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경쟁력 있는 스펙이 되는 사회를 꿈꾼다 > 대학생 기자단


‘장애’가 경쟁력 있는 스펙이 되는 사회를 꿈꾼다

[김형수의 세상보기] 장애학생 취업 지원 활성화 세미나 열려

본문

“그렇잖아. 내가 열심히 해서 학점 3.5 이상에 토플 600, 토익 900점 받으면 뭐하냐? 다른 애들은 막말로 안되면 이 학점에 대기업 공채나 들어간다지. 우리 같은 경우에는 점수 따도 안되는 경우가 많잖아. 차라리 내가 활동(동아리)하는 시간에 다른 자격증이나 하나 더 따놓거나 밥 벌어먹을 것 하나는 확실히 뭐 하나 마련해 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라고 생각해.”
- 95학번, 목발 사용 뇌성마비 장애인 학생 -
(‘장애대학생의 갈등과 정체성 형성’ 2000, 정영석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논문 중에서)


“내가 도서관에서 책수레 밀고 슬슬 지나가면 애들이 많이 쳐다보지. 그러면, 재밌다. ‘나도 할 수 있어, 임마.’ 그렇게 씩 마주보고 한번 웃어주고 그냥 가. 처음에 도서관 아르바이트 신청할 때, 아무리 교내 근로지만, 그래도 안 시켜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 97학번, 의족과 의수 사용 절단 장애인학생 -

   
 

  지난 4월 19일 충북대학교에서는 장애인 대학생들과 관련한 중요한 세미나가 전국 최초로 개최됐다. 바로 나사렛대, 충북대, 충남대 등 3개 대학이 모여 ‘대전, 충남북 장애학생 취업지원 공동 세미나’를 연 것이다. 세미나에서는 3개 대학 장애학생 지원센터 관계자가 ‘공공기관과 연계한 장애학생 경력개발 및 취업지원사례’, ‘지방자치단체 연계 장애인 취업지원 방안’, ‘지역사회 네트워크 자원을 활용한 장애학생 취업지원 사례’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또한 충북도 고승애 재활팀장, 장애인고용공단 충북지사 이승용 고용서비스 부장과 장애학생 조효진(충북대 경제학과)씨 등이 나와 '장애학생 취업 지원 활성화방안'을 놓고 토론을 진행했다.

  지역대학의 장애인학생지원센터들이 각자의 장애인학생의 취업 지원 사례를 통해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자 한 이번 세미나는 95학년도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이 시행된 후 최초의 구체적인 시도이다. 본 글은 필자가 세미나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장애인대학생은 어떤 고민을 하는가

  장애인학생 본인의 취업에서의 가장 큰 딜레마와 혼란은 자신의 적성과 욕구에 따라 취업과 진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판단과 기대수준 및 걱정에 따라 대학 전공과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취업을 하려는 동기부여가 약하고 성취도도 낮은 악순환을 불러온다.

  부모의 욕구에 따른 진로 선택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용시장이 필요로 하는 장애인의 전문성과 맞지 않기 때문에, 결국 고용시장의 요구와 장애인 대학생의 공급의 불일치라는 큰 문제를 불러 온다.실제로 장애인에 대한 고용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분야는 이공계 분야 및 IT업계인데, 장애인학생의 대부분의 전공은 문과대와 사회과학 계열이다. 이렇듯 사회의 요구와 학생 본인의 준비가 맞지 않고 본인 스스로의 독립의 욕구를 위한 자기 선택의 취업 고민이 없기 때문에,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서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또한 장애인학생이 전문적인 고용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능력이나 역량이 중요한데 장애인 학생이 취업을 고민할 때는 자신의 장애와 일어날 수도 있는 ‘차별’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에  결국 장애인학생은 좋은 직업보다 차별받지 않는 직업을 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기도 한다. 이는 직장 진입 이후의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력을 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장애인대학생들은 왜 본인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외면하는가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의 본래의 목적은 비장애인대학생의 원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고용시장에 대한 전문가 배출과 학문 후속 세대의 진출이다. 그러나 장애인학생을 위한 취업 지원프로그램이 이 목적에 잘 부합하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이 경우 장애인학생들이 바라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장애인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 설명회에(예: 대한항공) 장애인 학생들이 큰 기대를 갖고 참여를 하다가도 금방 외면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는 그 직무가 기대 수준에 못 미쳐서라기보다 그 직무나 설명회 자체가 장애인학생들의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인학생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지속성을 담보로 오랫동안 운영돼 노하우가 축적돼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사업 프로젝트로 단발성에 그쳐 왔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전문성과 노하우가 부족하고 장애인학생들에게 사업의 진정성과 신뢰를 받기가 어려웠다.  장애인대학생들은 각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진정 자신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학교가 단순히 예산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사업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대학생은 취업을 위한 스펙과 경력을 쌓고 있는가

