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복지에서 평등지향 사회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본문
01/ 사회복지의 두 길: 두 가지 다른 국가이념 및 체제
오늘 한국은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로 점철된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억압과 가난의 굴레를 벗고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남북 간의 평화기반을 구축하고, 정보화와 문화 강국,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 세계는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어려운 기적 같은 발전을 한 한국을 경이로움과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일본, 중국, 동남아만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새로운 문화코드가 되고 있는 한류 열풍, K-pop의 열기는 단순한 대중문화 차원을 넘어 한국의 놀라운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에 2011년 OECD가 발행한 ‘웰빙 측정’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또 다른 어두운 모습, 비인간적인 비참한 사회 모습을 전 세계에 보이고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한국에서 빈곤선(중위소득 60%) 이하 수입을 올리는 저소득층의 평균 소득은 빈곤선보다 47.1%나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것은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빈곤선에 가장 못 미치는 수치다. OECD 34개 회원국 저소득층의 소득과 빈곤선 간의 평균 격차인 27.4%와 비교해서도 20% 가까이 차이가 났다. 저소득층의 소득이 빈곤선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 내 빈부격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OECD는 조사 보고서에서 ‘한국 저소득층의 소득은 중위소득 60%보다 47.1%나 모자랐고,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할 경우 36.6% 적었다’면서 ‘한국의 빈곤 깊이가 가장 깊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다음으로 저소득층 소득이 빈곤선과 큰 차이를 보인 국가는 멕시코 39.5%, 스페인 36.6%, 미국 36.1%, 칠레 35.3% 순이었다. 놀랍게도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인 미국이 우리나라와 같이 빈곤계층이 많고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자료도 이것을 입증시켜 주고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인구 15명 중 1명이 미 연방정부가 매년 정하는 최저 연간 생계소득(빈곤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최빈곤층으로, 그 수가 2천46만 명에 달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바탕으로 한 자유와 기회의 나라, 복지혜택이 많은 최고 선진국으로 3/4세계(20세기까지는 제3세계라고 불렀지만 이것은 서구제국주의 관점에서의 인식이기 때문에, 21세기부터는 3/4세계라고 한다. 실제로 이들 나라는 지구의 3/4이다)의 발전 모델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미국을 절대적 모델로 삼고 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서 올해 발표된 OECD 연례보고서도 미국에 대해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OECD 회원국 중 경제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국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양극화와 부의 대물림으로 인한 빈곤층 문제가 유럽 국가들보다 심각하며, 양극화로 인한 경제 불평등의 고착화에 따른 빈곤문제도 매우 심각하다고 밝혔다. OECD는 미국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인데, 무엇보다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조세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즈> 기고문에서 미국의 사회적 불평등이 100년 만에 최고조에 달했다고 했다. 상위계층의 부를 늘리면 파급효과가 하위계층으로 이어진다는 ‘낙수 효과(Trickle Down)’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 경제제도는 다른 사회적 약자 구성원들을 희생시켜 부유층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기회의 나라가 아니다.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아주 심하다. 따라서 평등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저해한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도리어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한다. 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는 경제도 건전하다. 실제로 평등 수준이 높은 국가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데, 독일과 스웨덴 등 북구가 그렇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부자들에게는 유리하지만 중산층, 빈민들에게는 불평등하고 기회가 불리한 제도다. 반면에 서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소득의 평등 수준만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사회적 상승 기회의 수준도 더 높다. 앞에서 언급한 OECD 연례보고서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02/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자선적 복지정책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복지정책은 인도주의에 의한 자선적 복지다. 자유민주주의는 부와 빈곤을 사회 구조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개인의 능력으로만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개인의 사적 소유의 자유이기에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될 수 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부와 빈곤을 개인 능력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빈곤의 책임은 개인의 무능과 게으름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미국은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에 의한 자선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이 복지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득 보장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분야별 복지다. 