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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김형수의 세상보기]

본문

『발달장애인법안 발의,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법인데 정작 우리들은 발달장애인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우리들을 만나서 얘기하거나 토론해보고 만드는 것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발달장애인의 생각이 들어가야 합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어려운 말로 법이 작성되면 결국 우리들은 정보차별을 받게 됩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무시하는 쪽으로 법이 만들어지면 우리 발달장애인들은 분노할 것입니다.』(2012년 5월 30일,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성명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없는 발달장애인법안 발의 중지하십시오!!! 중에서)

 

그때 그 곳에 Mr. Han은 없었다. 자폐인 그에게 사과한다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수렴의 장’ 토론회가 18일 오후 2시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와 김정록 의원 공동주최로 열렸다.  토론회 첫 번째 발제자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고명균 사무처장은 발제 끝에 “아울러 발달장애인법을 만들면서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타당하며, 앞으로 법안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라고 토론회에서의 발달장애인 당사자 소외를 반성했다.

이렇게 이날 토론회는 발달장애인의 법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주제 발표에도, 토론자 무대에도, 자료집에도. 실무적인 이유에서, 효율적인 면에서 이해하면서도 떠오르는 단 한 가지 질문은 적어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에게 당신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있으며 오늘 토론회가 열린다고 홍보하는 정치적 쇼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다. 발달장애인 당신들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필자조차도 한 귀퉁이 인터넷신문 기사를 보고 바로 하루전날 이 토론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부랴부랴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수업을 토론회 참관으로 바꾸어 당신들을 참가시켰다. 토론회에서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을 발견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런 능력을 가진 당신들이 아무리 없었더라도, 최소한 당신들을 찾아라도 보고 섭외하는 모양이라도 취해보고, 하다못해 동영상 인터뷰를 연출이라도 하는 정치적 고려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4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메모를 하고 질문하려고 손을 번쩍 들고 있었던 당신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발달장애인을 참여시킬 생각과 의향이 있다는 것은 수용하더라도 당신들의 뜻을 반영할 의지와 방법을 만들 ‘접근’과 ‘기회’를 만들지 않은 점, 마치 장애인 이동권을 논의한다면서 승강기도 없는 5층 건물에서 토론회를 열고 당신이 참여하고 싶으면 휠체어를 버리고 기어올라 와야 한다는 규칙을 강요하는 이 모양새. 타인에 의해 때로는 발달장애인이라 불리고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라고 이름표가 달리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원하는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당신들에게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충분한 ‘판단능력’ 이란 얼마나 충분해야 하는가? 차라리 삐뚤한 몇 가지 질문들

1. 발달장애인의 인격과 감정, 존엄가치를 위한 당신들의 권위와 자존심을 위한 법이기 이전에 발달장애인을 키우고 가르치는 부모와 전문가들의 스트레스와 죄의식을 해소하기 위한 발달장애인 가족과 관련 전문가를 위한 법과 토론 관점은 아닌가? 차라리 발달장애인 관련 구성원 지원법을 만들면 만족할 듯, 차라리 ‘발달장애’는 어렵고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게 나을 듯.
 
2. 발달장애인을 멋있는 사람으로 만들기보다 당신 가족을 피폐하게 하는 무능력하고 ‘불쌍한’ 장애인으로 만들려는 법과 토론은 아닌가? 차라리 내가 원했던 자녀와 가족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위신이 서는 ‘당신들’을 원하고 있다고 고해성사를 하는 것은 어떤지. 경증 발달장애인은 가능해도 중증 발달장애인은 현실성이 없다는 그분들에게는 어떤 장애인이 와도 불가능만 보이는 것은 아닌지.
 
3. ‘발달’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충분한 판단 능력의 기준이 무엇인지 과학적인 분석도 없이 부모님들이 느끼는 실패와 좌절만을 근거로 당신들의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충분한 판단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잘못 판단하는 수 많은 결혼과 사기와 범죄와 사고와 실패 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부모들이 보시기에, 전문가들이 판단하기에 당신들의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들이 당신들에게 충분한 판단 능력을 증진할 기회와 자원을 제공하고 있는지는 회의가 든다. 차라리 발달장애인 부모님의 좌절감과 박탈감, 전문가들의 교육 실패, 지원 실패 구제법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지. 

