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에서 이제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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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노숙인이다. 쪽방이나 독서실 아니면 ‘시설’에서 잠을 자는 분들은, 자신을 결코 노숙인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항변한다. 말 그대로 이슬 맞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령 한때 노숙 생활을 했더라도, 아니 현재 노숙을 하는 처지에 있을지라도 노숙인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노숙인이라고 부르는 그 순간부터 한국 사회는 노숙인에 대해 어떤 선입견에 사로잡힌 고정된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머리는 대책없이 엉클어지고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는 행색. 낮이나 밤이나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모습. 그러다 밤이 깊으면 서울역 대합실이나 지하도에서 쓰러져 자는 인간 군상. 알코올 중독에 게으르고 제몸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 잔혹하지만 노숙인을 그렇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용어, 일방적으로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거나 자포자기해 도와줄래도 어쩔 수 없는 딱한 존재, 심지어는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 바로 노숙인이라는 용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요컨대 노숙인이란 그분들 스스로가 지은 이름이 아니라 외부의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부르고 그로 말미암아 부정적 이미지가 가득한 ‘인격모독적인’ 용어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분들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노숙인은 노바디nobody인 셈이다. 다른 한편 한사코 노숙인과 구별해달라는 분들의 항변에는 서울역 앞의 인간 군상으로 취급받기 싫다는 자기 구별과 함께 나 역시 다시 그러한 삶으로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가 심연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특히 알코올 중독의 노숙인은 ‘보통 시민’들이 가장 꺼리고 경원시하는 존재이다. ‘노숙의 세계’에서 알코올 중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알코올 중독이 원인이 됐 노숙의 삶으로 전락한 경우, 사업에 실패하거나 억울하고 원망스런 일을 당해 술로 달래다 알코올 중독이 되고 급기야 노숙으로 간 경우, 노숙 생활을 하다가 알코올에 빠진 경우가 그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어찌되던, 결과로서 알코올 중독은 노숙인의 자활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도 술이었다. 평소에 학교에 잘 나오시다가도 문득 골방 또는 술집이나 거리에서 며칠째 술로 지새우는 분들도 있었다. 굳은 의지로 끊어야 한다고 하지만 말처럼 되지 않는 게 알코올 중독 치료이다. 일자리도 거의 없고, 가족도 없는 허전한 삶, 미래에 대한 애타는 갈망마저 마를 때 술은 영혼을 아프게 적셔온다. 인문학 과정은 이러한 황폐한 삶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성프란시스대 인문과정 4기 졸업생이신 문점승 선생님의 인생 역정은, ‘희망의 인문학’과 문점승 선생님 자신의 결연한 의지, 그리고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어주는 풍물놀이가 어우러짐이 만들어 낸 작지만 매우 큰 ‘기적’-기적이 아니다. 다른 분들도 가능하다! -이다.
내 인생도 찾게 되고 고마움도 알게 됐다
글 문점승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4기 졸업생
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보통사람들’과 같이 일상적인 과정들을 거치며 살아왔다. 그러나 과도한 술이 문제였다. 살면서 술에 대한 문제를 조금씩 느끼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함에도 세월의 흐름에 맞춰 군대에도 가게 됐고, 결혼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 술에 대한 문제가 하나둘씩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날도 많아졌다. 술을 먹고는 싸움질을 하거나 길거리에서 자는 일이 허다했고 결국 이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노숙의 삶은 이혼을 하기 전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아이들이 하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아빠, 제발 친구들한테 너희 아빠 술 먹고 어디에 누워 있더라는 소리 듣지 않게 해줘. 창피해서 죽어버리고 싶어”라는 수없는 소리들, 아이들이 그때 했던 소리가 지금도 나의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이혼을 하게 되니 인생은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일상적인 사회인의 모습은 물론이고 사람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아내와 자식, 부모형제, 친구,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처절하게 버림을 받게 되고 혼자 거리로 나뒹굴게 됐다. 시쳇말로 ‘쪽팔리는’ 이야기지만 알코올 중독에 노숙자가 아닌 노숙자가 돼 술에 취해 험한 몰골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가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수차례,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결국 목에 넘어가는 것이라고는 술밖에 없는데 나중에는 그 술마저도 가지러 갈 힘이 없어 바라만 보는 지경에 이르러,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급성간염에 복수가 차서 올챙이배와 같이 배가 볼록 나왔다. 숨이 가쁘고 부황으로 온 몸이 부어오르고 담낭을 떼어냈다. 이러한 상황에 더해 급성저혈압 ,악성빈혈, 평소에는 없었던 알코올성 당뇨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알코올중독자인 나에게는 한 잔의 술 외에는 어떤 것도 소용이 없었으며 앓던 와중에도 술 한 잔이 나에게는 신이요, 부모요, 부인이요, 자식이요, 친구요, 애인이었다.
