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다시 만발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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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오네요. 봄이니 옷차림이라도 가볍게 차리고 싶은데 하루 걸러 비오고, 바람 불고 예측을 할 수 없으니 오늘도 어깨가 움츠러드는군요.
한국에서도 많은 뉴스들을 듣고 계시겠지만 거대지진이 할퀴고 간 지난 한 달 반 동안 일본은 사망자, 행방불명자마저도 2천7백여 명이라는 불확실한 숫자의 발표에 그치고 있을 정도로 그 응급처치에조차 급급해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동해로 방출된 방사선 오염수의 문제를 비롯해 그 문제가 지구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문제도 300여 회가 넘게 계속되고 있는 여진과 더불어 아직 그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는 불안한 상황이구요.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살고 있는 오사카 지역은 지진 피해도 없었고, 문제의 원자력발전소와도 800km나 떨어져 있으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일본 각지에서 거대지진의 여파는 쓰나미(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어요. 일본 전체가 받은 큰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지진 복구 작업에 착수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피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으로, 100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예측되는 재정 마련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여기에 국내 경제도 침체돼 있을 뿐 아니라 제조기반이 재해를 당해 물류 공급이 중단됨으로 인해 해외로의 수출이 저하되고, 도쿄나 교토, 오사카 등을 찾아오던 관광객의 대다수가 발길을 끊어 직접 지진 피해를 입지 않은 곳까지 그 경제적 여파가 밀려 오고 있답니다.
오사카에 와서 16년을 살고 있는 저로서도 걱정이 끊이지 않아요. 그것은 ‘지진이 올지도 모른다, 방사능으로 오염될지도 모른다’라는, 직접적인 피해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이대로 원전 문제가 빨리 수습되지 않으면 일본이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에요. 물론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처에서 많은 지원과 정성을 보내 오고 있다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얼마 전 방사선으로 오염된 비를 맞히면 안 된다고 해 서울, 경기도 지역 학교가 휴교를 했다는 한국의 뉴스를 들으면서 특히 의아한 생각이 들었어요. 위기관리나 건강관리를 본인이 솔선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고, 정보의 투명성과 신속성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하고 감시해야 합니다만, 현 상황에서 조금 과민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사실 오늘도 비가 오지만 중2인 우리 큰애는 학교까지 편도 5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자전거로 갔거든요.
아무리 큰 곤란 속에서라도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지금 이 일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일 텐데, 그 중 장애인들의 활동을 조금 소개해 볼게요.
평화로운 일상시에는 생각하기 어렵겠지만 혹시 전쟁이 일어난다든가 천재지변이 생겼을 때 장애인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불안감은 언제나 가슴 한켠에 안고 살게 마련인데, 16년 전인 1995년 1월17일 일어난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 그것이 현실로 닥쳐왔습니다. 그 당시 피난처가 된 학교나 시민회관 그리고 가설주택은 장애인에게는 참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며, 정보 등 생활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것조차 나중으로 미뤄지게 됐지요. 특히 시각이나 청각 그리고 지적 장애가 있는 장애인들은 비상사태에 놓여졌구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스스로의 지역에서 지원 네트워크를 설립했고, 곧바로 ‘장애인 구원본부’와 재해를 입은 장애인을 위한 센터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구원물자와 약 20억 가까운 성금이 모여져, 시급한 활동보조인의 파견과 장애인용 가설주택 건설, 각 단체에 대한 후원금 등 장애인 서로에 대한 지원활동을 할 수 있었지요. 그 이후 그 뜻을 계승해 설립된 것이 ‘특정비영리활동법인 유메가제기금(희망의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기금은 사회복지 제도가 커버하지 못하는 긴급 상황이나 재해시 큰 피해를 입은 장애인을 지원함은 물론, 커다란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 구원기금을 설치해 재해를 당한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특별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생명과 인권을 위협받지 않도록 적절한 구원활동을 연결,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주요 사업내용으로 첫째, 재해를 입은 장애인의 구원사업, 둘째, 장애인 방재활동을 지원하는 사업, 셋째, 기금활동을 확대시키기 위해 재해를 입은 장애인 지원을 홍보하는 사업, 정보수집 및 홍보사업, 관계기관간의 협력 및 연락조정 사업 등을 들 수 있어요.
이번에도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관서지역에서는 유메가제기금이 중심이 돼 각 재해지역의 장애인과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모아둔 성금을 전달하고 각 센터의 스텝 등 다수의 인적지원 스텝을 재해지역으로 파견해 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공동련에서도 공동으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고 제가 있는 파티파티라는 단체에서도 한달간 스텝을 재해지역에 파견시키고 있으며, 리프트 차량 지원을 위해 사무장 등 스텝 2명이 차량을 보내 현지에 나가 있는 상태에요.
물론 각 단체들이 여유가 있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십시일반이라고 작은 힘이지만 모으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실천하려는 것이지요.
일본의 국화가 벚꽃이라는 건 여러분들도 잘 아실 거예요. 예년 같으면 그 벚꽃 소식이 남북으로 긴 일본 열도를 단장시키고 있을 시기인데요. 오사카에는 열흘 전 벚꽃이 한창이었습니다만, 지금은 바로 지진의 진원지였던 미야기 지역에 벚꽃이 만발했다고 하네요. 텔레비전으로 8km가 넘게 만발한 벚꽃 풍경을 보면서 작년과는 달라진 마을 풍경에 가슴이 시려 오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활짝 핀 아름다운 그 벚꽃을 보며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분들이 잠시라도 내일에 대한 희망과 버거운 오늘을 견뎌낼 용기를 받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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