4.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일본이 없었다면 조선 홀로 근대화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논리가 떠오르고, 발달장애인이란 단어 대신에 근대화시기에 여성이란 단어를 넣어 법을 바라봐도 하나도 어색할 것 없는 토론 관점과 당사자 하나 없어도 형태와 내용은 너무나도 훌륭했던 박정희, 전두환 정권시기의 장애인 관련법 만들기의 속도 내기가 오롯이 떠오르는 것은 필자에게만 국한된 것인가? 차라리 발달장애인 자기결정권을 발전시킬 상상력과 능력과 의지가 없다고 고백하는 게 더 낫지 않을지.

5. 법을 만드는 것도 토론하는 것도 우리보다 뛰어난 지식과 언변을 가진 사람들에게 맡기고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를 진학하지 않아도 모든 자녀들이 서울대 갈 수 있는 능력과 사회를 원하면서 발달장애인 당신들은 왜 자꾸 하향평준화로 낙인당하고 매도되는가? 차라리 놀림받았지만 지역사회에서 버림받지 않았던 바보 영구가 더 낫지 않을까.

 


당신들이 서러워하고 분노하고 표현할 기회조차 주지 않음을 깊이 사과합니다.

발달장애인법을 만들며 정작 힘들고 어려운 일은 국가와 국회위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전문가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관철할 수많은 연구와 분석과 경험과 이미 같은 입장의 감수성 가진 공감 세력들이 있으나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흑인 노예해방운동이나 근대의 여성 해방 운동처럼 철저히 혼자일 뿐 아니라, 그 혼자이고 싶은 권리조차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발달장애인 보호구역을 소록도처럼 하나 만들든지, 발달장애인을 위한 국가를 하나 건립 하면 부모님의 걱정과 전문가들의 무능력함을 잠재울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 당신들은 지금 자유로운 연애와 노동을 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안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부모와 전문가들이 발달장애를 다양성으로 보지 않고 차이로 인정하지 않는데, 과연 국가와 사회가 발달장애인을 차이와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도 발달장애인들을 신뢰하고 믿어 주지 않는데, 그것에 대한 기회비용과 실패를 두려워하는데, 우리 사회와 지역사회가 당신들에 대한 믿음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부모와 전문가들에게는 설문과 발표할 기회를 주면서도 정작 발달장애인 당사자 당신들에게는 무엇이 얼마나 힘든지 직접 물어보지 않고, 물어보아도 부모와 전문가의 반응과 눈치를 살피며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야 하는 당신들의 감수성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그들이 발달장애인을 위해 무언가 주장하기에 앞서 부모로서의 한계와 입장의 차이, 전문가들의 한계와 입장의 차이를 먼저 분석하고 연구하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능력과 인격은 분명 다른 것임에도 능력과 인격을 동일시  하는 것은 서구 문명이 근대화 시절 아프리카와 우리나라를 보던 관점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아니 오히려 당신들을 지금이라도 아프리카 원시 부족만큼이라도 존중해달라 요구하고 싶다. 단 한 사람 한 부모라도 한 명의 전문가라도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철학적으로 신념으로 반대한다면, 한 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지역사회가 당신들을 위한 민주주의에 대해 연구하거나 고민하지 않을 비상문을 열어주는 꼴이다.

당신의 아이큐가 얼마라도 당신의 행동이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당신이 가족들의 기대를 아무리 충족시켜주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실패하고 실수 하더라도 당신이 아무리 다른 사람에 의해 폄하되고 무시되더라도, 당신이 어떻게 불리더라도, 당신의 몸과 당신의 인격과 당신의 감정과 당신의 표현과 당신의 존재는 부정되거나 모욕받아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 당신들은 필자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작게 토로했었다.

진심으로 온 마음 온 의지를 다해 미안하고 사과한다. 그리고 당신들과 함께 싸워줄 것이다. 행복은 발달이 아니라 공감과 공생에 있음을 그들이 깨달아 줄 때까지.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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