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춰 보려고 20년 전부터 노력하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이며 일부 국가지도자들과 환경시민단체들을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볼 일은 아니다. 지구인들의 발등에 이미 불은 떨어졌으므로.
“엄만 화성인이야. 난 정말 멘붕상태인데.”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는 나를 아이는 이방인을 넘어서서 숫제 지구 밖 사람으로 간주했다. 그러니까 수위를 넘는 더위 때문에 자신의 정신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멘탈 붕괴라…. 하긴 나 역시 병든 병아리마냥 책상머리에서 자울자울 졸기 일쑤이거나 산소가 부족한 어항 속 금붕어가 입만 뻐끔거리듯 간신히 호흡을 이어갈 뿐이었다. 당최 몸을 추스를 수 없는 염천이었다. 체질적으로 추위에 약하고 더위에는 무던한 내게도. 그러니 혈기왕성한 사내아이는 오죽하랴?
“생태환경을 표방하는 학교의 일원으로서 이럴 때 좀 실천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니?”
집에 들어오면 에어컨 리모컨을 들고 사는 아이에게 나는 고작 공자 가라사대, 풍을 읊어대는 격이었다. 손만 뻗어도 땀이 날 지경에 생태·환경이 다 무어란 말인가!
“생태고 동태고 간에 요즘 날씨는 미쳤어. 이런 미친 날씨에 사람들이 미치지 않는 게 기적이에요.”
역시나 ‘공자 가라사대’는 ‘공자 가버려라’로 돌아왔다. 생태환경을 교육 이념 중 하나로 삼는 대안학교의 3년 차 학생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십대였다.
“얘? 날씨가 저절로 이렇게 미친 거니? 이상기후를 만든 건 사람이야.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고 순리를 역리로 바꿔서 생긴 재앙이거든? 편리와 탐욕의 결과물.”
어항 속 붕어가 뛰쳐나가 강물을 만나듯 나는 한순간에 줄줄 쏟아냈다. 자칫 편협한 논리를 내세우는 비이성적 결함을 안고 있다고 제 어미를 판단하더라도 나는 공자 가버려라, 에 응해줄 수 없었다. 본질을 망각한 우리 세대의 지나친 풍요와 안락에 밑도 끝도 없이 화가 났다. 지구를 괴롭히고 위해를 가하며 분노케 한 그 무분별과 무신경함을.
“엄마 환경주의자예요? 전기료 때문이 아니고?”
아이는 의외라는 듯 삐뚜름하게 고개를 외로 틀고 물었다.
“난 무슨 무슨 주의를 선호하거나 신뢰하지 않아. 따지고 보면 한 달 전기료가 얼마나 되겠니? 지구가 진즉부터 적신호를 보내는데 이젠 모든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라도 환경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안 돼!”
“알았어요. 줄여서 켤게.”
연일 계속되는 가마솥더위를 우리 가족은 자그마한 아이스 팩과 선풍기, 그리고 짬짬이 에어컨과 함께 났다. 자주 냉수를 마시는 방법도 활용했다. 냉장고 문을 여닫으며 간혹 아이는 고리타분한 어미를 향해 가자미눈을 치뜨곤 했다.
흡사 불이 붙을 기세인 창밖의 땡볕을 나는 한동안 내려다본다. 후쿠시마 사태는 이웃 나라의 참변만은 아니다. 인간의 기술력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위험천만한 낙관적 교만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오랜 시간 대단한 자정능력으로 균형감을 유지하던 자연이 드디어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을 향한 원망과 탄식의 단말마인지도 모르겠다. 이상기후가 이제 더는 이상기후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느 해의 정상적인 기후상태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이젠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과 한파며 지진과 가뭄, 홍수가 자주 출몰하고 고착화된 실정이다. 그 파괴력은 실로 엄청나다. 자연은 견딜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며 긍휼의 눈을 감아버리고 보복의 손을 뻗쳤다. 자연과 사람이 상생하기 위하여 과연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탐욕과 편리의 수위를 조절하고 자연의 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 하나쯤(?)의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나부터’의 작은 실천력이 불가피하다.
※이서진 님은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함께걸음에 좋은 글을 보내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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