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거주시설,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본문
우리나라의 근대적 사회복지의 시작은 한국전쟁 이후 고아원으로 대표되는 거주시설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원단체들의 구호사업으로 특징 지워지는 이 시기의 사회복지서비스는 수용보호라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을 통해 정부는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었고, 사회복지법인은 정부의 ‘조치위탁’을 받아 아동·노인·장애인에 대한 시설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회복지서비스의 본격적인 공급자로 나섰다. 지금도 사회복지 거주시설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으며(2004년 942개에서 2009년에는 3천770개로 증대), 우리나라 민간사회복지의 대표적 협의체인 사회복지협의회는 주로 ‘거주시설’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영화 <도가니>는 사회복지 거주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를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했다. 광주 인화원과 인화학교에서 반복적으로 자행되어온 성폭력과 신체적 학대는 결국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으로 귀결되어 공익이사제도의 도입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냈다.
거주시설 서비스의 특성: 집단성, 격리성, 권력 불평등성, 비 선택성
사회복지시설은 이용형태에 따라 24시간 거주와 보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시설’과 낮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용시설’로 구분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거주시설이란 용어는 생활시설을 말한다. 생활시설 대신 거주시설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생활시설이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는 지역사회와의 단절성을 지양하기 위해서다. 생활시설은 그 용어에서부터 ‘시설 내에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짐’을 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거주시설 서비스의 특성은 크게 4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집단성, 격리성, 권력 불평등성, 비선택성 등이다.
먼저 집단성을 살펴보자. 거주시설에서 흔히 일어나는 복지권 침해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집단성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시설 1개소당 평균 거주인 수를 볼 때 장애인시설 및 아동시설은 약 60명, 노인은 약 30명, 노숙인과 정신요양시설은 200명을 넘어간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부분 거주시설은 일과 및 취침 시간, 외출 시간, 외부인 접촉 방법, 용돈관리 방법, 종교 활동 등 다양한 생활에서 기준을 정해두고 있는데, 이는 결국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다양성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
둘째, 우리나라의 시설보호는 집단성과 함께 격리성과 폐쇄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격리성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물리적 격리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격리이다. 물리적 격리는 주거시설이 지역사회와 거리상으로 격리되는 것을 말하며, 사회적 격리는 사회적 자원과의 교류에서 격리되는 현상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시설의 폐쇄성은 사회적 격리에 해당한다.
셋째, 사회복지 거주시설은 돌봄 서비스가 집중적으로 제공되는 장이다. 돌봄은 돌봄을 제공하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권력 불평등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돌봄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므로 돌봄 제공자의 행위에 잠재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넷째, 거주시설의 비선택성 또한 우리나라 거주시설 정책의 큰 특징이다. 거주시설의 비선택성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시설 입소의 자발성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거주시설에 대한 선택권 문제이다. 사실 거주시설 문제의 출발점은 자발적으로 시설에 입소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한 입소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거주시설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한 기초보장수급자이거나 무연고자를 중심으로 입소자가 결정되며, 지방정부의 ‘조치’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스스로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거주시설 서비스의 혁신 방안
① 서비스 신청권을 통한 일괄 조사
현재의 시설 거주인 중 많은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우선적인 욕구가 있으나 타의에 의해 또는 어쩔 수 없는 조건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시설에 입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원하면 서비스 변경신청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시설의 특성상 이들이 자발적으로 서비스 변경신청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이들을 직권조사할 필요가 있다.
② 시설의 소규모화와 지역사회 배치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설이 소규모화 되어 다양한 사회생활을 누릴 수 있는 지역사회에 진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업법 제41조를 개정해 거주시설은 수용인원이 10인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시설은 일반 거주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요양시설은 별도의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기존 대규모 시설들의 혼란이 예상되므로 경과규정을 두어 시설 거주인의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소규모 시설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점은 기존의 대규모 시설의 용지와 건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자산 대체를 통한 대규모 시설의 소규모화 사업’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은 기존의 대규모 시설의 자산으로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일반 주택이나 아파트를 구매해 복수의 ‘그룹 홈’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③ 사례관리 시스템의 체계화
서비스 신청을 하게 되면 욕구사정 단계를 거쳐 보호 대상자별 서비스 계획을 작성하며, 그 서비스 계획에 따라 서비스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는 ‘서비스 신청권 제도’는 그 자체가 바로 사례관리다. 사람의 삶은 어느 한 시기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일생에 걸쳐 발달한다. 생의 삶의 주기에서 이전 단계의 개별적 상황을 확인하고 연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단계마다 존재하는 다양한 욕구들을 포괄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사례관리 기법이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공식적인 사례관리팀이 존재하지 않는다. 민간계약직을 활용한 사례관리 정도가 시행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회복지사업법 제15조에는 ‘사회복지사업에 관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시·군·구 또는 읍·면·동에 복지사무를 전담하는 기구를 따로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즉 사례관리에 필요한 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사항은 시·군·구의 조례로 정하면 된다(제15조 제2항).
