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학은 장애인을 필요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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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얀 목련이 피듯이 장애인의 대학 입학 소식은 들려오고
필자가 일하고 있는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는 국내 유일의 장애인 대학입시전문 지원기관이다. 일반적인 입시 상담 기관과의 차이는 우리 단체는 따로 상담 등으로 수익사업을 하지는 않고 장애인의 회원가입으로 회비를 받는 것뿐이다. 그렇게 장애인의 대학입시 상담을 진행한지 아직 20년을 채우고 있지는 못하지만, 재작년부터 장애인의 대학 진학과 관련해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첫 번째 변화가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대학 입학 상담이 전체 장애인 학생의 상담에서 거의 6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함께걸음> 2010년 3월호 ‘지적·자폐성 장애인 대학교육에 대한 제언(提言)’ 참조) 두 번째 변화는 입시 상담 준비가 상당히 빨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수능 시험 한두 달을 앞두고 주로 고3 수험생들 중심으로 신청이 집중되던 것이 빠르면 초등학교 6학년부터 늦으면 고2 학생들까지 부모님과 사무실에 일찍 찾아오기 시작했다. 세 번째 변화는 대학입시나 취업에 관해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는 장애인 선배들이 스스로 후배들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 한국농아대학생연합회(club. cyworld. com /KADUS) 13대 ‘예섬’ 첫 행사 <예섬, 시작에 서다>)
이는 95학년도에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제도가 시행된 지 18년 만에야 장애인 대학입시가 ‘입시답게’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 결과로 알게 모르게 입학하던 장애인 신입생들도, 하는 듯 안 하듯 시행하던 학교들도 이제는 장애인 학생들을 전체 신입생 대표로 세우기 시작했다. (기사 참조: 장애 딛고 신입생 대표로 ‘입학선서’-2012. 03. 20 연합뉴스) 그것은 기존의 장애인 신입생을 다룬 과거 기사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어느 순간에선가, 어디서부터 장애인 학생들의 입학을 부담스러워하고 쉬쉬하던 대학들이, 마치 엄청난 양보를 하고 장애인 학생을 맞이하던 대학들이 장애인 입학을 생색내고 서로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 어느 지점은 바로 언론들이 잘 나가고 성공하는 장애인 졸업생들을 조명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서울대를 졸업한 시각장애인 최영씨가 최종적으로 판사에 임명된 바로 그 시점 말이다. 능력을 갖춘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파급 효과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수혜자가 등장한 것이고 95년도에 시작한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의 본질적인 목적에 들어맞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바로 장애인에게 대학의 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들이 소득보장을 확신할 수 있는 전문 직종에 진출하거나 교수, 박사와 같은 학문 후속세대로 진출하는 목적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발전과 사회변화가 ‘서울대’라는 학벌과 ‘판사’라는 권력으로 촉발되고 증폭되었다는 씁쓸한 진실도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발달장애인 입시생들은 대학 홈페이지에 합격 게시되어도 실수였다는 말 한마디에 그 합격을 번복당하는 작금의 3월에 절망적인 진실과 함께.
이제 대학의 과거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95학년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장애인은 대학의 자랑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은 장애인 학생이 대학의 자랑이 되었다. 과거 장애인 학생에 대한 지원은 소수를 위한 고비용 과잉투자였으나 지금은 반드시 지켜야 할 준법사항이 되었고 평가 항목이 되었다. 마치 늘 그러했듯이, 그래 왔던 것처럼.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장애인의 교수임용에 관한 판에 박힌 보도자료용 신문기사를 보거나 이 시기에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나오는 장애인 대학의 입학 기사나 시설 투자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 서글프다.
과거 대학 입학을 거부당했던 수많은 장애인, 대학교에 다니다가 추락사하기까지 한 강남대 백원욱씨, 교재가 없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연세대 시각장애인 96학번 학생의 억울함과 차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각 학교에 장애인학생지원센터들과 장애인대학생들은 이들의 눈물과 희생 속에 자신들이 있음을 과연 얼마나 기억하고 기념해 줄 것인가?
지금 배출되고 있는 장애인 판사와 교수들을 보면서 멀지 않았던 과거에 대학의 교수, 엘리트들이 행했던 장애인 거부와 차별에 대해 얼마나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지 이제는 용기 있게 묻고자 한다.
이제 우리 대학들은 스스로 인정하고 말해야 한다. 과거 장애인에 대해 잘못된 논리와 차별을 관행적으로 했었다고 떠들 필요는 없지만 조용하고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적어도 그런 과거를 발 딛고 있는 장애인학생자원센터와 장애인대학생들은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의 실수와 무식함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늘 장애에 대한 자신들의 무능력과 인식의 한계에 매일매일 도전해야 한다.
장애인대학생의 천국이라고 미국의 대학으로 탐방 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미국 금발의 현지 장애인대학생이 장애인 학생의 지원이 잘되어 있다고 교환학생을 신청하는 이 시대에 이미 대학을 졸업한 장애인들도, 대학을 다니고 있는 장애인대학생들도, 그들 덕에 일하고 있는 실무자들도 과거를 돌아보고 연구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 그들의 투자나 가치관의 진정성이 더욱 칭찬받아 빛이 나게 될 것이다.
다양성과 장애의 공존이 대학 발전의 답이다…장애인들이 대학의 무능력함을 증명하지 말기를
이제 인구경제학적으로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싫든 좋든 장애인의 교육 능력을 배양하지 않으면 발전과 존립에 의문과 위기를 제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적·자폐성장애인, 정신장애인에 대해서도 더는 그들에게 대학교육이 가당키나 할 것이냐는 질문과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대학 스스로 지적·자폐성장애인,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그들을 교육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대학의 이런 자문이 대학의 발전 능력과 존립의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구성원 모두 IQ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비발달적’인 멍청한 일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2002년 미국 애틀랜틱 대학을 최우등생으로 조기 졸업한 IQ 43 발달장애인(우리나라의 아이큐 기준으로 볼 때) 수학자 라이언 카샤에서 보듯이.
그는 졸업식에서 자신의 소감을 밝히길 “저는 단지 바보가 아니길 증명하고 싶었다”지만 그가 증명한 것은 오히려 아이큐로 그를 판단한 사회와 사람들이 후진적이고 지진적인 비발달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진정한 공생과 공감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장애인의 패러다임과 사고방식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대학은 장애인이 필요하다.
개미와 진딧물도 하는 공존과 공생을 고도의 고등생물이 못한다면, 그 생물이 받는 고등교육 기관이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 무거운 회백색 뇌세포들이 부끄럽지 아니하겠는가? 비발달인들이여, 발달하지 못한 이들이여.
※ 본 원고의 제목은 동물학자로 유명한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의 ‘세상은 왜 자폐를 필요로 하는가?’의 TED 특강 제목을 빌린 것으로, 2012학년도 서울대 장애인 신입생을 상대로 한 강의 제목이기도 하다. (www. ted. com/talks/view/lang/kor/id/7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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