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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애인정책과 당사자주의의 실체는 무엇인가

[기고] 진정한 장애인 당사자주의운동의 의미

본문

   
▲ 권인희 서강대 법학 박사, 전 시각장애인협회 회장
법치국가의 이념은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자유민주주의로 국가의 간섭을 가급적 배제함으로써 시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자유민주주 이념의 법치국가가 바로 미국이며, 이에 영향을 받은 나라가 일본과 우리나라이다.

반면에 사회국가이념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사회적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로, 사회적 평등을 원칙으로 생계보장, 완전고용, 노동력 보존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요구하는 체제이다. 그 대표적인 사회적 법치국가가 독일이고, 서유럽국가 대다수가 이에 해당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무능력과 태만으로 인식하고 그 책임을 철저히 개인에게 귀속시킨다. 따라서 빈곤문제 해결을 빈민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선별적 복지정책으로 추진함으로써, 복지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최소화한다.

복지를 보편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모든 국민의 개인적 소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사고에 머무른 결과, 열등처우의 원칙에 따라 빈곤선에서 생존을 유지하는 시혜적 자선사업 복지정책에 그친다. 이는 인도주의라는 도덕적 가치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사회 구조적, 사회정의 차원에서 빈곤 문제를 인식하고 빈민을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도록 출구를 마련하거나, 빈곤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여 빈곤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그래서 빈민을 더욱 양산하고, 이들을 계속 빈곤층에 머무르게 하여, 양극화 현상으로 사회적 갈등이 조장되고, 결국 국가복지재정도 ‘소비적 낭비’에 머무르는 불의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손짓한다.

반면에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빈곤의 원인을 사회 구조적, 사회정의 차원에서 인식하고, 빈곤은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잘못된 국가정책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빈곤문제 해결의 우선적 책임은 국가와 사회에 있다고 사고한다.

사회민주주의국가는 사회정책 자체가 복지사회와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므로, 사회정책이 곧 복지정책이다. 그래서 빈민과 사회적 최약자에 대한 복지를 사회정책의 한 분야로 보는 미국, 일본, 한국과는 달리, 서유럽에는 별도의 ‘복지정책’(Welfare Policy)이나 사회복지학(Welfare Science)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장애인 정책에서도 특별한 요구(Special Needs)만이 존재할 뿐, 특수교육(Special Education)이란 말도 없다. 그것은 서유럽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정책이 시혜적인 자선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인권, 시민권, 사회권 자체이기 때문이다.

즉, 서유럽국가들은 선별적인 열등처우의 최소생계 보장적 사후복지가 아니라 사회권에 근거하여 모든 국민이 평등한 사회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거, 교육, 의료 등을 국가가 보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의 선별적 복지정책을 계수해 온 까닭에, 장애인 정책이 시혜적 차원의 사고에 고정되어 사회복지 서비스 개념으로 흘렀다. 장애인 활동도 장애당사자가 아닌 시혜자로서의 우월적 지위에 있는 민간 사회사업가(Social Worker)의 주도로 출발했다.

국가는 장애당사자의 의사를 살피기보다는 시설장 중심, 또는 소위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한다는 사업형 전문가집단의 의사를 더 존중하였기 때문에, 장애당사자가 장애인의 권리보장이란 말은 거론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시각장애인만은 안마사라는 유보직역을 고수할 목적으로 조직적 단체 활동을 통하여 줄곧 국가를 상대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처럼 국가는 장애인의 문제마저도 선별적 복지정책으로 추진함으로써, 비즈니스형 비장애인 전문가집단에 의한 시혜적 차원의 복지서비스 전달체계를 의미하는 사회복지 개념이 장애인의 생존권보장을 위한 국가정책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래서 권리주체는 오직 자선의 대상이나 시혜적 대상으로만 남게 되고, 비장애인 전문가 집단의 직업이나 사업 영역만이 확대되어, 결국, 주객이 전도되는 시대착오적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장애 감수성이 없는 어용 전문가 집단이 장애인정책의 산실 역할을 하였던 결과, 장애인정책에서 장애당사자의 의사가 무시되었고, 소위 ‘장애인을 위하여 일한다는 명분을 앞세운 전문가집단’의 사업영역 확장이나 세력 확대에 편중됨으로써, 장애인정책 목표의 본질이 오도되었다.