미국의 이런 분야별 복지는 인도주의에 의한 자선이라는 도덕에 근거한 것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OECD와 미국 통계청 자료는 미국의 복지정책이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층에게 신분상승의 기회와 희망을 주기보다 체념하고 연명하는 정책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분야별 복지정책은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시켜 도리어 빈곤문제 해결에 저해되고 있다는 점도 인식시켜 주었다. 또한 복지가 경제성장에 저해되는 것이 아니라 양극화와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더 저해하기 때문에 평등을 지향하는 복지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경제도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는 평등과 정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부자들만의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체제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앞으로 새로운 경제체제 및 질서는 평등을 지향하며, 경제가 목적이고 사람이 수단이 되는 시장체제가 아니라 사람이 목적이고 경제가 수단이 되는 인간을 위한 경제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제 미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자선에 의한 분야별 복지정책으로 현 체제를 유지할 것이 아니라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제, 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복지정책은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는 통합적 사회복지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번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그동안 사보험에 국한되었던 의료보험을 사회보험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의원들 일부도 이것은 미국의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합법이라고 승인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미국의 자선적 분야별 복지정책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03/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탐욕적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적 자유 체제다.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부와 빈곤의 문제를 개인적 원인보다 사회 구조적 원인이 더 큰 것으로 인식한다. 특히 부는 개인의 능력도 있지만 편중된 국가정책, 불평등한 사회구조, 가난한 자들의 희생 등이 더 큰 요인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 정치제도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보다 더 평등을 지향하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이런 평등 지향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미국처럼 자선적 분야별 복지, 사회정책의 한 분야로서의 분야별 복지가 아니라 인권과 평등의 자유권인 사회권에 근거한 통합적인 사회정책으로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의 사회정책으로서 복지정책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불평등의 근원이 되는 교육과 의료 그리고 주거의 평등을 추구하고 있다. 교육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무료이고, 의료도 무료다. 주택은 다수 국민이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을 이용한다. 인생의 출발선에서부터 빈부 차이를 넘어 평등한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의료제도는 사보험에 가입한 부유한 계층이 아니면 서민들은 막대한 의료비 때문에 병원에 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주택도 개인소유 중심이기 때문에 중산층과 서민층은 주택소유와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빈민들은 슬럼가, 빈민촌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학교제도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로 구분되어 있는데, 막대한 교육비를 내는 사립학교 학생들은 당연히 사회의 상류층을 선점하고, 공립학교 학생들은 중하위층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통념처럼 되어있다. 따라서 교육의 기회균등과 기회의 사다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이미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계층이 결정되고, 같은 공립학교라도 부유한 지역의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사회적 상승기회를 선점한다. 그래서 미국의 교육제도는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빈부를 대물림하는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이런 학교의 불평등 재생산은 불평등한 사회를 합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에 서유럽 국가들의 학교는 소수의 종교적 사립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공립학교다. 이들 학교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어느 지역에 있거나 모두 평준화되어 있다. 학교 간에 서열이 없다. 따라서 학생들도 전국적으로 서열화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비해 학력차별이 별로 없고, 특히 독일과 북유럽의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지식만이 아니라 실사구시의 교육을 함으로써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전문 노동력으로 자기를 성취할 수 있는 의욕과 실력을 북돋아 주고 있다. 이렇게 서유럽 나라의 학교 교육은 기회가 평등하고 노동생산성과 선순환되기 때문에 교육이 지속적인 성장과 사회적 평등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서유럽국가들의 복지정책은 사회정책의 한 분야가 아니라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통합적인 사회정책이다. 그래서 이런 서유럽국가들을 복지국가라고 칭하고 미국은 복지국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04/ 평등과 사회통합의 복지국가
우리나라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이에 따른 자선적 복지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 그리고 사회복지의 모순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저임금, 저곡가의 군사독재 개발정책에 의한 민중 착취와 강제된 선성장 후분배 정책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미국보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 심하고 사회복지도 더 열악하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빈부의 원인을 개인에게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자들은 개인의 능력보다 정부정책에 의한 특혜로 더 많은 부를 부당하게 축적하고 있다.
