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사회를 앞서 갈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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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 지적장애 딸을 둔 아버지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다 죽여 버리고 싶다는 그 아버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머리를 깎아 주던 이발사까지 딸을 성적으로 유린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버지는 세상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 추악한 범죄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왜 평범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다른 사람을 억압하게 될까? ‘도가니’ 사건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보며 잠시 들떴던 기분은 가라앉았습니다. 보일 듯한 출구를 다시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라고 할까.
감추어진 범죄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있고,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관습이나 관행의 문제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으로 내려오면 불의한 습관이나 절제되지 못하는 본성도 문제입니다. 그런데 앞의 사건을 접하며 평범한 인간이 다시 인간을 억압하게 되는 부조리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범죄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선과 허위가 작동합니다. 더욱이 그 범죄의 대상은 저항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고 관심을 끌지도 못합니다. ‘도가니’ 사건은 예외적입니다. 이 사건이 문화와 소통을 매개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몇몇 울분과 분노로 그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전기쇼크를 이용한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 명이 실험에 참여하게 되는데, 한 명은 감독자, 다른 한 명은 교사, 나머지 한 명은 학생의 역할을 합니다. 실험의 내용을 감독자와 학생은 알지만, 교사는 모릅니다. 교사가 실험 대상인 셈입니다. 교사가 문제를 내고 학생이 이를 풀게 되는데, 만약 학생이 틀리게 되면 전기쇼크를 주게 되며, 틀릴 때마다 쇼크의 강도는 높아지게 됩니다. 전기쇼크는 최저 15볼트에서 최고 450볼트까지 15볼트 간격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00볼트를 넘어서면 학생은(비록 연기이지만) 고통스러워하며 벽을 두드린다든지 격렬하게 항의를 합니다. 물론 그 상황에서도 감독자는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며 쇼크의 강도를 높이라고 교사에게 주문합니다. 물론 교사는 얼마든지 실험을 자발적으로 그만둘 수 있습니다.
과연 이 실험에서 실험대상자인 교사는 몇 볼트까지 올렸을까요? 놀라운 결과가 도출되었는데요. 40명의 참가자 중 아무도 300볼트 이전에 실험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려 40명의 65%인 26명이 450볼트까지 전기쇼크를 주었습니다. 학생이 사망할지도 모르는 데도요. 실험 전에 스탠리 밀그램은 동료 심리학자들과 대학생들에서 실험대상자가 얼마까지 볼트를 올릴 것인지를 예상하도록 하였는데, 대학생들은 3% 정도가 450볼트를 누를 것이라고 대답했고 심리학자들은 195볼트에서 모든 실험대상자가 거부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저는 위 실험을 통해서 평범한 인간도 특정한 상황 속에서는 얼마든지 타인을 억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봅니다. 누구도 보지 않는다는 상황. 어차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 범죄 행위를 숨길 수 있는 것이라는 기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더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더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과연 인간 본성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사회 구조적인 문제일까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법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법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만, 법이 문제를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항상 사회를 한 걸음 정도 뒤따라가며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책에 대한 공감대를 견고히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드러내는 법이 있어야 합니다. ‘도가니’라는 영화가 있어야 문제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볼 수 있게 하는 법이 있고, 그 법을 통해 문제의 근원이 밝혀지고 해결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복지도 앞서 가야 하듯이, 이제 법도 앞서 가야 합니다. 공익이사제도가 왜 ‘도가니’ 전에 만들어지지 못했는지, 왜 법은 이렇게 항상 뒷북만 치는 것인지 너무나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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