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음다워’ 아름다운 당신과 함께하는 우리, 성프란시스대학!
본문
인문학은 관계이다. 성프란시스 대학은 다양한 관계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 의지하며 움직여나간다. 대외적으로는 성프란시스대학-다시서기센터(자활센터)-삼성코닝(후원업체)-현장인문학조직(인문학을 교수하는 다양한 현장의 인문교육기관) 등이 서로 관련을 맺고 있다. 성프란시스대학 내부의 일상 운영에서는 교수진-선생님(수업참가자)-자원활동가들이 삼위일체 또는 세발 달린 자전거처럼 움직여 나간다. 특히 자원활동가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주로 20대의 젊은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이나 직장인으로 구성되는 자원활동가들은 수업에 대한 조교 역할 만이 아니라 방학 중 선생님들의 글짓기 분담, 선생님들과의 비공식 상담, 수업에 대한 평가 등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교수 운영위원회에도 참가할 만큼 사실상 인문 교육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자원활동가들이 아들과 딸 나이에 가까워서인지 선생님들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들과 소통한다. 때문에 선생님들과 교수진보다는 선생님들과 자원활동가 사이에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윤활유 역할을 넘어 소중한 참여자인 자원활동가의 눈에 비친 인문학 교육 현장은 어떠하며, 그리고 선생님들과 관계맺기가 선생님과 자신의 생각과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자원활동가의 글을 통해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글 최은정 성프란시스대학 자원활동가
차디찬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봄바람 앞에 자취를 감추더니, 살랑이던 봄바람은 여름의 뜨거운 태양에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계절을 바라보며 순환하는 자연에 경탄하게 됩니다. 실상 시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 변화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순간순간 참 크나큰 위로가 되곤 합니다. 멈추어버린 것만 같이 느껴지던 시간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른다는 것을 변화하는 계절을 보며 확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프란시스대학 선생님들과 함께 지나는 3번째 5월을 맞이하였습니다. 3번의 5월을 맞이하기까지 선생님들과 참 많이 웃고 울고 뛰고 소리쳤습니다.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선생님들이 지어 주신 울보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눈물들이 흐른 시간과 함께 애잔함이 아닌 미소로 채색되어 갑니다. “그 때 그랬지” 하며, ‘하하 허허’ 웃게 되네요.
대뜸 다시서기 센터로 전화를 걸어, 여쭈어 보았습니다. 성프란시스대학이란 인문학 과정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자원봉사자는 모집하지 않으시냐고, 제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제 이야기를 다 들으신 담당 실무자 선생님께서는 메일주소를 알려줄 테니 간단한 이력사항과 본인이 생각하는 인문학과 지원동기, 기대하는 바 등에 대해 서술하여 보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성프란시스대학과 최은정의 만남은. 궁금했습니다. 막연히 궁금했습니다. 인문학이 인간의 삶을 앓음답게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을는지, 내가 꿈꾸는 행복에 다다르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을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성프란시스 대학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보고 싶고, 듣고 싶고,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문을 두드리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그 문을 넘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모든 것이 낯설었으니까요. 일명 스파이란 오해와, 눈빛으로 손짓으로 전해지는 선생님들의 따가운 심문이 제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너는 이 곳에 대체 왜 왔니? 너는 누구니?” 성프란시스대학이란 공간 안에서 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자, 나 자신을 향해 가장 많이 던진 질문입니다. 질문을 받게 되는 그 순간에는 제가 찾고 정리한 제 나름의 이유를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선생님들이랑 같이 공부하러 왔어요!” 제가 선생님들과 함께한 일이 선생님 곁에 앉아서 같이 책을 읽고, 간식도 먹고, 글을 쓰고, 축구도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가 가장 많이 함께 나눈 것은 공부도, 밥도, 운동도 아닌 서로의 이야기입니다. 여지껏 나 자신이 써온 나의 이야기, 세상 단 하나뿐인 내가 살아온 나의 삶의 역사.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 가슴 속 진짜 이야기를 서로에게 털어놓으면서, 서로를 향해 쌓여있던 보이지 않는 벽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스파이 아니야?’라는 오해가 ‘그 때 그렇게 말해서 참 미안했어요. 그 날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우는 걸 봤었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내가 선생님을 잘 몰라서 그랬던 거예요. 