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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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무심코 뒤적거리던 잡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내용만큼은 입때껏 확연하다. 험준하기로 유명한 로키산맥의 해발 3,000 미터 지대의 수목한계선에서 예의 나무는 생존한단다.
식물이 성장할 수 없는 한계지대…. 어마어마한 폭풍과 혹한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흡사 무릎을 꿇은 것처럼 구부정하게 옆으로 자란다는 그 나무를 나는 그려보았다. 맹렬한 추위를 견디는 구푸린 설산(雪山)의 나무…. 그곳 고지대의 로키산맥에도 달빛은 그윽하리라.
나는 그때 ‘무릎 꿇은 나무’를 그려보다가 문득 ‘사라사테’를 떠올렸다. 이내 ‘안달루시아의 로망스’를 감상하면서 그가 연주한 명품 바이올린을 생각했다. 현란한 기교와 강렬한 열정을 음악 속에 담으려고 그 많은 바이올린 소품을 작곡했던 뛰어난 거장. 아름답고 섬세한 사라사테의 선율이었다. 거장의 어깨에서 오롯했을 바이올린이 못내 처연해졌다. 그 심오한 음색의 근원이 바로 무릎 꿇은 나무려니….
한순간이었다,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은.
잔잔한 기쁨과 다소 들뜬 듯한 분위기, 감미롭고도 애틋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화사한 시상식장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잠깐이 아득했다. 양복 차림의 수여자가, 불현 내 휠체어 앞에서 탁, 무릎을 꿇지 않겠는가?
나는 질겁하고 말았다. 순간, 머리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몸 둘 바를 모르던 나는 아앗, 낮게 신음소리를 냈던 것 같다. 초경량 휠체어의 그 작은 키를 맞추기 위해 그는 더럭, 자신의 키를 낮춘 것이었다. 수상자인 나는 얼떨결에 떠밀려 그에게서 상패와 꽃다발을 받았다. 봄날의 나비처럼 식장을 오르내리던 바이올린 선율이 갑자기 벌떼가 날아들듯 내 귀에서 윙윙거렸다.
대단한 충격이었다. K시를 대표하는 그가 무릎을 꿇고 상을 주다니! 시장이라는 직위를 들먹거리자는 게 결코 아니다. 사람의 외양을 변별하는 조건이나 기준이 무에 그리 대수이랴! 다만, 무릎을 꿇는 그의 행위에서 나는 고도(高度)한 성숙과 겸허를 대면한 것이었다.
사회자가 수상내용을 대독할 때까지도 휠체어의 나는 수여자를 올려다보았는데 그가 무릎을 꿇는 순간 ‘우리’는 동등한 눈높이로 마주볼 수 있었다. 우리… 우리는… 말이다. 그때, 왜 내 머릿속에서는 ‘우리’라는 말이 떠올랐을까? 축하합니다, 라고. 그의 선한 눈매가 진심을 담고 있었다.
나는 콧등이 시큰거렸고 한편으로 한없이 민망스러웠으며 그리고 또 어떤 희망 같은 걸 엿보기도 했다. ‘사람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구나.’ 수여자로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원숙함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지향하는 그의 오래된 습성의 체화이리라.
“뽑아주신 단편 ‘와륵(瓦礫)’은 깨진 기와 조각이라는 뜻으로 하찮은 물건이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지요. 우리는 모두 ‘깨진 기왓장’과도 같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볼품없는 사람입니다. 깨진 기와 조각처럼 온전치 못한 세상과 인생을 게으르지 않게 탐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준비한 수상소감이 아닌, 수상작의 제목을 언급하면서 나는 짤막하게 인사를 대신했다. 뒤미처 물러나서 보니 단상 아래 내빈석의 그가 보였다. 아아, 머리가 숫제 반쯤은 탈모된 상태였다. 지긋하신 그 연세에 한낱 애송이에 불과한 문학상 수상자를 위해 서슴없이 무릎을 꿇었다니!
‘와륵’은 작품명을 떠나서 차라리 내게 붙여줄 별명이지 싶었다. 하찮고 볼품없는 내 모습……. 그럼에도 나는 입때껏 무릎 한번 꿇지 않고 설레발치며 살아왔을까? 삶의 여정마다 우리가 뒤돌아보며 자숙하고 겸허를 배워야 할 때는 또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마음의 무릎’을 꿇고 또 꿇다 보면 삶의 진정성에 성큼, 한 발을 들여놓지 않을까?
연륜이 묻어나는 그의 성깃성깃한 머리에서 나는 한동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언뜻 보니 조금 전에 꿇어앉았던 무릎께가 희끗한 것도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나 역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더럽혀진 옷을 털어주고 싶었다. 언제쯤 나는 무릎을 꿇게 될까?
수상식이 파하고 떠나올 때 이미 날은 어둑어둑했다. 나는 수년 전, 그곳 천년고도 경주의 능들에 취해서 몇 차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날들을 기억했다. 푸른 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천지사방이었다. 오뉴월의 녹음은 극에 달했고 나는 푸르지 못한 자신 때문에 숱한 날들을 견딜 수 없었다. 마흔을 넘어서는 일은 극한(極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지 않았고 숨 쉬는 날마다 그 호흡은 그렇도록 무색했다. 그때, 경주의 푸른 능들 앞에서 나는 휴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집채만 한 신라의 무덤들은 죽은 자를 위무하지 않았고 오직 살아 있는 자들의 거울과도 같았다. 시퍼런 잔디로 뒤덮인 거대한 무덤 때문에 나는 역사의 위용 앞에 포복하고 말았다. 모래알처럼 하찮은 나… 수상작 ‘와륵’은 그렇게 내게 왔었다.
그때의 능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곧장 톨게이트로 향하지 않고 신라의 무덤을 찾았다. 어둠 속에 드러난 봉우리들을 차창으로 흘깃거렸다. 자동차가 정지했을 때, 나 또한 마음의 무릎을 꿇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역사의 한때를 풍미했을 그 어떤 권세도 결국은 봉분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려니….
그러므로 시간 앞에 덧없고 속절없는 나는 정녕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흡사, 산허리이듯 드러난 능들을 또렷하게 목도하면서 내 볼품없음에 진저리를 쳤다. 죽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고 삶 또한 아주 가까울 수만은 없다고. 어둠 속의 능들은 저들끼리 속닥거렸다.
어디쯤 왔을까? 시린 기운이 차창에 우우, 몰려들었다. 밤의 고속도로는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처럼 낯설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신기하게도 ‘안달루시아의 로망스’가 흘러나왔다. 나는 순간, 로키산맥의 나무를 떠올렸다. 그 견고한 재질이 탁월한 음색의 바이올린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사람 또한 다르겠는가? 고지대의 수목한계선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나무처럼 온갖 시련과 풍상을 견디려면 절로 두 무릎을 꿇어야 하리라고. 내내, 무릎 꿇은 수여자의 온화한 미소며 그 후덕함이 어른거렸다. 세상은 아름다운 영혼으로 인생의 곡진한 선율을 내는 사람들이 더러 존재하기에 희망을 찾을 수 있으리라.
휙휙, 산과 강이, 이따금씩 드문 인가가 스쳐갈 때 다소곳하던 내 다리가 흔들렸다. 무심코 내려다본 두 무릎이 고스란했다. 기꺼이 꿇어야 하리라. 사람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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