그런가 하면 헌법 제34조 제5항에 따라 생활 능력이 없는 장애인의 생존권보장을 위하여 국민의 혈세로 편성된 예산 집행에서도, 간접비용의 과다발생으로 말미암은 고비용 저효율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이 탓에 장애인 당사자의 불만지수나 고통지수가 높아짐에 따라 장애인 단체가 중심이 되어 ‘장애인당사자주의’를 싹 틔우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출발한 장애인 운동에서의 당사자주의는 보편적 당사자주의와 선별적 당사자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장애인의 정책 수립결정 과정과 평가에서 장애인이 적극적 주체가 되어야 함을 전제로 삼는 점에서는 양자가 동일하다.

여기서 보편적 당사자주의는 실질주의적 당사자주의라고도 하며, 그 공동체 구성에서 구성원의 생물학적 장애 유무를 구분 짓지 않는다. 장애 대중과 교류하고 장애에 대한 체험을 통하여 비장애인에게 설득력이 있을 수 있는 감수성과 주체적 의식을 요구하고, 자기결정(Self Determination)과 소비자 중심주의(Consumerism)를 기본 이념으로 한다.

그 목표 지향점은 개방적 사회 연대적 운동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사회세력과 연대하는 노력으로, 직접적 장애문제 이외에도 간접적 장애문제 예컨대 여성, 인종을 비롯한 반차별운동, 환경운동, 통일운동, 신사회운동 등 사회 공통 문제 해결 운동에 연대하는 것이다.

그 운동방식은 장애통합 운동을 채택하고 있다. 즉 아직 미미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장애문제가 내면적으로 더욱 세분됨에 따라, 각 장애유형과 장애정도(중증·경증), 중앙과 지방정부의 장애인문제로 블록화되어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임으로 말미암아 장애인이 사회적 불평불만 세력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기적·경쟁적 운동을 배제하고, 토의를 통해 우선순위를 가리고 장애계의 역량이 집결되는 선택과 집중을 추구하는 내부적 통합운동 방식을 취한다.

반면에 선별적 당사자주의는 형식주의적 당사자주의라고도 하며, 그 운동방식과 목표지향에서는 전자의 경우와 같을 수 있으나, 그 공동체 구성에서 생물학적 장애 유무에 따라 배타적으로 선별하여 구분 짓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전자든 후자든 얼마만큼 진정한 공동체 의식으로 장애계 전체에 대한 합리적 공통분모를 추구하여, 사실상의 당사자주의 실현의지가 있느냐에 관건이 달린 것이지, 공동체 구성 형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장애인 단체도 장애당사자로부터 역할에 따른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전·후자 모두 단체장이 진정성이 없다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당사자주의가 실현되기 어렵다. 혹여 장애인이라는 신분을 앞세운 지나친 주장이 자기 합리화 또는 이기적인 발상으로 오인되거나 장애인만의 폐쇄적 운동으로 고립을 자초할 위험도 있다.

단체의 지도자에게는 개개 구성원의 당사자주의 실현에 앞장서는 자기희생이 요청되는 것이지, 그릇됨 없는 모든 전권을 가진 면죄부가 용인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운동에서 상대는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에게 여성의 평등권과 동등한 참여를 설득하듯이, 장애인운동도 결국은 비장애인이라는 상대가 있기에 존재하는 이유인즉슨, 장애인의 평등 실현과 완전한 참여를 비장애인에게 설득하려면, 장애인만의 주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장애인을 사업수단으로 활용하는 사회사업가 또는 생계수단으로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한다는 비장애인 이익주체까지 당사자조직구성원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장애당사자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전제 조건에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뜻을 함께하는 순수한 비장애인도 폭넓게 받아들여 함께하는 다소 유연한 개방적인 운동이 진정한 당사자주의운동이 아닌가 한다.

 

작성자권인희 서강대 법학 박사, 전 시각장애인협회 회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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