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원 폐쇄 이후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 대학생 기자단


인화원 폐쇄 이후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김형수의 세상보기] “시설의 벽을 허물고 희망의 햇살을 장애인에게”

본문

사회복지시설 중에서 인권유린이 가장 심한 곳을 꼽으라면 부랑인시설과 장애인시설을 들 수 있는데, 가장 큰 원인은 다른 시설에 비하여 감시의 눈들이 너무나도 없다는 데 있다. 대부분 인권 유린이 일어나는 곳은 외딴곳에 떨어져 폐쇄적이거나 (중략) 사실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보장받기 위하여 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운영자의 인격만을 믿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물론 이런 사회 복지의 책임들을 대부분 종교 기관에 맡겨 버림으로써 사회 복지 기관의 포교 기지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다. 시설운영에 비리가 있을수록 시설직원 인사에 있어서 정실 인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친척이나 측근으로 운영자 및 중간 관리자가 구성되어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자격자나 부적격자에 대한 임명이 이루어지면서 다른 일반직원에 대한 처우를 부실케 하고 시설 내에 권한 남용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평직원의 신분은 시설운영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침해받을 수 있으며, 따라서 시설의 사유화가 더욱 조장되기도 한다.

‘장애인 인권회복과 사회복지시설의 민주화를 위한 권리선언’ 중에서 <에바다(ephphatha) 천일사기(千日史記) 자료집>

 

영원하여라, 박○○ 조(組)!

박○○ 씨는 지난 10월 지리산 모처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광주 인화학교·인화원의 전원조치와 관련해 법인 측의 회유·협박 등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직권조사에 함께 한 분이다. 또 우리 모둠의 ‘인화원’ 주거 생활인 6명 대표이자 다운증후군이 있는 장애인이었고, 2박 3일 동안 우리를 이끈 조장님이었다.
비록 우리 모둠을 실질 조사하는 책임을 진 이는 필자였지만, 적어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거주 이전의 자유를 논하고 행하는 중요한 자리에 명목상으로라도 생활인 당사자를 대표로 옹립하고 싶었기에, 우리는 그를 모둠의 대장님으로 뽑았다.

정작 국가인권위원회는 박 조장님이 한글이 빽빽한 설문지를 이해 못 한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이 우리 대장님과 대화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필자와 같은 장애인 당사자에게, 장애인 부모에게, 또는 활동가들에게 박 씨의 의중을 알아내라고 떠맡겨 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기도 했다.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뜻과 그들의 욕구를 먼저 보기보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와서 진찰하고 떠나는 의사들이 적어놓은 장애 유형과 등급을 보고, 면담해보기도 전에 두려움을 느끼며 오로지 장애인카드를 추종하며 바코드 마냥 박 대장님에게 너무 쉽게 숫자만을 붙이는 관료와 시스템에 대한 소심한 저항이기도 했다. (박 씨는 실제로 다운증후군과 교육방임으로 ‘발달장애’로 등록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설에서 보내온 문건에서는 단순 ‘청각장애’로 기재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징적으로라도 모둠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생활인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싶었고 박 대장님의 결재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자신도, 필자도 이런 고민과 결정 역시 우리 대장님에게 적극적인 동의를 얻지 못했음을 이 지면을 빌어 광주에서 사는 우리 대장님에게 사과드린다.

 

우리는 아직 그들과 제대로 대화하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영화 ‘도가니’ 이후로 요즘 뉴스는 잠잠해졌으나 보건복지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여전히 ‘도가니’ 관련 공문으로 실무자들을 색다르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각 학교에서는 장애인 학생에 대한 성폭력이나 가해 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학칙을 만드는데 분주하고, 과거에는 ‘인권’이란 제목만 달아도 민감하던 사회복지기관이나 생활시설 종사자들도 이제 단 한 시간이라도 끌려와서 듣는 새마을 교육처럼 될지언정 꼭 인권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장애인 학생에 대한 성폭력을 조심해달라는 공문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영화 ‘도가니’를 중심으로, 아니 ‘도나니’란 영화가 여론을 만들기 시작한 시점부터 늘 그래 왔다는 것처럼 세상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를, 안면을 바꿨다.

그렇게 교장·교감 선생이 장애인 학생에 대해 애틋하다면서 장애인 학생들의 요구는 특권으로 생각하고 특수학급은 만들지 않으면서 성폭력과 같은 복잡한 문제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장애인 학생을 특수학교만 가라고 종용하는 모순적인 태도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다만, 특수학급을 요구하고 성폭력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는 특수교사나 활동가가 더는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당하지 않는 ‘여론’만 생겼을 뿐이다.