지난 4월 우리나라 중소기업중앙회가 20~60대 1천 명을 대상으로 빈부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 자료를 보면 이런 불의한 현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기업 성장의 원인에 대한 질문에서, 스스로 노력은 3.8%에 불과하고 정부의 대기업 중심 정책이 75.6%, 중소기업의 안정적 협력과 공급이 11%, 국민의 희생과 성원이 9.6% 등으로 나타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균형 있게 발전했는가 하는 질문에서, 매우 그렇다가 2.6%, 약간 그렇다가 16.6%이고, 전혀 아니다가 31%, 별로 아니다가 43.7%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불균형 성장을 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 대기업중심의 정부정책 60.1%,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갑을(甲乙) 문화 31.2%, 중소기업에 대한 낮은 사회인식 5.5%, 중소기업의 역량 부족 3.2%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6월 참여연대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10 제조업에 대한 정부 조세지원액이 총 8조 4천321억 원인데, 이 중 10대 재벌에게 5조 원(59.1%), 대기업에 2.1조 원(25.2%), 중소기업 1.3조 원(15.7%)을 지원했다. 이중 삼성그룹에게만 2.9조 원(33.9%)을 지원했고, 그중에서 삼성전자가 1조 8천442억 원(21.9%)을 지원받았다.
법인세율은 보면 10대 재벌은 15.1%, 삼성그룹과 삼성전자는 11.7%, 11.9%, 중소기업은 22.0%였다. 중소기업이 재벌과 삼성그룹의 두 배에 해당하는 법인세를 내고 있다. 그리고 2006년부터 11년까지 정부가 전기요금을 할인해준 금액이 약 3조 8천억 원인데 그중에서 삼성이 7천500억, 현대자동차 5천200억 원을 할인 혜택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주거와 기업경제 환경면에서 재벌과 부자들은 상하수도와 전기시설, 도로와 가로등 및 가로수, 민생치안 경찰력 등 막대한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복지혜택은 서민과 빈민들에게만 주어지고 부자들과 재벌에게는 전혀 없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복지 병, 도덕적 해이 문제도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 확대 때문이 아니라 편중된 국가정책으로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받고 있는 재벌, 대기업, 부자들에게서 발생한다.
지금 경제민주화 논쟁에서 재벌개혁 문제를 놓고 재벌과 대기업들은 크게 반발하고 이것이 마치 자기들을 죽이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도리어 개혁을 해야 재벌도, 대기업도 산다.
실제로 재벌과 대기업들은 IMF 외환위기 때 ‘5+3 재벌개혁’ 원칙 합의에 따라 개혁하지 않았으면 거의 다 파산했을 것이다. 개혁을 전제로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기 때문에 회생했고 지금의 재벌,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삼성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재벌과 대기업들은 마치 자기들이 노력해서 오늘의 성장을 이룬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정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재벌 죽이기가 아니다. 경제민주화 해야 재벌과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이 살고 지속 성장하며 일자리도 창출된다. 특히 변화된 세계경제와 우리나라 경제 환경에서 재벌과 대기업에서 일자리 확충은 한계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내수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일자리가 없을 뿐 아니라 구매력도 없어지기 때문에 소수 수출기업에 의존하는 현 경제정책을 경제민주화 원칙에 근거해서 새롭게 추진해야 한다.
본래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지만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에는 분명히 사회민주주의/사회국가 요소가 병존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 기본권을 적시한 헌법 31~35조는 자유민주주의 시민권보다 사회민주주의 사회권으로 명시되어 있다.
제31조 교육권은 1항 모든 국민의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2항 중등교육까지 의무교육, 3항 의무교육은 무상, 4항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 보장, 5항 국가의 평생교육 진흥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제32조는 노동권 보장으로, 1항은 근로의 권리로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 임금의 보장, 법률로 최저 임금 보장, 2항은 국민의 근로의무, 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고, 4항 여성 근로의 특별한 보호와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서 차별 금지, 5항은 연소자의 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 6항은 국가유공자, 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에 대한 우선 근로의 기회부여 등을 명기하고 있다.