이를 토대로 시·군·구에 개별서비스지원팀을 구성하는 방안도 추진할 만하다. 사회복지사와 간호사를 중심으로 필요인력이 배치된 지원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개별서비스지원팀은 노인·장애인·아동 등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이들을 활용하면 서비스 신청이 들어오는 경우 복합적인 욕구 평가를 통해 다양한 개별화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지역의 공공과 민간의 다양한 전달체계를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④ 서비스 제공 과정의 구조화
서비스 신청권의 절차에 따라 더욱 분명한 내용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먼저,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및 변경 신청은 기존의 방법을 따르되, 이들의 접근성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해 방문신청 외의 전화와 홈페이지 상의 신청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사회복지사업법 제33조의2 개정). 그리고 신청단계에서 첨부하게 되어 있는 서류는 신청단계가 아니라 욕구사정 단계에서 제출하도록 해, 신청상의 어려움을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제19조의2 제1항 개정).
복지욕구 조사 단계에서는 범주별 욕구에 체크하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 개인의 삶의 상황, 연령, 성, 가족관계, 지역적 상황, 자조 능력 및 종교와 세계관적 욕구 등을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하고 구체적 양식을 마련해야 한다. 의견청취 단계에서는 지금 재량 규정으로 되어 있는 의견청취를 의무조항으로 바꾸어 다양한 의견을 참작해 서비스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업법 제33조의4 제2항을 의무규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동시에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신청자에게 해당 서비스와 관련된 지역사회의 자원과 운영 현황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비스 및 유형을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가능한 서비스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해야 한다. 물질적 급여와 달리 사회복지서비스는 매우 섬세한 욕구에 반응해야 하므로 서비스의 내용과 종류를 열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제도적으로 확립되기 위해서는 법률에 서비스의 내용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아동, 노인, 장애인, 여성, 이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서비스들을 표준화해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복지서비스 수급권을 인정해야 하는 필요성의 측면에서도 매우 실효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인간 욕구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모든 서비스를 규정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기초자치단체의 개별서비스지원팀이 서비스의 내용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즉,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사회복지서비스는 법률 규정으로 명문화하고, 기타 구체적인 서비스는 개별서비스지원팀에서 심의하여 결정하도록 하면 사회복지서비스의 다양성에 들어맞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회복지사업법 제41조의2 제2항 재가복지서비스 우선의 원칙에 따른다면 거주시설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서비스 우선순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① 서비스 신청자가 자기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 ② 자기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려우면 다른 일반 주택으로 이주하도록 지원한다. ③ 이상의 두 가지 모두 어려우면 다른 일반 가정집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 ④ 이상의 세 가지 모두 어려우면 지역사회의 소규모 거주시설로 이동한다. ⑤ 이상의 네 가지 모두 어려우면 요양시설로 이동한다. ⑤ 이상의 다섯 가지 모두 어려우면 요양병동으로 이동한다.
서비스계획 수립단계에서는 거주시설 서비스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신청자의 욕구와 희망에 맞는 시설을 연결하는 책임을 명문화하고, 계획 확정 단계 이전에 서비스 신청자로 하여금 시험거주 기간을 두도록 해 시설 서비스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 시행 단계에서는 서비스 시행 전에 서비스 운영자와 이용자 간에 서비스의 구체적 내용을 토대로 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서비스 과정을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거주시설 서비스에 관련된 정부의 지침이나 기준에는 시설 내 서비스 과정에 대한 표준체계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시설 내의 서비스 진행 과정은 입소 여부의 적합성을 이용자와 시설이 판단하는 시험거주 과정, 거주를 확정하고 필요한 거주서비스 내용에 대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 서비스에 대한 만족 정도나 퇴소의 필요성 등에 대한 주기적인 서비스 평가 검토 과정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며, 단계별로 이루어져야 하는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 양식들이 공식적인 지침 수준에서 확립되는 것이 필요하다(김용득, 2009).
또한, 시설 거주인들의 유형별(장애인, 아동, 노인, 여성, 노숙인 등)로 거주시설의 서비스 적정 기준을 만들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서비스의 일관성을 유지하게 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사례는 장애인복지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 제60조의3에 의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거주시설 서비스의 적정 기준을 정하고 시설운영자는 이 기준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서비스 시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필요하면 서비스 계획을 변경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에 의한 거주복지 서비스가 미래의 비전이 되어야
거주시설의 문제는 오랫동안 풀지 못해왔다. 우리가 시설 거주인들을 항상 타자화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네가 나라면(If you were me)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고 물어보는 것이 거주시설 서비스의 원칙을 정리하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앞에서 제시한 여러 방안이 너무 혁신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결국 시설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혁신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어머니를 시설에 모셔야 한다면, 나는 원래 살던 지역주민 몇 사람으로 조합을 만들어 그 지역의 어르신들을 그 지역 사람들이 모시게 하는 방법을 택하고 싶다. 마침 2012년 1월 26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어 12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에 따르면, 지역주민들의 권익·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5명 이상의 조합원만 있으면 된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내가 교류하던 사람들로부터 돌봄 서비스를 받는 것이 보편주의 복지국가에 가장 들어맞는 거주복지 서비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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