그러한 술을 마시기 위해 구멍가게에 들어가면 물과 소금을 얻어맞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그 술을 마셔야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바로 지독하고 악질적인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이다.
나는 이렇게 지독하고 악질적인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너무나 행운아였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치료공동체라는 치료시설로 입소를 하게 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내게 찾아온 큰 행운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눈을 뜨는 계기도 찾았다.
내게 더 큰 행운은 그렇게 무엇인가를 찾고 있던 중에 인문학을 만났다는 것이다. 나는 소위 새로운 삶을 위한 ‘굳히기’로 들어갔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중독과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찾게 된 것이다. 또한 노숙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독전문가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이후 다시 사이버대학을 통해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해 올해 2월 28일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렇게 전문학사학위를 수여받은 후 학사학위를 연계해 삶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노숙과 알코올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한 번 알코올 중독은 영원한 알코올 중독이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회복돼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서 이러한 계기가 생길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이혼까지 하게 되면서 세상에서 버림받고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길거리를 떠도는 거리의 천사가 돼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자포자기 상태로 살았다. 그런데 이 과정들을 딛고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하겠다며 눈을 뜨게 됐다.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을 만나 인생이란 무엇인가, 왜 사람이 살아야 하고 산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었다. 나와 우리의 삶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준 것이 바로 노숙인을 위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이었다.
이제 내 나이 54살. 솔직히 이 나이에 공부를 하려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20대에 해야 할 공부를 이제야 하게 되니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문학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공부는 나이에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인문학공부를 계속할수록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이제부터 남은 내 인생을 아무렇게나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많지 않겠지만 하루를 살다가 죽어도 과거와 같은 삶이 아닌 후회되지 않을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행여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맞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다가도, 비록 헤어져 있지만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을 나의 아이들이 우리 아버지가 늦게라도 철들어 사람답게 살다가 죽었다는 말이라도 해줄 것을 상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공부한 내용이 머리에 전혀 들어오지 않아도, 시험을 못 봐서 점수가 적게 나와도, 배운다는 것의 재미와 즐거움에 하루가 짧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노숙과 알코올에 찌들어 살면서 삶에 대해 원망하고 세상에 대해 원망하며 남 탓, 세상 탓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지겨운 세월을 떠올려 보면 지금의 변화된 내 모습, 내 생각이 놀랍기까지 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해서 서울역에 올라왔던 새벽. 아주머니들을 따라가면 서부역 근처 어느 가발공장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공장 근처 식당들이 쭉 늘어서 있던 그 자리에 지금은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강의실이 있다. 이제는 이곳에서 배운 풍물로 노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추모공연도 하고 노숙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서울역광장에서 공연도 하며 살고 있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풍물도 배우면서 다시 시작하는 인생이 매우 바쁘기도 하다.
풍물이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알코올 중독자가 됐 고통받는 분들, 또 그분들로 인해 아픔을 겪는 가족분들에게 내가 노숙과 알코올 중독으로 살아왔던 경험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 매우 힘들고 고통받고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저도 한때는 그러했던 사람이고 지금 가족과 헤어져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라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다.
인문학을 통해서 일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이 나이에 돈을 많이 벌어서 대단한 갑부가 될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해서 박사를 딸 것도 아니다. 소위 박사를 딴들 뭐 하겠는가. 그냥 남보다도 좀 뒤처질지 몰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다가 죽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고 어떻게 죽는 것이 인간다운 죽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 인문학에서 말해주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찾아내는 것이 인문학이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떻게 죽어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 찾아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도 이제야 겨우 찾고 있는 과정에 들어섰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과정야말로 단맛이요, 꿀맛이 아닐까. 이러한 맛을 다시 보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인문학에 감사하고 인문학을 가르쳐주신 교수님들께 감사하고 인문학을 운영하시는 학장신부님, 실무자 선생님, 자원봉사자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인문학도 동문들께 감사하다. 성프란시스대학 풍물패 ‘두드림’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또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 노숙인들에게도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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