제33조는 노동 3권과 의료권에 대한 보장으로, 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2항 공무원의 노동 3권 보장, 3항은 의료권으로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34조는 사회복지 보장으로, 1항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2항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 3항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한 국가의 책임, 4항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국가의 의무, 5항 신체장애자 및 질병, 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 6항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제35조는 환경권과 주거권에 대한 조항으로, 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2항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3항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제1공화국 이승만 정권과 이후 군사정권은 헌법에 보장된 사회권으로서의 국민기본권을 모두 자유민주주의적 시민권으로만 해석했다. 이것은 독재체제 원인과 함께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대다수가 미국식 교육을 받은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 결과 그동안 우리 국민은 헌법에 근거한 평등한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도리어 침해당하고 박탈당했다.
특히 제헌 헌법 제84조는 국가가 경제 평등 정책의 의무를 시행하도록 했다.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4.19혁명에 의해 탄생한 장면 민주당 정부는 이 헌법에 기초해서 ‘질서와 발전’이라는 원칙하에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했다. ‘질서와 발전’의 경제원칙은 ‘부정과 부패의 근원을 제거하여 경제 질서를 정상화하는 것이고, 상호 간의 선의와 협조와 관용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인 질서’를 의미했다. 민주당 정권은 특권적 경제체제로 인한 부의 편재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농촌경제와 중소기업 육성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택했다. 농촌경제 안정과 진흥을 위해서는 토지세를 공납제로 개정하고, 농민의 조세부담을 경감하는 조치를 취하고,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 전담 금융기구 설립을 계획했다. 이런 ‘질서와 발전’의 경제원칙이 바로 오늘 우리가 추구하려는 경제민주화다.
특히 민주당 정권은 실업문제 해결, 농촌 소득 증대, 황폐된 국토의 보전 및 사회자본의 증대, 공업화의 터전 마련 등을 목표로 한 국토건설사업을 계획했다. 그런데 이 국토건설사업계획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이것을 단순한 토목공사 차원이 아니라 국민정신 혁명의 두드러진 본보기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하면 된다”, “경제발전의 횃불을 켜자”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자조와 봉사정신’ 아래 인내와 근면으로써 경제건설에 참여하겠다는 국민의 각성과 결의를 다지는 사업이었다. 국토건설사업은 국민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품게 하는 국민의식개혁 운동을 동시에 추진한 것이다. 그래서 국토건설사업 본부장은 장면 국무총리가 직접 담당했고, 기획부장은 사상계 편집장인 장준하, 사회홍보부장은 서울대 이만갑 교수가 담당했다. 그리고 함석헌, 박종홍, 유달영 등이 국토건설요원을 교육했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군부독재는 민주정부를 짓밟고 권력을 찬탈한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민주당 정부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한 정부로 매도했다. 그리고 민주당 정부가 ‘질서와 발전’의 원칙에서 수립하고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독재개발로 변형시키고, ‘자조, 근면, 협동’, ‘하면 된다’는 국민의식개혁운동을 이름만 바꿔서 자기들이 주창한 ‘새마을운동’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자랑한다.
