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지원제도 방문조사를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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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도 지나고 달력은 머잖아 3월인데도 올해는 겨울이 유난히 긴 것 같네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밀어닥친 한파에 다들 고생하는 것 같은데 봄은 어디쯤 숨어 있는지….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한걸음 앞서 봄을 알려준다는 매화꽃도 올해는 좀처럼 그 꽃소식이 더디다고 하고요. 날씨가 추우니 고다츠 속에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싫어집니다. 참, 여러분 ‘고다츠’라는 거 아세요?
일본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난방기구인데요. 일본에는 우리처럼 보일러로 방 전체를 난방하지 않고 난로나 장판, 고다츠 등 전기기구로 부분적 난방을 하는 게 보통이거든요. 그 중 고다츠는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인데 쉽게 말하자면 큰 상이에요. 그 상 밑에 전구가 달려 그 전구의 열에 의해 상 안쪽을 덥히고, 상 위에 넓은 이불을 덮어 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지요. 겨울이면 가족 모두가 고다츠 안에 발을 넣고 앉아 이불을 둘러쓰고 있는 모습은 일본에서 흔히 보는 겨울 풍경이랍니다.
저도 고다츠 이불에 들어가 적당히 리모컨을 누르면서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인데요. 우연히 장애인 여성의 결혼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하더라고요. 왠지 마음이 끌려 그 방송을 보았는데, 근디스트로피(근이영양증)라는 중증장애 여성이 혼자 자립생활을 하며 수필 등 글 쓰는 일을 하다가 어떤 남성과 만나게 되는 내용이었어요.
그 남성과 많은 곤란 속에서도 동거생활을 하다가 결국 결혼식을 올리더군요. ‘잘됐다, 잘됐다….’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냈지요. 하지만 역시 중증장애인의 결혼이란 가장 큰 난관인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사랑이 바탕이 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과 경제 등 수많은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그 여성도 생활 대부분에 남성의 도움이 필요하다 보니 남성이 일을 그만두고 여성의 활동보조에 중심을 두게 되어, 정신적인 부담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었어요.
장애가 있지만 보통 누구나가 경험하는 생활, 만남, 욕구를 실현하면서 살기 위해 너무도 당연하지만 많은 서포트(지원)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제가 일본에 와 살면서 처음에는 제도를 잘 몰라 이용이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장애인자립지원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생활에서의 가사지원을 받고 있고, 거기에 가산해서 이동지원도 받고 있습니다.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도움이 되고 있고 제 생활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도 점차 활동보조지원제도가 확대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도를 설명하는 형식적인 이야기는 들어도 어렵고 이해하는데 시간도 걸리지만, 마침 지난주 제가 이 장애인자립지원법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3년에 한 번씩 치르는 방문조사를 받았기에 그 절차를 좀 소개하고자 합니다.
일본에 사는 장애수첩을 가진 모든 장애인(신체·지적·정신장애인)들이 다양한 행정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 구청 사회복지과에 신청해 그 장애의 정도를 판정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서비스받는 ‘장애정도구분’이라 합니다.
일단 구청에 신청하면 구청에서는 장애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조사원을 파견하고, 조사원은 장애인과 직접 만나 106항목을 조사, 취합해 전문의나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인정심사위원회에 올리게 됩니다. 그것으로 장애정도구분이 판정되면 그 시간과 서비스에 맞춰 위탁받은 장애인상담센터나 사회복지협의회 등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협의해 서비스이용계획이라는 것을 작성합니다.
장애인은 그 서비스이용계획이라는 것에 따라 각 활동보조지원인 서비스파견센터(간호서비스센터나 장애인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활동보조인파견센터) 등에 의뢰하여 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이때 발생하는 비용에 관한 부담은 생활보호대상자나 기초주민세 등이 면제되는 사람은 무료, 세대소득이 대략 800만 엔 이하인 사람의 부담은 최대 9천300엔, 그 이상의 고소득자는 이용 서비스 금액의 10%를 부담하지만, 부담금의 상한액은 최대 3만7천200엔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파티파티’라는 장애인지원단체에 부탁해 청소, 세탁 등의 가사지원과 이동할 때의 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그때 집으로 찾아오는 활동보조인(헬퍼)이 이용한 서비스 내용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서비스이용 명세와 본인부담금에 대한 청구서를 집으로 보내오는데, 저는 그 본인부담금을 센터에 내게 됩니다.
일일이 장애에 관한 것을 조사받고 확인받는다는 절차가 번거롭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서비스가 90% 이상 세금으로 시행되는 것이어서 공정함과 투명함을 확보해야 하므로 약간의 개인적인 불편은 감수해야 하겠지요.
최근 여러 가지 제도개혁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재정악화로 말미암아 인간다운 삶을 위해 기본전제가 되어야 할 복지서비스의 위상이 정부의 비용 증대에 대한 우려 때문에 후퇴하지 않을까 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모습입니다.
제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일본의 과정도 참고해 중심을 잃지 않는 제도를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 장애복지서비스수급자증 |
▲ 장애정도구분을 위한 106항목의 설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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