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삶의 질 높일 수 있는 법안 마련돼야
본문
1. 발달장애란?
▲ 김기룡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 |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특성 탓에 자기관리, 수용 및 표현언어, 학습, 이동, 자기결정, 자립생활능력, 경제적 자급자족 등에 어려움을 보이고 있다. 이를 고려하여 미국의 발달장애 지원 및 권리장전법에서는 발달장애를 만 22세 이전에 시작하여 주요 생활 활동의 3가지 혹은 그 이상 영역에서 상당한 기능적 제한성을 가져오는 정신적 혹은 신체적 손상으로 무기한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 중도장애로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정신지체(지적장애), 발달장애(자폐성장애), 지적장애를 동반한 뇌병변장애, 중도중복장애 등이 발달장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법」에 제시된 발달장애의 정의에서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만을 발달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2. 발달장애가 가장 중증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중증의 만성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전체 등록장애인 중 지체장애는 1급 장애의 비율이 3.4%이지만, 지적장애는 24.4%, 자폐성장애는 36.4%에 달하고 있고(보건복지부, 2010), 수정바델지수에 따른 장애 정도를 분석한 통계에서는 전체 장애인의 4.5%가 중도장애이지만, 자폐성장애는 전체의 36%가 중도장애로 분류되고 있다(Ganger 외, 1979).
또한, 발달장애인 중 지적장애인의 17.9%, 자폐성장애인의 9%만이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할 수 있음에 반해 지체장애인은 77.8%, 시각장애인은 76%, 청각장애인은 73.9%로 조사됐다. 게다가 지적장애인의 48.1%, 자폐성장애인의 19.2%만이 매월 소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지체장애인의 83.8%, 시각장애인의 82.3%, 청각장애인의 86.9%가 매월 소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변용찬 외, 2008).
또한, 발달장애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비율은 1%도 안 되지만 지체장애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비율은 50%가 넘는다(교육과학기술부, 2010). 그리고 발달장애 학생들의 80%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지체장애, 시각장애, 다른 건강장애학생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으며, 발달장애학생들의 99%가 재활치료를 요구하고 있으나 전체 장애학생들의 40%만이 재활치료를 요구하고 있다(전국장애인부모연대, 2009). 그리고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중 발달장애인의 비율이 60%를 넘지만, 등록장애인 중 발달장애인은 10%도 되지 않는다.
이상의 통계 수치들을 고려해 볼 때, 발달장애는 다른 어떠한 장애보다 일상생활, 교육, 경제활동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지역사회 통합에도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한편 발달장애인은 자기결정·자기선택·자기권리주장이나 자기보호가 심각할 정도로 어려워, 학대·무시·성적 착취·경제적 착취·법적 권리 침해·인권침해 등에 있어서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 등 선진국들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그들의 추가적인 권리를 선언하고, 그러한 권리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미국은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을 1963년에 제정하였고, 스웨덴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별서비스법’을 1986년에 제정하였으며, 일본은 1960년에 ‘지적장애인복지법’, 2004년에 ‘발달장애인지원법’을 제정하였고, 호주의 빅토리아주는 지난 1986년에 ‘지적장애인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 어디에도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장과 관련된 구체적인 규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여타의 법률에서도 발달장애인들의 권리 보장에 관한 규정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문제는 언제나 전체 장애인의 문제를 중심으로 접근했었고,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욕구를 고려하지 못한 정책들이 발달장애인들에게 강요됐던 것이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지난해 12월2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연 발달장애인법 도입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참가 장애인부모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사진제공=비마이너) |
3. 발달장애인법 제정의 필요성
미국의 연방법 등에서 발달장애인은 다른 신체적 장애인처럼 특정 신체 기능의 장애와는 달리 뇌 기능의 결함이 정서 및 적응 행동에 영향을 미쳐 일상 활동 및 사회참여에 제한을 받는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정의되고 있다.