박정희군사정권은 정상적인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경제개발이 아니라 정경유착에 의한 특혜로 소수 재벌을 만들었고, 저임금 저곡가 정책으로 노동자와 농민을 착취했다. 특히 선성장 후분배의 논리로 재벌과 부자들의 배만 계속 불리고 민중의 생존권을 탄압하고 국민 다수를 빈곤에 허덕이게 했다. 이런 군사독재개발이 바로 오늘 재벌의 경제적 만행에 따른 폐해, 사회적 양극화, 빈부의 대물림을 낳게 하고 서민과 빈민을 경제적 고통에서 신음하게 하는 원뿌리인 것이다. 그리고 새마을 운동은 ‘농촌새마을 운동’이 중심이었는데, 농촌새마을 운동이 성공했다면 당시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농촌이 피폐하고 이농이 급증하고 농민들이 천문학적인 빚을 지지 않았을 것이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헌법이 개헌될 때, 제헌헌법 84조가 119조 2항으로 개정되었다. 개정된 헌법 제119조 2항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남용의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 균형 있는 지역경제의 육성, 중소기업의 보호육성, 소비자보호”로 명시되었다. (관련 헌법조항 120, 122, 123, 125, 126, 127조 참조)
또한 헌법 제23조는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고,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평등권을 침해하는 소유권은 불가침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역대정부는 헌법에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무시했고, 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경제민주화 정책을 다시 과거로 회귀시켰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5+3의 재벌개혁과 기업, 금융, 공공, 노사 등의 4대 개혁을 추진했다.
재벌개혁 5+3원칙에서 5는 경영 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업종 전문화(핵심역량 강화), 경영진 책임 강화 등이고, 3은 재벌의 제2금융권 지배 차단, 순환출자 억제를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부당내부거래 및 변칙상속증여 차단 등이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체제가 불의하고 불평등하고, 교육과 제반 사회정책도 미국보다 더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고, 헌법마저도 왜곡되게 적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분야별 ‘선별적 복지’의 지원 확대를 통해 빈곤, 빈민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2010년 이후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보편적 복지’가 복지정책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이제는 2012년 총선을 계기로 ‘보편적 복지’ 정책을 주장했던 야당은 물론 ‘복지 병’ 운운하며 반대했던 정부와 여당도 하루아침에 돌변해서 ‘보편적 복지’를 복지정책의 금과옥조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평등하고 불의한 경제, 정체체제와 빈곤을 양산하는 사회체제 문제를 함께 생각하지 않고 사회정책의 한 분야별 복지로서 빈자와 부자 모두에게 확대 적용되는 ‘보편적 복지’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일시적일 뿐 아니라 빈민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사실 ‘선별적 복지’, ‘보편적 복지’라는 용어는 사회복지학의 전문용어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언어로 사용되는 말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미국의 자선적 복지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갖가지 차별과 사회격리적인 반인권, 반사회적 가치와 방식을 그대로 온존시키고 있는데, ‘보편적 복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소득 지원과 수급 확대만 하는 것은 사회적 불의를 용납하고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재정 악화를 초래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기본권으로서 사회권이 아니라 자선에 의한 ‘보편적 복지’는 국가재정 형편과 집권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축소, 왜곡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2 연구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1년 최상위계층인 소득 5분위(소득 상위 20%)의 소득은 20년 전인 1990년과 비교해 13.7% 증가한 반면, 최하위계층인 소득 1분위(하위 소득 20%)의 소득은 같은 기간 17.1% 하락해 소득불평등 정도가 더 심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도시가구 중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의 소득비율은 1990년 2.07배에서 2011년 2.41배로 증가했다. 소득 하위 10%와 상위 10%의 소득비율은 이보다 더 심한 차이를 보였다. 1990년 3.17배였던 상·하위 10% 계층의 소득격차는 2011년 4.04배로 증가했다. 도시가구의 상대적 빈곤율도 1990년 7.8%에서 2011년 15%로 두 배 정도 늘었다. 이것은 지난해 우리나라 중위소득이 월 약 350만 원이었음을 고려하면 도시가구 10가구 중 1.5가구는 월 소득이 175만 원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자산소득은 근로소득보다 불평등 정도가 더 높아 빈부격차가 더 심화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 자료를 볼 때 이렇게 빈부격차가 점점 더 심화되고 빈곤 계층이 늘어나는데 이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분야별 복지를 확대하는 ‘보편적 복지’로는 양극화 해소도 빈곤문제 해결도 할 수 없다. 