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땅 아이티, 이제 희망의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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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7일까지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위치한 아이티(Haiti)라는 나라에 다녀왔다. 아이티는 2010년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전 세계인의 관심 밖에 있는 숨겨진 나라였다. 그러나 지진 이후 세계가 아이티를 집중해 보게 됐고, 세계 여러 나라의 긴급구호 NGO나 국제개발 단체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오히려 어려웠던 곳들이 수혜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티의 몇몇 도로와 건물들에는 여전히 지진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복구와 재건 작업이 한창이어서 2010년 대지진 당시의 참사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수많은 고통을 겪은 땅 아이티. 그곳 장애인들의 삶은 어떠할까. 직접 그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 아이티의 가장 높은 산에서 내려다 본 아이티 전경 ©이애리기자 |
험난한 역사의 땅 아이티, ‘2010년 대지진’으로 세상에 알려지다
‘아이티’는 아라와크어로 ‘산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며, 이름 그대로 국토의 3/4이 산이라고 한다. 주민 대부분이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인 흑인이며, 공용어로는 프랑스어와 토속어인 크레올이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대지진의 참사현장이 TV를 통해 비춰졌을 당시, 아이티인들이 흑인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티가 아프리카 대륙의 한 나라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하나다.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위치하고 도미니카 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이티는 콜럼버스에 의해 1492년에 발견된 이래, 오랜 기간 스페인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1804년 1월 1일, 세계 최초로 흑인노예들이 독립운동을 벌여 식민국으로부터 독립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아이티는 험난한 역사의 길을 걸어야 했다. 다시 1915년부터 1934년까지 미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동시에 프랑스에 노예 손실에 대한 ‘배상금’으로 총 9천만 프랑을 지불하는 데 합의하면서 막대한 외채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그 때문에 아이티의 경제는 점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더군다나 외채를 빌려준 미국은 그 구실로 해병대를 동원해 아이티를 1915년부터 20년간 점령했고, 이때부터 아이티의 경제는 미국 경제에 깊이 종속되었다. 그 후, 1956년부터 미국의 지지를 받았던 뒤발리에 부자의 30년 독재정권으로 인해 미국의 간접적인 지배가 계속되어 아이티의 경제는 자립기반을 잃게 됐고, 오랜 기간의 경제 난항으로 인해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게 됐다.
▲ 열대기후인 아이티에서는 곳곳에 야자수를 볼 수 있다.©이애리기자 |
▲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도로 위 풍경 ©이애리기자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0년, 아이티에 대지진까지 발생했다. 세계 전역에 뉴스보도를 통해 아이티라는 나라에 강진(규모 7.0)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의 대부분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20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25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 100여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25만 채의 가옥이 무너졌고, 수많은 정부 청사와 공공건물, 병원 등이 피해를 입으면서 사회기반시설도 대부분 파괴되었다.
서빙프렌즈 김월림 지부장은 지진이 발생한 직후 아이티 재난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김 지부장은 “도착했을 당시 건물들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고, 여기저기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긴급구호를 위해 NGO들이 들어와 있긴 했지만, 구호 단체 간의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구호가 지체되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한 그는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의 강도 정도라면 사실 이만큼의 피해규모를 양산하지 않지만, 아이티는 건축물들이 허술하게 지어져 훨씬 큰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다국의 신속한 구호 활동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재민 수가 너무 많은데다 피해 규모도 워낙 커서 지진 후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수많은 아이티 사람들은 오랜 시간 시내와 외곽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난민 신청을 받아들였고, 전 세계 은행들은 수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으며, 세계은행은 국가 채무 상환을 5년간 연장해 그나마 아이티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가장 가난한 나라, 장애인의 삶
이번 아이티 방문은 작가, 화가, 광고 카피라이터, 모델, 웹디자이너, 운동선수, 과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프리플라이(Freefly)라는 팀과 함께 아이티 어린이들에게 현지어로 쓴 창작동화를 무료로 나눠주기 위함이었다. 아이티에 도착한 프리플라이팀은 한국 NGO단체인 써빙프렌즈(serving friends)의 아이티 지부와 연계해 현지 학교와 난민촌 등을 방문하면서 아이들에게 동화책과 선물을 나눠주고 미술수업 등을 진행했으며, 학교 도서관에는 책을 기증하기도 했다.
▲ C.E.S 정문 ©이애리기자 |
반면, 시테솔레이유(Cite soleille)는 포르토프랭스에서도 극심하게 가난한 빈민가에 속한다. 이곳이 세상에 잘 알려진 것은 ‘진흙쿠키’ 때문이다. 아이들이 진흙으로 만든 쿠키로 배를 채운다는 이야기가 방송이 되면서 화제가 됐다. 5달러어치의 흙이 있으면 진흙 쿠키 1백 개를 만들 수 있어 다른 식량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가난한 이 지역의 아이들에게 식사대용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빈민가의 열악한 환경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이들은 바로 어린이 그리고 여성과 장애인이다. 결혼하지 않은 어린 여성이나 청소년들도 성교육과 피임도구 부족으로, 성폭행으로 인해, 쉽게 입신하고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때문에, 가난과 무책임 때문에 태어난 아이들은 쉽게 여기저기에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 학교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메디컬 센터가 보였는데, 많은 장애아동과 부모들이 진료를 위해 문 앞에서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이애리기자 |
C.E.S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이 설립된 이래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보스턴에 사는 미국인 여성이 장애학생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숙소와 기반을 마련해줬는데 그것을 알게 된 아이티의 먼 지방에 사는 많은 장애아동들까지도 학교에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로 C.E.S는 의료시설을 갖춘 메디컬 센터와 기숙사, 학교도 세워졌고 치료프로그램과 교육프로그램도 개발해 실시해오고 있다. 정신장애, 지체장애, 시·청각 장애, 중도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테라피 프로그램과 의료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었다.
