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과 지역사회 장애인복지정책 수립
본문
I. 지역사회 중심의 장애인복지는 실현되고 있는가?
과거 참여정부는 국가발전의 핵심전략으로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공포하고 이를 적극 추진하였다. 이것은 중앙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함으로써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과거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던 자원을 지방으로 분산해 지역 간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정책 의도를 내포하는 것이었다(박병현, 2006). 이러한 국가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는 사회복지 부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회복지정책 수립의 구심점이 기존의 중앙집권적 체계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동하였고, 이것은 지역상황에 적합한 사회복지정책의 결정과 사회복지서비스의 효율적 전달체계 구축에 긍정적 전환점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부문, 그리고 지역주민의 지역사회복지정책 결정과 그 실천 과정에서 자율성(Autonomy)의 확보가 정책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정부는 상기 지방분권화 전략추진의 하나로 사회복지사업의 지방이양을 위한 법적 기반인 ‘사회복지사업법’의 전면개정을 추진하였는데, 2003년 7월 개정한 사회복지사업법에는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복지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개정 사회복지사업법은 우리나라 지역사회복지의 관념적 틀을 바꾸어 놓은 것으로, 기존의 중앙집권적이고 시설보호 중심의 지역사회복지의 개념을 지방자치와 지역구성원 중심으로 전환한 것이었다(김영모, 2006).
상기 개정 법률의 가장 큰 특징은 민·관이 함께하는 지역 거버넌스(Governance)에 기반을 둔 지역사회복지정책 및 행정의 운영인 동시에, 매 4년 주기로 지방자치단체별 지역사회복지계획을 수립하여 지역의 자율성에 입각한 지역사회복지의 이행에 있다.
특히 장애인복지는 지방분권정책의 추진과 관련한 사회복지사업의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정부로의 이양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한층 높인 사회복지 분야다. 중앙정부의 지방분권정책에 따른 사회복지사업의 지방이양과정에서 보건복지부 국고보조금사업 138개 사업(4조9천368억 원) 중 67개 사업(5천959억 원)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였으며, 그 중 장애인복지사업은 24개 사업(1천760억 원)으로 분야별 사업 중 가장 많은 사업이 지방정부로 이양되었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많은 장애인복지 관련 사업과 높은 수준의 재정 총량의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로의 이양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및 재정적 차원의 역량범위에서는 중앙정부가 의도하는 지역사회(구성원)의 욕구와 자율성에 적합한 지역사회복지 정책과 서비스를 구축·제공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현재 정부는 장애인복지법 제10조 2항에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5년 마다 수립도록 법적 규정을 두고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이 사회복지사업법이 규정하고 있는 지역단위별 지방자치단체의 4년 주기 지역사회복지계획과 지방분권정책으로 말미암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된 다수의 장애인복지사업과 연동하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그리고 정부와 지역사회 간 장애인복지정책의 방향에 대한 실천적 공유가 구체화 될지 우려스럽다. 따라서 더욱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수준의 장애인복지 정책과 실천이 동반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지역사회 단위의 지방자치단체별 장애인복지계획을 수립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것을 위한 중앙정부 차원 법률규정의 마련이 요구된다.* 이처럼 지역사회와 지방정부에서 지역성과 지역욕구에 맞게 도출된 정책계획안이 수립되어 중앙정부의 장애인정책종합계획과 연계되었을 때,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장애인복지정책의 수립과 이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II. 지역사회복지계획의 주요 원칙
사회복지사업법에 나타난 정부의 지역사회복지계획 수립의 방향을 종합해 볼 때, 이들이 내포하고 있는 주요 성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지역주민의 복지욕구 파악의 수행
② 지역주민과 민간부문의 자발적 참여
③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자원의 동원
④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사회복지계획에 대한 중복성 철폐(또는 차별성 확보)
⑤ 지역성의 중시
⑥ 지역사회의 자율성 존중
⑦ 지역사회복지서비스 공급주체의 다원화
이러한 원칙은 효과적인 지역사회복지계획을 위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계획수립의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전술하였듯이 지역사회복지계획의 주요 목적은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복지를 제도화하기 위함이다.
지역사회의 인적·물적 또는 공식적·비공식적 자원 및 시설을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욕구와 필요에 들어맞게끔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자원의 수요와 공급의 문제를 우선 파악해야 하고, 공공 또는 민간부문의 지역사회복지 공급주체로서의 적극적인 참여가 단순히 계획수립의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계획이행의 차원에서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오정수·류진석, 2005/이재완, 2006).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위한 일련의 과정이 지역사회복지계획 수립과정이며, 앞서 제시한 변수들이 각자의 역할수행을 충실히 할 때 효과적인 지역사회복지계획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지역사회복지계획 수립을 위한 주요 원칙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III. 중앙정부 차원의 장애인복지계획 수립은 지역사회복지계획의 원칙에 맞는가?