우리가 쓰레기 분리 배출을 정당하고 응당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정착하는데 10년이 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적어도 교육기관들이나 학교들이나 국가인권위원회나 활동가들이 장애인 당사자와의 소통과 이해의 책임을 자신의 무능력 탓으로 깊이 인지하고 반성하지 않는 이상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박○○ 씨와 함께 우리 모둠의 사람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이 아예 처음부터 의사소통할 수 없다며 제쳐놓고 우리에게 맡겼던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언어적인 조사 방법으로는 그분들과 대화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어느 한 분은 자폐인으로, 말하고 글 쓰는 것이 어려워 그림도구를 드렸더니 쉬지 않고 세 시간 넘게 그림을 그렸다. 문제는 그 그림을 해석하는 우리의 능력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도 그동안 그분에게 그림 도구도 주지 않았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도 주는 의사소통의 기회를 정작 시설 생활 장애인에게는 왜 주지 않고 있는 것일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국가인권위원회 민간 조사 결과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화원 폐쇄와 관련해서 우석 재단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숙소까지 정해두고 조사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시설은 폐쇄되었고 거주인들은 다른 곳으로 갔지만 정작 그 조사 결과는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처음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자문’과 ‘도움’만을 요청해서 그렇게 알고 갔으나, 가서 보니 내가 생전 처음 국가인권위원회 민간 조사원으로 등록되어 있었고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발설하지 말라고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이 원고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까지 밝혀야 할지, 감히 알렸다가 경찰서에 가는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도 된다.

여기서 밝히는 대부분 내용은 인권위와 함께했던 조사 내용이 아니라 그 전원조치 이후 인권의 이름으로 속행했던 생활인들의 강제 이주를 반성하면서 2주 전에 다시 가서 만나 보았던 내용이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잠자다가 갈대밭이라도 찾아 외치고 싶다.

“그때 인권위 조사 결과는 당나귀 귀!”

 

일요일에는 오지 마세요, 더구나 빈손으로는 더욱더

박 대장님과 그 모둠원들은 폐쇄 조치 이후 광주에 모 생활 공동 가정으로 임시 ‘조치’되었다. 그 기관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그룹 홈 프로그램을 도입한 기관으로 장애인 시설을 해체하고 지역 사회통합이라는 관점을 실제로 최초로 구현했던, 그리고 지금도 잘하는 곳이다. 박 대장님과 몇몇은 그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파트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개인 침대와 지갑, 사물함, 정장 등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기존의 가정에서 지켜지는 규칙들은 돌아가고 있었지만, 대장님이 라면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샤워하고 싶을 때 샤워할 수 있어 보였다. 그리고 가끔은 너무너무 피곤하고 귀찮아서 안 씻고 잠자리에 들 수도 있겠지. 그렇게 나에게 지갑을 열어 보이며 자랑하는 그분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그분들을 인권이란 이름으로 강제 이주시킨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다시 그분들에게 깊이 사과할 일이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그 아파트를 방문하고자 했을 때 그 기관 원장에게는 공문을 띄우고 생활지도 선생님에게는 양해를 구했으나 정말 허락을 얻어야 할 생활인들에게는 그 어떤 양해도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그분들을 위해서 조그마한 화장품을 준비했는데 다 똑같은 화장품을 사갔던 것이다. 5명이 생활하는 가정의 화장대에 같은 화장품이 주르륵 놓여 있는 사진을 떠올려 보라. 인권이란 이름으로 시설에서 그분들을 강제 이주시켜 놓고, 시설에서 하는 행위를 똑같이 하는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십 년 넘게 했어도 완벽한 분리수거는 늘 어려운 것처럼 장애인을 개개인으로 개별화하고 인격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개인이 원하는 햇살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독자분들이 혹시나 박 씨를, 우리 대장님을 집에 가서 뵙고 싶다면, 가능하다면 직접 양해를 구해보자. 조사를 이유로 무턱대고 쳐들어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짓은 하지 말자. 개별적인 선물이 어렵다면 그냥 무거운 과일이나 한우 고기나 사가시라.  


※ 본 원고의 제목 ‘시설의 벽을 허물고 희망의 햇살을 장애인에게’는 지난 7년 동안 에바다 투쟁의 슬로건이었다.

작성자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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