오로지 신체적 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발달장애로 보지 않는다. 적어도 발달장애인 문제를 오랫동안 다루어 왔던 수많은 사람은 발달장애와 신체장애는 서로 다른데, ‘장애’라는 타이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애인 복지 체계에 포함된 것이지 실제로 이들 장애에 대해서는 각각의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의 장애인복지는 모든 장애유형을 포괄하고 있으나 신체적 장애인들이 주축이 되어 장애인복지 서비스 전달체계와 서비스 내용을 마련해 왔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발달장애인들은 이러한 환경에 강인한 적응력을 길러야만 했다.
이제는 이러한 신체적 장애인 중심의 장애인복지 환경 내에서 발달장애인들을 일부러 적응시켜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고려하여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서비스 모형을 제안하여, 주변의 환경이 발달장애인에게 적응하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변의 환경을 고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장애인복지 전달체계와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전달체계나 전문 인력 등을 구축하고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발달장애인의 서비스는 신체적 장애인과는 다른 서비스가 기획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전달체계 및 담당인력도 달라야 한다.
즉, 발달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뒷받침된 상호의존형(Interdependence) 모델을 기반으로 한 인간 중심형 서비스가 되어야 하는데, 신체적 장애인을 위한 기존의 장애인 복지 서비스와 같이 연금(소득보장)과 활동보조인만 지원해서는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없다.
발달장애인에게는 서비스와 사람이 통합된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하고, 서비스가 제공될 때 다른 서비스도 함께 제공되어야 하며, 서비스 조정자와 발달장애인의 끊임없는 대화와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직업과 소득보장, 거주와 돌봄, 건강과 안전, 교육과 훈련, 여가와 문화 및 사회참여와 권리옹호 등 전반적인 복지 지원 체계를 보장하고, 자신의 삶을 주도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발달장애인 부모 등 권익 옹호 단체, 발달장애인 관련 전문가 및 장애·인권·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발달장애인 지원을 위한 입법 활동을 추진하고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부모회,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등 발달장애 관련 단체들은 지난해 12월,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추련)’를 결성하였다.
발추련에서는 2012년 한 해를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해 법안을 완성하고, 입법의 필요성을 알려내는 다양한 여론 형성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발달장애인법안을 성안하기 위하여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욕구와 특성을 고려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를 시행하여, 최적의 서비스 전달 모형과 이에 근거한 법률 조항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한 1만인 선안단 조직,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한 각종 토론회, 공청회, 순회교육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해 12월2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의 복지 지원을 위한 '발달장애인법' 도입을 요구했다. (※사진제공=비마이너) |
4. 발달장애인법안의 주요 내용
발달장애인법안은 아직 논의하고 있으나,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그동안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마련될 발달장애인법안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원칙과 내용이 포함될 필요가 있다.
① 분절적 서비스가 아닌 통합적 서비스 지원 체계 마련
기존의 발달장애 관련 서비스 지원을 서비스 신청에서부터 서비스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의 창구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전달체계를 마련될 필요가 있다.
② 발달장애인의 자유권 및 사회권에 대한 구체적 명시
외국 관련 법령 및 국제조약을 바탕으로 발달장애인의 자유권과 사회권을 재해석하여 법률안에 구체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다. 자유권 영역의 경우, 발달장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불필요한 신체적 제한이나 고립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이 있고, 사회권 영역의 경우, 발달장애인의 의료, 발달재활(치료), 고용, 소득보장, 평생교육, 여가, 체육, 문화, 의사소통 등이 있는데, 이러한 여러 권리를 법률안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③ 법률의 실효성 담보를 위한 재원 마련 근거 제시
기존 장애인 관련 법령은 재원이 확보되지 않아 시행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발달장애인법은 새로운 서비스 및 전달체계를 골자로 하고 있으므로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미국의 재원 마련 근거 조항을 발달장애인법에 포함한 사례, 한국의 농특세, 여성발전기금 등의 특별기금 조성 사례 등을 참고하여, 발달장애인법안에 재원 확보 방안이 구체적으로 명시될 필요가 있다.
