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만난 리영희 > 대학생 기자단


겨울에 만난 리영희

[이서진의 책 세상]

본문

겨울 들어 ‘리영희’ 선생을 만나는 시간이 길어졌다. 고인이 된 1주년 즈음부터 선생의 저서들을 서가에서 빼어들었으니 아마도 겨울추위가 만만치 않은 탓이리라. ‘대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이미 오래전부터 선생의 책들은 서가에서 자리를 잡았었고 그 진작 나는 여러 차례 눈독을 들이곤 했는데, 이번에는 우연찮게 선생의 추모기에 맞추어 책을 집어든 것이었다.

언제 읽어도 선생의 문장들은 진실의 펜이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사상의 은사’며 ‘지식인의 표상’이라는 항간의 대명사 외에, 나는 ‘행동하는 민주시민’을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다. 권력 앞에서도 독야청청했던 선생의 삶과 글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고 늘 한결같았다. 말하자면, 언행일치의 표본이었다.

혹자는 얼토당토않은 낙인을 찍어 의식화의 주범이며 원흉으로 몰아갔지만, 기실 우리 세대는 훌륭한 선비 한 분을 잃은 것이리라. 그렇다고 내가 선생의 강의실에 앉아서 초롱초롱 눈망울을 굴린 적도 없었고, 혹여 이웃에 살면서 오다가다 그분의 옷깃을 스친 것도 아니었다. 외려, 나는 선생이 감옥소와 학교를 들락날락하면서 해직과 복직을 반복할 때 그분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 학교의 부속병원에서 입원 중이었을 게다. 그것도 심각한 중도장애를 입고 말이다.

아, 그때 나는 어떠했나?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꼼짝없이 형틀 같은 특수침대에 묶인 채 천장을 보고 두 시간, 바닥을 보고 두 시간을 되풀이하면서 죽지 못해 살던 때였다. 그러니까 그때의 내게 더는 바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판국이니 한가하게 선생의 강의를 듣거나 저서를 읽게 될 처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선생의 저서들을 만난 것은 퇴원 후 한참을 지나 집안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몰입한 책읽기의 시기였다. 아아, 그때 나의 가슴은 뜨거웠다. 화다닥, 가슴에 붙은 불꽃은 꺼지지 않았고,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는 화로를 이고 있는 듯했다.

숱한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책읽기의 내밀한 소통이었으리라. 한 문장 한 문장과 그 행간의 여백 사이에서 나는 간혹 눈을 감고 있었다. 내면의 충일감은 선생의 빛나는 문장 속에서 의식의 깜빡거림으로 약동하였다. 깨어 있는 의식… 올곧은 진보… 진정한 휴머니스트… 선생의 글들은 매번 겨울을 나기에 충분했다. 춥고 냉기서린 겨울 밤, 나는 줄곧 선생의 저서들을 탐독했다. 치열한 문장들은 곧바로 읽는 자의 심장을 빠르게 박동시켰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회학적 지식의 정보전달에 그치지 않은, 선생의 삶을 담보한 그 고난과 역경이 수없이 뇌신경을 자극했으며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문장들 속으로 스르륵, 나는 유인되었고 좀체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보면 베란다 유리에 성에가 하얗게 내려앉았고 또 어느 순간 책상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맞은편으로부터 희뿌옇게 동이 트기 일쑤였다. 나는 그렇게 이·삼십대의 겨울을 거쳐서 듣기만 해도 소스라칠 사십대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내게 겨울은 춥고 냉랭한 계절이다. 이 땅에 실용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사회는 더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음이 확실하다. 하여, 체감온도 또한 더 내려갔다. 겨울나기의 책 읽기는 한낱 유명무실해져서 아무리 밤을 새워도 빽빽하게 박힌 깨알 같은 글자들은 개미떼의 그것에 불과할 뿐, 도무지 나의 겨울밤은 공허했다. 실속 없는 빈껍데기…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고 기나긴 동지(冬至)를 그저 팥죽 한 그릇에 해치우고 말 처지가 못내 아쉬울 즈음, 나는 기어이 리영희 선생을 내 안으로 초청한 셈이리라. 그 1주년을 홀로 추모하기라도 하듯.

얼마 전 겨울 들어 첫눈이 중부 서해안을 뒤덮었을 때 어김없이 화면의 ‘한글’은 백지였다. 커서는 쉼 없이 깜박이며 재촉했으나 나는 애꿎은 모니터만 노려보던 중이었다. 도무지 한 문장도 되지 않는 최악의 날이었다. 강렬한 문체로 인간심연의 고뇌를 그린 고리키의 단편을 기웃거리다가, 책상 귀퉁이에 널브러져 있던 시사주간지를 이리저리 넘기다, 그것마저 마뜩찮아 샤르트르와 까뮈의 우정과 투쟁을 기고한 저작물로 시선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후 2,3시까지 나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그렇듯 어물어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아, 그런 날은 대책 없는 막막함이 쇳덩이가 되어 정수리를 누르기 마련이어서, 나는 왜 하고많은 일들 놔두고 하필 글을 짓고 살게 되었는지 후회막급 우인(愚人)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리라. 휴우, 한숨을 거듭하다 힐끔, 베란다를 내다봤을 그 순간이었다.

아아, 그렇듯 소담스런 눈송이가 하늘에서 내려오시지 않겠는가! 제 살갗 스스럼없이 공중에서 부서뜨려 땅바닥에 곤두박이면서 무에 그리 부끄러워 소리 없이 나리던고? 그 겸허 앞에서 나는 한동안 애린했다. 들레지 않는 자연의 겸손… 천둥벌거숭이처럼 눈싸움을 벌이고 털장갑 죄다 젖은 채 눈사람을 만들던 시절도 활동사진이듯 획획 지나갔다. 인간사 새옹지마가 멀지 않을 것이려니… .

글을 쓰는 데 집중하다 사실 나는 그토록 탐스런 눈발을 하마터면 목격하지 못할 뻔하였다. 백번 생각해도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니 그 한 날쯤 바람맞은 들 어떠하랴! 나는 더없이 고요해졌다. 깊은 속에서 물음이 올라왔다. ‘이 겨울을 마냥 시류에 편승하겠느냐?’ 구불구불한 창자를 타고서 그것은 책망이듯 준열했다. 나는 소리 없이 내리는 첫눈을 보면서 습관이듯 서가를 둘러보았다.

일순, 노학자 리영희 선생이 비스듬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역시, 저 창밖에서 조용히 내리는 눈송이처럼 겸허하게. 극도의 정제된 맑은 눈동자는 낡은 표지에서 오히려 빛을 냈다. 아아, 이 겨울을 선생과 함께 나리라. 선생이라면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에서도 넘어지지 않으리라. 선생의 저서와 동거하면 겨울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곳에서 그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힘이다.”

이미 내게는 경구가 되어버린 선생의 저명한 글을 나는 오늘도 그분의 육성을 듣듯 경청한다. 아니, 귀로만 들을 뿐 아니라 가슴에 새긴다. 창밖은 여전히 칼바람이다.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하여 사표가 되신 선생과 더불어 나는 이 시린 겨울을 견디리라. 

 

작성자소설가 이서진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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