정말 미안합니다’ 라는 이해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선생님들께선 제게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더불어, 최은정의 이야기도 참 많이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고운 기억뿐만 아니라 아픈 기억까지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그저 그냥 묵묵히 받아 들어주었습니다. 그저 그냥 받아 들어주며, 깊은 침묵으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살포시 등을 토닥여주곤 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선생님들과 일 년이란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다른 곳을 향해 있던 각자의 시선이 서로를 향하며 마주 바라보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그 경계에서부터 우리는 서로를 향해 서고, 서로를 바라봅니다. “선생님 머리를 멋지게 자르셨네요?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내세요? 선생님 대체 술을 어디서 이렇게 많이 드셨어요?” 혹은 “최선생 식사는 했어요? 최선생 몸이 안 좋아요? 안색이 안 좋네, 최선생 학교는 잘 다니고 있어요?” 와 같은 물음을 서로를 향해 묻습니다. 서로에게로 점차 다가서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움직입니다. 그 움직임은 나 자신을 부드럽고 따스한 어딘가로 이끕니다.
처음 만나 뵈었을 땐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도 어려워하시던 선생님께서 저녁식사 시간에 받은 바나나를 본인이 드시지 않고, 제 생일 선물로 챙겨다주셨습니다. 그 바나나를 먹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지만, 선물하신 선생님을 위하여 먹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제게 전해주시는 마음들을 받고 있을 때면, 내가 과연 이런 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를 되묻곤 했었습니다. 자격요건에 대해 꼼꼼히 따지곤 했었지요. 그러나 마음을 주고받는 데에 자격 같은 건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격이 존재한다는 것에 오히려 의문을 품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그저 그냥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저를 향해 있는 선생님들의 시선을 감사히 받으며, 저 역시도 제 시야가 허락된 만큼 선생님을 끊임없이 바라보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어떤 눈짓과 몸짓으로 하고 계시는지를.
2009년 겨울의 어느 날, 서울역을 지나가다가 OOO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술에 거나하게 취해 계셨지요. 선생님을 향해 “선생님”하고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달려갔습니다. 달려가 선생님 손을 꼭 붙잡았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선 화들짝 제 손을 뿌리치시더니, 급히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순간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멀어져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부터 틈이 날 때면, OOO 선생님께서는 다른 선생님들께 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선생님을 향해 달려가던 제 동작까지 똑같이 흉내 내시면서. “내가 술을 잔뜩 먹고 서울역을 지나가는데, 최은정 선생님이 ‘선생님’ 하면서 달려오는 거야. 나 같으면 이런 내가 창피해서 못 왔을 텐데 얼마나 반갑게 달려오던지… 그런데 최선생님이 날 향해 달려오니까 오히려 내가 창피해지더라고… 그래서 도망가 버렸지. 도망가면서 많이 미안했어. 정말 고맙고…” 그 날 우리의 만남이 선생님께 대체 어떠한 의미였을까요?
제게 숨이 허락되어 있는 순간까지, 제가 성프란시스대학의 모든 선생님들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선생님’ 하며 선생님이 부끄러우실 만큼의 큰 목소리로 선생님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마주 서서 바라보며, 함께 웃고 우는 것입니다. 선생님들께서 어떠한 모습일지라도, 저는 선생님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혼자 계시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선생님을 마주 바라보고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늘 서로를 향해 있다는 것, 어떤 표정으로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어떠한 이름표도 붙이지 아니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그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주는 것. 저는 이것이 우리의 인문학이요, 성프란시스대학의 숨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성프란시스대학 구성원으로 함께하면서 내가 사랑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발견했고, 더불어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으며, 나아가 내가 사랑하고 싶은 것들을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무언가를 향한 사랑의 시선을 잃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생명력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향해 움직이겠지요? 그 움직임이 우리를 어떠한 순간으로 이끌는지를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고맙습니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