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의 벽을 허물고 희망의 햇살을 장애인에게”
본문
1996년 11월 27일 농아 아동 교육기관인 평택 에바다 학교의 학생들이 배고픔과 추위, 강제노역과 폭행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에바다 비리재단 퇴진을 위한 농성’을 시작한 지 2000년 3월 18일로 5년……. (중략) 에바다 투쟁은 과거 50년 동안 만연해 온 장애인 시설과 사회복지 시설의 억압과 착취, 그리고 비민주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시설의 구조적 비리와 참혹한 인권침해는 오늘 이 시간에도 저질러지고 있으며, 거기에 누구도 지금까지 떨쳐 일어난 적은 매우 드물었다. (중략) 이제 더 이상 이 땅에서 장애인들이 인간다울 권리를 빼앗기거나 스스로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훼손당할 수 없다. 이 시대에 사회복지 시설과 장애인 시설은 모든 사람의 헌법 기본권을 누리게 하고 진정한 인간화를 위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들은 결코 자본주의나 권위주의의 눈으로 운영되거나 세워질 수 없고 그 목적을 위해 가장 민주적이어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개인이 시설을 소유하거나, 시설이 지역 사회와 단절하고 닫혀서 인권을 침해하거나 유린할 수 없다. (중략) 이들과 함께 특수교사·사회복지사들이 진정한 전문가이기 위해 장애인 인권회복과 사회복지 시설의 민주화를 위한 개혁, 변화에 분명한 대변자임을 하루빨리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 ‘장애인 인권회복과 사회복지시설의 민주화를 위한 권리선언’ 중에서 <에바다 천일사기(千日史記) 자료집> -
이제 청와대 바로 앞에 장애인 생활 시설을 유치해라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에바다 사건부터 전 국민 500만 명이 관람하고 이제 외국에 진출한 영화 ‘도가니’까지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자조하지만 그 변화는 단지 사람들에게 ‘남의 문제’가 되었을 때나 좋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문제, 나의 지역 문제, 특히 내 돈의 문제와 관계가 있는 일상의 생활에서 장애인들, 우리를 발견했을 때는 우리의 인권의 시계는 여전히 70·80년대에 멈춰 있다.
신경혜 소아청소년발달연구소가 11일 오전 10시경 방죽1마을로 이전을 하기 위해 이삿짐을 마을로 들어오려던 순간 주민이 이삿짐 차량 진입을 막았다. 20여 명의 주민은 이삿짐 차량을 막기 위해 들어가는 입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고 주민 모두 “이삿짐 못 들여와요. 입주 결사반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아동 치료기관 이전 ‘님비’ 논란, 마을주민 소아청소년발달연구소 입주 ‘결사반대’ (에이블 뉴스 기사 발췌 2011.11.11)
그것은 여전히 치열하게 장애인시설 비리로 싸웠던 평택 에바다 농아학교가 이제 유기농 무상 급식으로 생활뉴스의 한 면을 장식하고 인화학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도가니’가 외국에 까지 팔려나가는 지금, 마치 10년 전부터 늘 그래 왔다는 듯이 인권에 열정이 불타서 인권 강의 요청을 2시간 동안 100여 명이 한꺼번에 딱 한 번 들으면 그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인권의 원칙들이 모두 지켜질 것처럼- 하는 지금, 늘 장애인 의문사나 성폭력 사건을 사회면 중심으로 다루었다는 듯이 주요 언론이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뜨거운 지금, 우리는 왜 이 같은 사건들을 과거와 똑같이 같은 논리로 목격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조·중·동이나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도 아닌 장애인전문 인터넷 신문만이 다루고 있는가?
사실 지난 반세기 동안 계속되어온 시설에서의 인권 유린 문제의 본질은 단 하나다. 모든 시설의 문제는 그것이, 그곳이 시설이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주 이주의 헌법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반헌법의 시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설은 그 자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헌법적이어야 하는, 몇몇 소수 운영자에 의에 더 많은 다수가 통제되고 유지되는 모순이 있기 때문에 시설은 인권 유린의 본질이다. 장애인시설들이 이 같은 모순만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시설은 말 그대로 좋은 시설이 될 수 있다. 에바다 사건의 농성하는 아이들 생활공동체였던 해아래 집이 세계적으로 드물게 그 모순을 민주적으로 해결한 사례이다.