④ 자립생활 모델이 아닌 상호의존 모델 구현
신체적 장애인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 자립생활 모델이 복지 자원을 서비스 공급자가 서비스 수요자에게 일방적으로 투입했다면, 발달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복지 자원과 사람이 함께 제공되고, 서비스 공급자와 서비스 수요자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사회적 관계 형성을 촉진하여 지역사회 통합을 유도)하는 형태인 상호의존 모델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⑤ 발달장애인의 자기 주도적 서비스 지원 환경 마련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서비스와 지원을 선택하고 필요한 사람(서비스 제공자)을 채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발달장애인의 자기 주도적 서비스(Self-Directed Service)라고 할 수 있는데, 발달장애인이 필요한 지원을 통해 삶을 계획하고(Freedom), 발달장애인에게 주어진 공적 서비스 비용(금액)을 조정(통제)하며(Authority),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자원과 인력을 적절히 배치하여 지역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하고(Support), 지역사회에서 가치 있는 역할을 담당하고 공적인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며(Responsibility),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기권리옹호의 중요성을 확인(Confirmation)하게 하는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한다.
⑥ 발달장애인의 단점(약점)보다는 장점(강점)을 기반으로 한 진단·평가 및 지원 시스템 마련
기존의 발달장애 서비스는 문제 자체 및 문제의 원인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이나 발전보다는 원인을 찾는 데만 집착하였고(전통적인 행동수정, 가족치료, 상담), 이 때문에 발달장애인의 부정적인 자아정체성 형성, 학습된 무기력 강화 및 심리·정서적 위축 현상을 심화시켜왔다. 발달장애인은 특정 영역에서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있으나 모든 영역에서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만 9세의 발달장애아동은 또래 일반아동보다 논리·수학적 지능점수는 낮지만, 대인관계 또는 자연친화 지능점수는 더 높을 수 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발달장애인이 가진 강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비스 지원에 대한 판정이 이루어져야 하고,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의 발달장애인의 참여를 인정하여야 하며, 발달장애인의 자기 주도적 서비스가 구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⑦ 연구와 근거에 기반을 둔 서비스 지원
발달장애인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재활치료 및 활동 프로그램)이 사용되고 있으나 각 프로그램에 대한 절차와 방법이 체계적이지 않거나 검증되지 않은 도구, 인력, 매뉴얼 등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프로그램의 효과를 입증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을 일반화시킬 수 없다. 미국의 IDIEA(장애인교육향상법) 등에서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연구에 기반을 두어 사용 근거가 확인되고 그 효과가 입증된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행동수정, 재활치료 등 발달장애인의 심신을 지원하기 위해 활용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더욱 강화된 조건을 제시하여 무분별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말미암은 폐해를 예방하고, 실제 효과가 입증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⑧ 최소 제한 환경 원리에 입각한 통합 지향 서비스 스펙트럼 구축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학생에 대한 특수교육기관 배치 원리는 최소 제한 환경(Least Restrictive Environment, LRE) 원리를 적용하여 일반학급에 우선 배치하고, 일반학급에서 적응이 어려우면 특수학급에 배치하고, 특수학급에서 적응이 어려우면 특수학교에 배치하는 등 가장 제한되지 않은 환경(통합 환경)에서 가장 제한된 환경(분리 환경)으로 배치를 유도하고 있다. LRE 원리를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서비스에도 벤치마킹하여 적용하면,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서비스를 통합을 우선으로 하여 지원하고, 통합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차선책으로 일정 수준의 제한된(분리된) 환경과 서비스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서비스 지원의 원칙을 수립해 볼 수 있다.
⑨ 발달장애인의 인권침해 및 권리구제 시스템 구축
기존의 장애인을 위한 인권침해 및 권리구제 지원 환경이 있음에도 발달장애인의 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하면 의사소통 문제, 자기결정권 인정 문제 등 때문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2차 피해가 발생하거나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는 사전 예방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고, 발달장애인 스스로 자기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대처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기존의 인권침해 및 권리구제 지원 체계를 보완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제안된 내용을 바탕으로 발달장애인법안은 법률 제정 취지에 맞게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잘 담아낸 법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심리적 역량, 적응행동기술을 드높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법률안의 내용이 구성되어야 하고,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최우선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