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주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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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과 8월에 걸쳐 한달 동안 비행기만 10번을 탔다. 인도를 오고 가는 국제선 4번, 인도 내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국내선 6번. 그 안에서 이동한 거리만 해도 서울과 부산을 여러 차례 왕복했을 거리다. 이번 방문은 한국의 후원자들이 지원하는 수혜자들을 만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듣기 위해 인도의 시골 구석 깊은 곳까지 찾아갔다.
아이들의 삶의 질(well-being)은 어떻게 개선되었는지,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지, 영양이 부족해 깡마른 아이들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현재까지 우리가 성취한 것들이 무엇인지,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룩할 것인지에 대해서 현장의 직원들, 지역 주민들과 이야기하고 고민하기 위해 나는 이역만리 땅, 인도에 발을 내디뎠다.
인도 월드비전 사업장에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방문하면, 그 지역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사업지원국에서 온 나를 환영해준다. 사무실에 앉아 사업을 관리하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환대이기에 그 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그렇게 내가 불편해하자, 눈치 빠른 사업장 직원은 지역 사람들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서 스스로 마련한 행사라고 살짝 귀띔해줬다. 인도아이들을 후원해주는 후원자들이 받아 마땅한 대우지만, 그러지 못하기에 내가 대신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내가 사람들 앞에 서서 한국의 후원자들의 응원의 마음을 말로 전달하고, 앞으로 더 큰 희망에 기대가 크다는 메시지를 전하자 주민들은 큰 박수로 화답해 더욱 잔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잔치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노래다. 한 아이가 사람들 가운데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목소리로 옥구슬 굴리듯 흘려내는 가락들이 그 소녀를 천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나중에 알고 나니 그 소녀는 내가 만나고 싶어했던 시각장애아동 주무리(Jhumuri)였다. 잔치 후에 지역주민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주무리의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부모님과 오빠와 함께 사는 주무리의 집은 방 두 칸의 아담한 집이었다. 16살의 주무리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 아닌 교통사고로 인해 중도장애인이 되었다고 한다. 주무리는 10살되던 해, 집 앞에서 트럭에 치여 시각을 잃게 된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픔을 극복해서인지 그 당시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씩씩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학교 생활에 대해 묻자 주무리는 더욱 밝은 목소리로 너무나 즐겁다고 표현했다. 나는 주무리가 특수학교에 다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사고가 있은 직후에는 특수학교를 몇 년 다녔지만, 그 후에 다시 일반학교로 옮겼다는 것이다.
‘탁탁탁탁’ 점자로 나오는 타자기를 두드려 자신의 이름과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종이를 내게 건네는 주무리에게 나는 어떻게 어려움 없이 일반학교에 다니는지 물어보았다. 주무리는 밝게 웃으며 “그건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저를 응원해주고 다른 아이들과 별 다를 것 없이 똑같이 대해주기 때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주무리는 올해 초에는 지역 대표로 인도의 수도 뭄바이에서 열린 시각장애 학생들의 모임에도 참여했다고 자랑했다. 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과학이고, 나중에 컴퓨터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주무리는 꿈에 대해 얘기할 때 목소리에 힘이 더 실렸다. 삶의 형태는 달라도 삶에 대한 의지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헤어질 때가 되자 주무리는 나에게 다시 자신을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미래의 그곳에서 멋진 모습으로 선생님을 기다리겠어요”라는 아주 멋진 말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주무리를 다시 찾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무리가 밝게 성장하여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멋진 사회 구성원이 되는 꿈을 꾸면서 나는 주무리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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