C.E.S는 장애를 가진 3살 어린이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교육하고 치료를 병행하는 기관이다. 아이들은 중학교 3학년 과정을 마치면 소일거리라도 찾겠다고 나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직업을 찾는 아이들도 있지만 실제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을 마치면 이곳에서는 더 이상의 과정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혹은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도움을 받아 일반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티는 비장애 아이들도 학교에 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 아닌데다가 장애학생들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고, 일반 학교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티인들 자체가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에 진학하거나 사회에서 일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고3까지 진학하는 경우는 거의 보기 드문데, 그래도 몇몇 뛰어난 학생들은 이 학교를 마치고 일반 고등하교 과정도 마친 다음 대학을 졸업하기도 한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 C.E.S 학교 내부 전경 ©이애리기자 |
▲ C.E.S 학교 선생님들과 청각장애 학생들 ©이애리기자 |
C.E.S도 2010년에 발생한 지진을 피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은 곳 중에 하나다. 학교 관계자는 “지진이 발생해 클리닉 센터 건물과 기숙사, 학교까지 다 무너져 내렸다. 당시 기숙사였던 건물을 개조해 기숙사와 학교를 함께 사용하게 됐는데, 이후 일본 NGO가 두 개의 건물을 더 지어줘서 클리닉 센터와 기숙사를 다시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완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50여 명 이상의 아이들이 이곳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모두 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들이라고 한다. 학교 관계자는 “아침에 나가 보면 학교 정문 앞에 버려진 아이들이 자주 있다. 그리고 병원 같은 곳에서도 부모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화장실에 버려두고 가는데, 학교에서는 그런 아이들도 데려와서 키우고 있다”면서 “그래서 아이들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먹이고 재우는 비용부담이 점점 커진다. 그런데다가 도움을 줬던 NGO마저 구호기간이 다 돼서 떠나고 실정이다”라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 시각장애인 '지미'선생님은 이 학교에서 1979년부터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점자를 가르쳐왔다고 한다.©이애리기자 |
▲ 학교에서 방문객의 서류등록을 돕는 일을 하고 있는 지체장애인 클로시안 ©이애리기자 |
고통의 땅 아이티, 그곳에서 피어난 희망
▲ 난민촌 아이들. 아이들은 낯선 외국인인 우리들의 손을 한참 동안 놓지 않았다. ©이애리기자 |
서빙프렌즈는 이러한 난민촌 사람들에게 난민촌 바로 옆 땅에 집을 지어주는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직접 현장을 가보니 집은 거의 다 지어져 가고 있었다. 써빙프렌즈 김월림 지부장은 “안타까운 것은 이주를 기다리고 있는 난민들 사이에서 수많은 범죄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티는 일찍 해가 지는데 밤이 되면 텐트에 사는 사람들은 불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기 일쑤고, 그로 인해 임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며, “얼마 전 한 단체에서 난민촌 사람들에게 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성병에 걸린 여성들이 많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 이번 아이티 방문에는 모델 장윤주 씨도 함께 해, 아이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동화책과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애리기자 |
김 지부장에 따르면 난민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난민촌에 살고 있지 않으면서 사는 척 해서 새로운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써빙프렌즈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불시검문을 한다고 한다. 밤에 찾아가서 그곳에 자고,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여러 번 거쳐서 진짜 난민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티는 여전히 가난에서 비롯된 무분별함으로 인한 범죄가 만행되고 있고, 빈부격차도 커서 빈곤층의 삶은 여전히 피폐하지만, 고통의 씨앗이 뿌려진 아이티 땅에는 희망의 새싹이 솟아나고 있다. 수많은 나라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많은 NGO들과 봉사자들이 들어와 복구 작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학교 및 시설들을 짓고, 필요들을 보고 공급하며 아이티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써빙프렌즈가 난민촌 주민들을 위해 건축 중인 새 집. 난민촌 사람들은 텐트에서 지내며 옆에 자신들의 몫으로 주어질 새 집 근처를 맴돌며 하루속히 들어가 살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애리기자 |
▲ 까사인 난민촌 ©이애리기자 |
동화책 팀이 만들어간 책의 이야기 중심 주제는 바로 ‘꿈’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아이티 아이들의 꿈이 궁금했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꿈이란 무엇일까’, ‘배 곪고 보금자리도 없는 아이들에게 꿈이라는 것이 있을까’하는 물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동화책을 나눠주고 미술수업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 여러 곳을 다니면서 천여 명의 아이들을 만났는데, 그 아이들의 꿈을 통해 아이티 땅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하얀 단복을 갖춰 입은 간호사의 꿈, 큰 프로펠러가 달린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조종사의 꿈, 선생님, 목사 등등. 그곳의 아이들은 현실의 벽을 넘어, 우리의 편견을 넘어 멋진 꿈을 꾸고 있었다.
아이티를 보며 바위틈을 비집고 피어나는 꽃이 생각났다. 그처럼 아이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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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로 제작된 동화책을 선물 받은 아이들. 동화책을 만드는 프리플라이팀은 전 세계 가난한 아이들에게 그 나라의 언어로 책을 만들어 나눠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 첫 번째 나라가 아이티가 되었는데, 아이티에서는 책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부유층 외에는 책을 사서 보기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실제 아이들에게 책을 나눠주자 아이들은 자기들의 말로 써져있는 책이 신기한지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애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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