특히 현대경제연구원이 8월 19일 발표한 국민의식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 98%는 계층 상승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더욱이 이제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할 20대의 96.3%가 계층 상승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한 국민의 50.1%가 저소득층이라고 말하고 1.9%만이 고소득층이라고 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는 절망의 사회이다. 이런 불의하고 불평등한 절망적 사회현실, 그리고 이런 부익부 빈익빈, 부와 가난을 대물림하는 양극화가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적인 사회정책으로서의 복지가 아니라 분야별 선별적 복지를 확대하는 보편적 복지로 우리 사회를 정의롭고 평등하고 희망이 있는 사회로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미국식 자선적 복지를 확대하는 분야별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서유럽국가들처럼 평등지향의 사회 통합적인 사회정책, 차별과 격리가 아니라 평등과 사회통합을 추진하는 인권, 시민권, 사회권의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오늘의 세계는 그동안 성장과 경쟁만 추구하다가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사회적 빈부격차가 더욱 극대화되고 이에 따른 갈등이 도리어 성장에 저해 요소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협동하는 공공심 없이는 자본주의도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변화된 새로운 경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논쟁을 하고 있는데, 재계는 이것이 사회주의 발상이고 기업을 죽이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재벌과 부자들이 탐욕 경쟁에 매몰되어 있어서 경제민주화가 되어야 인간다운 사회가 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가능하다는 선진국, 세계경제의 경험을 우이독경 식으로 보지도 듣지도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적 평등을 증진시키려면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와 사회 통합적 복지국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재벌과 대기업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재벌과 대기업주가 자본을 가지고 횡포, 불의, 부정을 자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제로섬(Zero-Sum) 게임에서 플러스섬(Plus-Sum)으로 윈윈(Win-Win)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되고, 분배정의를 통해 경제성장도 지속되고, 사회적 평등지수와 행복지수도 높이는 것이 된다.
한편 지금까지는 자본주의에서 물질적 소유(Material Capital)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타인에 대한 관용과 포용, 신뢰와 배려, 소통과 합의 등의 사회적 관계 자본(Social Capital)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커뮤니티, 공동체 지표가 아주 낮고, 집단 간의 관용성은 더욱 낮고, 일과 삶의 조화로 나타나는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은 최하위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IT가 최강국이고 인터넷, SNS 활용도 선두국가이지만 이것들이 커뮤니티 형성에 도움이 되기보다 더 많은 갈등을 촉발시키고, 심지어 범죄행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정이 많고 이웃사촌이었던 우리 사회가 이렇게 비인간화 사회가 된 것에는 역사적,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학생을 서열화시키고 친구도 적이 되는 경쟁 위주의 불평등 교육이 주범이다. 그러므로 평등과 통합의 복지정책은 불평등한 서열경쟁교육을 평등교육으로 혁신하는 교육 정의를 함께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관용과 포용,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협력하는 공공심, 인권과 사회정의, 소통과 합의 그리고 공동체 의식과 평화의 가치를 공유하는 학교 교육이 바로 복지국가의 기본이다.
독일과 북유럽국가들은 이런 학교 교육을 사회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서유럽국가 중에서도 복지와 성장이 선순환하고 있다. 북유럽국가들이 복지국가로 발전하게 된 중요한 기초가 사회적 합의에 의한 ‘연대(Solidarity)’인데, 학교 교육의 핵심적 가치가 바로 연대다.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국가인 이들 나라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것은 바로 복지가 ‘사회적 연대’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가 복지국가가 되려면 복지정책이 교육, 의료, 주거 등에서 불평등이 양산되고,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통합적인 사회정책이 되어야 한다. 사회정책의 한 분야로서 분리된 복지정책을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확대한다고 해서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서유럽국가들처럼 불의한 양극화 체제를 평등한 사회체제로 혁신하고, 이런 사회적 불의가 양산되지 않도록 사회권에 근거해 사회적 평등의 기본이 되는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 정책까지 포함된 통합적인 사회정책으로써 복지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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