  장애인대학생 중에는 자신들이 할 수 있거나 할 수밖에 없는 과외, 컴퓨터 관련, 사무직 등의 아르바이트 외에도, 주유소의 주유원이나 식당이나 카페에서의 서빙과 같이 많은 사람들을 대하고 활동적인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욕구가 충족되기란 자못 힘든 게 사실이다. 대학 밖에서의 현실을 따지지 않더라도 대학 안에서도 이들의 스펙과 경력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정책과 여건이 거의 없다. 취업진입과 직무 적응을 위한 내공을 키울 수 있는 스펙과 경력을 만들 수 있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고 ‘장애인’만을 부각시킨 프로그램은 일종의 스티그마 효과 때문에 당사자들이 외면할 위험이 높다.

※스티그마 효과: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행태가 나쁜 쪽으로 변해가는 현상을 말한다. ‘낙인 효과’라고도 한다. 반대로 좋은 평판을 받았을 때 더욱 좋은 행태를 띄게 되는 경우를 일컬어 ‘피그말리온 효과’라 한다.

  외국의 경우 일본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와 같이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지원하는 것을 되도록이면 지양한다. 왜냐하면 그런 별도의 프로그램이 모든 장애인학생들의 욕구에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책임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한 나라들에서는 이미 장애인대학생들이 비장애인과 경쟁할 수 있는 스펙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유자격’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기 때문에 모든 비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에 장애인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지원을 시행하고도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각 대학들이 지역 사회의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와 연계해 동료 상담과 외부 자원 연계를 강화하거나 대학에서 장애인학생들을 자체적으로 흡수하는 정책을 쓰기도 한다. (예, 미국 대학의 장애를 가진 교수의 우선 선발 제도 , 연세대의 장애인학생지원센터의 장애인당사자 실무자 고용)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 실시 이후 장애인학생을 위한 취업 프로그램의 시작은 96년 서강대를 시작으로 1998년의 연세대 학생 상담소의 주관으로 이루어진 장애인학생의 모의 면접 프로그램 등이 있었다. 지금은 숭실대를 비롯한 서강대, 서울대 등에서 장애인학생들의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화여대의 경우는 공식적인 대학생 졸업 신분은 아니지만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들을 대학교에 고용해 고용률 7%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서는 대폭 나아진 지원이기는 하나, 아직도 많은 장애인대학생들이 이런 지원과 정책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개선책을 모색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는 당사자 스스로 차별과 스티그마를 회피하려는 것과 정책과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대학 당국과 실무자들이 장애인 대학생들의 감수성과 정체성을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함에서 기인한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자의든 타의든 고학력 장애인들을 원하고 있고 장애인대학생들은 취업을 갈구한다. 그 중간에 있는 이들의 고민은 ‘장애’를 어떻게 하면 능력과 매력으로 생산해 내느냐일 것이다. 장애인대학생이나 기업들은 능력을 제한하거나 경쟁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장애를 생각하지 말고, 능력을 발견하고 변환하려는 창의적인 노력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facebook.com/eduable / guerni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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