만약 부모들이 장애인 자녀를 친권 포기하면서까지 맡겨버리지 않았다면, 만약 장애인 부모와 장애인 당사자를 둘러싼 가족 친지들이 힘을 모아 함께 키우자고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었다면, 우리 언론방송 매체들이 힘들고 괴로운 인간승리의 장애인 다큐멘터리만 만들지 않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장애인 편을 만들어 방송했더라면,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 유대인의 ‘게토’처럼 국가가 장애인만 따로 모아 특수학교를 왕창 짓겠다는 그 무식함을 착한 일인 양 생색내지만 않는다면, 백두대간의 근근한 물줄기도 공사 한판으로 바꿀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국가가 얼마 되지도 않는 장애아동을 책임지겠다고 잘난 척이라도 했다면, 좀 더 일찍 그럴 수 있었다면 에바다 학교, 인화학교 부모들이 낙인 찍힐까 봐 수화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농아인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것을 포기했을까?
아무리 좋은 시설도 사람들의 교류와 관심이 없고 지역과 단절되어 있으면, 지역 사회과 동등하게 누리고 있는 권한과 기능이 없으면 그 시설은 법도 없는 감옥 즉 감금시설일 뿐이다.
진정한 권력이라면 장애인과 올바른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정말 청와대가, 국회의원들이 영화 ‘도가니’를 보고 가슴 먹먹하고 깊이 반성한다면 당위적인 도덕 윤리는 이야기를 걷어치우고 책임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 수많은 고위층이 오가고 사람들이 견학하고, 언론들이 취재하려는 청와대 앞에 적극 장애인 관련 기관을 유치해라. 청와대는 땅을 매매하지 않으니 장애인 시설이 왔다고 땅값 하락을 걱정할 일은 없지 않은가?
장애인을 소수자로 보고, 약자로 생각하고 부끄러워하는 문화가 가치관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장애인 부모들은 ‘시설’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일이 남편이 술에 살고 가출하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협력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되지 않는다면 장애인 자녀, 장애인 당사자 자신을 표현하고 의사소통할 언어와 매체를 가지지 못한다면 문제 해결은 언제나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영화 ‘도가니’가 장애여성들을 성폭력으로부터 더욱 안전하고 자유롭게 해준 것이 아니라 보안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장애여성들은 연애도 금지당하고 모자보건법이 살아 있는 70·80년대처럼 부모로부터 자궁적출을 두려워하게 한 그 딜레마 말이다.
만약에 시설들이, 특수학교들이 눈에 아주 잘 보이는 크고 예쁜 간판과 함께 명동 한복판에 있다면 각 대도시의 시청 앞, 교육청 앞, 역세권 안에 자리 잡고 있다면 제정비리는 발생할지언정 심각한 인권유린은 줄어들 것이며 나라의 권력자, 권세가들이 장애인과 제대로 함께하고 파트너십을 가진다면 세상 사람들이 온갖 착한 척은 다 하면서 장애인시설을 반대하는 그런 무식한 행위는 하지 못할 것이다.
장애인 기관 유치에 경쟁하는 지자체를 보고 싶다
때때로 세상 사람들과 국가들이 장애인들은 살기도 어렵고, 결혼하기도 어렵다고 동정하지만 정작 장애인들이 잘살게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거나 많은 이성과 적극적으로 결혼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지는 않는다. 지금도 우리는 장애인 관련 분야에 진출하려면 장애인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부모에게 내야 하는 시대, 전문대학들이 돈도 내고 생색도 많이 냈던 특수교육 대상자 특별전형을 정권 실세가 평가하는 취업률에 도움이 안 된다면 근래에 일거 철회하는 이상한 나라의 장애인 시대를 살고 있다. 인화학교·인화원의 장애인들을 인간답게 살게 해준다면서 그들에게 아무런 설명과 이별의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인권이란 이름으로 이산가족을 만드는 시대, 장애인시설 관리자들이 시설은 우리 사유재산이라고 공개적인 공청회에 나와서 자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에바다 투쟁이 시작 된 지 15년, 500만 명의 관중이 시설 문제에 공감했지만, 그래서 나는 이제 보고 싶다. 박원순 서울시장 옆에서 열심히 일하는 지적 자폐성 장애인 공무원과 각 지자체에서 서로 장애인 기관을 유치해야 격이 높아진다면서 유치 경쟁하며 플래카드를 내거는 모습을 이제는 진정 보고 싶다.
※ 본 원고의 제목 ‘시설의 벽을 허물고 희망의 햇살을 장애인에게’는 지난 7년 동안 에바다 투쟁의 슬로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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