1) 지방자치단체 재정능력의 다양성
지방분권의 강화와 이에 따른 사무의 지방으로의 이양은 지방자치단체의 건전한 재정여건에 기반을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2.3%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지역별 편차는 상당히 크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지원을 포함해야 겨우 재정자주도가 재정자립도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으며, 서울특별시만이 재정자립도와 재정자주도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한편, 지방자치단체별 사회복지예산비율 또한 지역 간 편차가 크며 전국평균 대비 비율 차이도 격차가 크고 그 비율 또한 다양하다.
즉, 지역사회의 다양한 경제적 여건과 지방자치단체의 취약한 자체수입 구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간 경제적 격차는 심화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른 지역별 사회복지 투입예산의 비율도 다양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 지역사회의 상황에 적합한 사회복지 제도 운용이 필요하며 이에 순응한 대책이 요구된다.
2) 장애인복지 재정과 환경의 지역 간 상이성
지방재정의 장애인 관련 예산과 지역별 등록장애인구의 수 그리고 지역별 장애시설 수 등을 분석하였을 때, 지역별 재정의 절대 총액과 대상인구 및 인프라의 수는 다양하고 다르다. 지방자치단체별 예산총액 대비 장애인예산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을 보면 지방자치단체별로 하위 1.88%(인천광역시)에서 상위 3.67%(대전광역시)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중 장애인예산 비율이 평균수준인 서울특별시(2.32%)와 경기도(2.02%)의 예산절대총액은 장애인예산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전광역시(3.67%)와 광주광역시(3.30%)의 예산절대총액의 2~5배 수준 높다.
반면, 지역별 등록장애인구 수의 차이가 큰 관계로 장애인 1인당 예산분포는 지역별 장애인예산총액이나 장애인예산비율과 큰 상관관계 없이 상위 17억5천957만3천 원(제주특별도)에서 하위 5억5천694만1천 원(경기도)까지 그 폭이 상당히 넓다. 이것은 지방자치단체별 등록장애인 수에 기인한 것인데, 지역별로 지역성의 차이가 다르고 장애인시설과 관련 인프라가 다양하다는 전제하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총예산, 장애인 관련 예산, 등록장애인 수 그리고 장애시설 수와 인프라 현황 간 큰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지역상황에 적합한 장애인복지정책의 수립이 가능한지 의심스럽다. 즉, 지역적 상황이나 지역사회복지 정책수립과 이행 과정에서 지역사회복지의 핵심인 지역성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IV. 지역사회로부터 중앙정부로 전달되는 정책의 소통이 필요하다!
지방분권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기 결정권과 자기 책임하에 자율적으로 의사결정권을 행사한다는 행정적 그리고 경제적 분권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나 정책 수행자들은 지역사회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이를 수행하기 위한 정책과 행정 조정능력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방분권이라는 정책적 취지와 지역성과 지역주민의 욕구에 입각한 지역사회복지계획이라는 정책목표와는 다르게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한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은 중앙정부 차원의 거시적 관점에서 수립되는 한계가 있다. 즉, 지역사회의 지역성에 입각한 정책계획수립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분권 이후 정부가 추진한 수많은 장애인복지사업의 지방이양은 지방재정의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운영의 어려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로 승화되었다. 지방분권을 통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및 행정적 자율성은 지방자치단체별 지방재정의 상이성과 심각한 격차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 정부가 지방분권을 위해 내세웠던 정책의 전략적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역 간 장애인복지 인프라의 격차와 이를 지원하는 지방재정체계의 상이성은 지역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욕구를 더욱 다양하게 만드는 이유를 제공한다. 따라서 현재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해 추진되고 있는 중앙정부 차원의 장애인정책종합계획으로는 지역사회복지의 핵심인 개별 지역사회의 지역성에 충실한 정책개발과 중장기 계획수립이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필자는 정부가 추구하는 지방분권전략과 사회복지사업법이 추구하는 지역사회복지(계획)의 핵심목표인 민·관의 협력체계 구축을 통한 거버넌스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장애인정책종합계획과 지방정부의 가칭 ‘지역장애인복지계획’이 동반 수립·이행되어야 개별 지역사회의 환경과 욕구에 들어맞는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장애인복지정책의 실천이 기대될 것으로 판단된다. 즉, 중앙으로부터 지역사회로 내려가는 정책의 흐름이 아닌 지역사회로부터 중앙으로 전달되는 정책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장애인복지법에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수립에 동반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장애인복지계획을 수립하게 하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